[13]"한겨울 식혜같은 시원한 정치 펼칠 터"

[4·15 총선에 나선 사람들 13] 전갑길 의원에 도전, 민노당 국강현씨

등록 2003.12.16 14:49수정 2004.02.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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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강현 민주노동당 광산지구당 국회의원 후보

국강현 민주노동당 광산지구당 국회의원 후보 ⓒ 오마이뉴스 안현주

"추우시죠. 난로를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에 5명이나 구속돼 있는데 우리만 따뜻하게 있으면 되겠느냐고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한 것입니다. 구속된 조합원들이 다 나올 때까지는 추워도 이대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광주지역금속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국강현(37) 후보의 첫 인사이다. 국 후보는 지난 달 경선을 통해 민주노동당 광산지구당 17대 국회의원 후보로 최종 선출돼, 전갑길 의원(민주당)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빈농출신 노동자 총선후보로 나서

광주지역금속노조는 인근 하남공단과 소촌공단에서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보금자리. 국 후보가 청춘을 묻은 곳이기도 하다.

인근 공단의 기아자동차의 하청업체나 중소업체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이들 조합원들은, 공장마다 5명에서 7명 남짓 분회를 결성, 조합에 함께 하고 있다. 조합원 40여명 정도가 그나마 가장 큰 사업장규모. 이 땅에 가장 낮은 처지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보듬어가며 세상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a 빈농에서 태어나 노동자로 생활해 온 그는 평범한 이웃의 한 표상이다.

빈농에서 태어나 노동자로 생활해 온 그는 평범한 이웃의 한 표상이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국 후보는 이 조합의 위원장을 만 5년째 이어오고 있다. 호된 장기집권인 셈이다. 한때는 축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광주농고를 졸업한 국 후보는 직접 전남 함평의 한 목장을 찾아 꼬박 1년을 송아지와 시름하기도 했다.

"365일 머슴처럼 일했는데 하필 소 값 파동을 만났습니다. 젖소 송아지 한 마리에 120만원 가던 것이 1년 후 60만원으로 폭락한 것이죠. 농사를 짓자니 더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안산으로 떠나게 됐죠."


이때부터 시작된 노동자의 생활. 87년은 국 후보에게 있어서도 전환점이었다. 군부독재정권 하에 갇혀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곳곳에서 노조결성 붐이 인 것. 국 후보는 이때 처음 노동자들의 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안전장구 하나 없이 시키면 시킨 대로 주면 준대로 일해오던 동료들이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었습니다. 한번도 제때 나오지 않던 월급이 그때 처음 월급날에 맞춰 나오더군요. 규정대로 나온 '면 장갑' 하나를 받아보고 기뻐할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16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몇 십 만원 없어 목매는 서민들 아픔 왜 모르나"

올해 국 후보에게는 유난히 힘든 한해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과 자살. 오죽하면 그랬을까. 아까운 사람 다 잃는다고 '차라리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다'고. 조합원들의 처지도 그만큼 말이 아니다.

"작년 전체조합원 평균임금이 연봉으로 1200만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원청업체 노동자들의 1/3수준, 매일같이 연장작업하고 특근, 철야하고 상여금까지 포함한 것이 그것입니다. 어떤 노동자들은 70∼80만원 받고 일하는데, 자녀들 학원비나 과외는 꿈이나 꿀 수 있겠습니까"

a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안식처이자 보금자리인 광주지역금속노조 사무실. 게시판에 김주익 한진중공업위원장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안식처이자 보금자리인 광주지역금속노조 사무실. 게시판에 김주익 한진중공업위원장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총선후보로 나서게 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구속된 조합원들 때문이다. 지난 11월 9일 서울 노동자대회에 참석하다 5명의 조합원이 시위도중 구속된 것이다. 노조 간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기업 노동자도 아닌 그들. 손배 가압류를 철폐하라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였다.

