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한 김현희, 현상금 29만원에 긴급수배"

KAL가족들, 19일 낮 연희동 전 전대통령 집앞 골목시위 예정

등록 2003.12.17 19:26수정 2003.12.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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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일 낮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KAL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골목시위가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5일 국회앞에서 열린 KAL기 사건 전면재조사를 위한 국회청원 기자회견.

19일 낮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 집 앞에서 KAL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골목시위가 열린다. 사진은 지난해 9월 25일 국회앞에서 열린 KAL기 사건 전면재조사를 위한 국회청원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일(금요일) 점심시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이 위치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골목길에 가면 이색적인 시위를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

KAL858기가족회(회장 차옥정)와 KAL858기사건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김병상 인천교구 신부)가 오는 12월 19일 오전 11시 30분 전씨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 입구에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길거리 홍보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두 단체는 '연희동 홍보전'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광화문 네거리 등 서울 시내 곳곳에서 매주 한 번씩 점심시간을 활용해 이런 행사를 정기적으로 열어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은 지난 12월 11일 주요 종교·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책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다가 희생당한 박명규 기장의 아내이자 KAL가족회 회장인 차옥정씨는 '대국민 홍보전'을 준비하게 된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12월 4일 시민·인권단체와 함께 '민간조사단' 구성에 합의했다. 이로써 국정원의 원천봉쇄와 비협조로 철저하게 막혀 있던 진상규명의 물꼬를 틀 수 있게 됐다. 이제는 그 성과를 기반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KAL858기 실종사건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진실을 정확하게 알릴 단계에 왔다고 판단돼 '대국민 길거리 홍보전'을 준비하게 됐다."

차옥정 회장은 '대국민 홍보전' 활동방식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인 방식의 홍보전을 펼치면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병행해, 진상규명과 의혹해소를 염원하고 촉구하는 국민여론을 조성해 나갈 것이다. 서울시내 중심가에서 합법적 방식으로 지속적인 홍보전을 펼쳐나가되 필요할 경우에는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과 KAL 청사는 물론이고 정형근, 최병렬 의원 등 이 사건과 관련된 정치인들의 자택이나 사무실 앞에서 기습적인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여론을 환기시키는 충격요법도 활용할 것이다."


따라서 김현희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진상규명의 발목을 잡았던 '남자들'은 당분간 꿈자리가 어수선해질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KAL가족회 관계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KAL기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주사파"라고 매도했던 정형근 의원만은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묻는 한편 115명의 원혼의 이름으로 다음 총선에서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상자기사 '김현희와 남자들' 참조).

한편 시민대책위 부집행위원장인 신성국(청주교구, 안중근학교 교장) 신부는 대국민 길거리 홍보전의 서막을 '특별하게' 전두환씨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에서 열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길게 설명했다.


"MBC 'PD수첩'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에서 잇따라 이 사건의 전말과 의혹을 용기있게 보도한 이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전두환 독재정권의 정보기관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 이 사건을 조작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을 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여전히 사건 직후 발표된 안기부 수사보고서와 김현희 자필진술서만을 불변의 진실과 정설로 여기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들은 '아무리 정권연장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설마 비행기 폭파사건까지 조작해서 자기 나라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정작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탱크와 총칼을 동원해 무고한 민간인을 수 백명이나 학살한 장본인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잡은 권력을 민간정부에 넘겨줄 경우 당시 용광로 같은 민주화 열기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KAL858기 사건을 전두환 정권 말기의 정세와 연결해서 사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접근이다. 전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는 '가난뱅이 전직 대통령'의 '성채 같은 초호화 주택' 앞에서 갑자기 잠적한 김현희를 긴급수배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실제로 시민대책위의 한 실무자는 12월 19일 시위대가 "살인마 전두환은 잠적한 김현희 내놔라" "긴급수배 김현희, 현상금은 29만원" "정권초기 광주학살, 정권말기 KAL기학살" 등의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담긴 현수막과 피켓을 준비하는 한편 전두환과 정형근씨가 도망자 김현희씨를 감싸고도는 퍼포먼스도 연출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공중파 방송의 시사프로 방영과 김현희씨의 잠적을 계기로 KAL기 사건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KAL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이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전두환씨와 직접 연계시키겠다는 홍보전략을 굳이 숨기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두 단체는 잠적한 김현희씨를 공개수배하는 전단 수십만 장을 제작, 배포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시민대책위 실무자가 보여준 수배전단 초안에는 "KAL858기 사건 조작 사기범 김현희를 긴급수배합니다" "항공기 테러로 115명을 죽였다는 김현희를 사형선고 후 단 15일만에 사면한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대국민 사기극이다" "김현희는 평생을 KAL가족회를 도우며 살겠다고 자필 각서를 쓴 지 단 5일만에 안기부 직원과 결혼한 후 도피생활에 들어갔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베스트셀러로 돈방석에 앉았다" 등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김현희씨가 '국정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장소로 가족과 함께 잠적했다는 이상야릇한(?) 소식은 최근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된 바 있다(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은 당장 간판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국내 언론 중에서 '김현희 잠적'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한 것은 연합뉴스. 지난 12월 2일 '칼기 폭파범 김현희 가족 잠적…조작설 논란 신변 노출 꺼린 듯'이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검찰이 지난 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조작설을 