"일부 과격행위가 죄라고 하는데 지금 정치인들이 벌이고 있는 죄는 얼마나 큽니까. 돈 100만원이 없어 농약 먹고 자살하고, 단 돈 몇 십 만원이 없어 목을 매는 서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방치한 그 죄는 얼마나 더 큽니까."

국 후보는 "몇 사람 감옥에 가둬 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이냐"고 말한다. 근본적 개선 없이는 또 다른 그들이 나서게 될 것이라는 것. 자연스럽게 대화는 '차떼기' 정국으로 넘어왔다. 트럭으로 쌀 싣고 가고 고추 싣고 간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트럭 째 돈을 뜯어간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는 것.

"불법 비호하는 사회, 더 이상 정치권에 호소 않겠다"

사실 총선후보로 확정된 것에 놀라운 반응도 없지 않다. 노조위원장이라지만 몇 천명의 조합원을 둔 대기업 위원장인 것도 아니고, 소위 학생운동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단에서 일할 때 담벼락 넘어 '눈이 맞은' 아내 역시 조합원의 일원으로 여전히 공단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a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광주지역금속노조의 평범한 일상과 가재도구들.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광주지역금속노조의 평범한 일상과 가재도구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용접공 출신인 그는 조합 일을 돌보는 틈틈이 건설일용자로 나서고 있다. 생계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504만원과 임대아파트가 전부. 조합활동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것이 이자를 못내 4만원이 더 붙었다는 것이다.

돈이 판치는 세상, 서울대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는 나라. 농고졸업에 중소영세 노조의 위원장직이 전부인 그에게 총선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15년 동안 별 짓을 다해봤지만 투쟁을 통해서 얻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가 불법을 묵인하고 법에서마저 비호하고 있는 마당에 힘없는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 정치권에 호소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그에겐 기탁금 마련도 쉽지 않은 일이다. 공보물 값이 없어 칼라인쇄가 어렵다면 A4라도 대신 복사해 뛰어들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그가 믿는 건 오로지 평범한 이웃들. 땀흘려 일하는 사람만이 누가 진정으로 올바른 정치를 펼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한 겨울에 시원한 식혜를 마시고 난 기분 아십니까. 그런 시원한 정치를 펴고 싶습니다. 서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지 학력과 경력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동안 부패정치를 일삼아 온 정치인들이 차마 그것을 경력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어김없이 혼탁한 정국으로 저무는 한해. 한 노동자 후보가 세상에 던지는 일침이다.

광주 광산, 민노당 '의회진출' 시험대 되나
도농복합, 노동자 밀집지역 투표결과에 관심 쏠려

지난달 29일 현재 광산구의 인구는 28만 4천여명. 전년대비 1만 여명이 늘어난 수치이다. 광주시 전체 인구증가율 0.1%보다 30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광산구는 대규모의 신흥택지가 조성되면서 급속한 인구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하남, 소촌, 평동공단이 조성되면서 젊은 층의 유입인구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남공단 인근에 위치한 첨단의 경우 20대와 30대가 입주민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광주지역 전체 제조업 고용인원의 46%를 차지하고 있는 하남산단은 852개 입주업체에 현재 2만3천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광산구는 광주지역 최대의 노동자 밀집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한 도·농 복합구라는 것도 한 특징이다. 그만큼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특징은 투표에서도 일정한 경향을 나타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치러진 제3회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정당비례 투표를 통해 평균 15% 득표로 광역 시·도의원 1석씩을 얻는데 성공했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한 것. 특히 광산구에서는 지지도가 17.6%에 이르러 노동자 밀집지역의 특성이 투표에서도 여실히 반영됐다.

광산구는 광주에서 민주노동당이 의회진출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당의 이미지가 커진데다, 지난달 전국농민회총연맹과의 정치세력화 합의로 진보정당 건설에 있어 큰 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벼랑끝에 선 농민들은 정치세력화를 통해 그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 이국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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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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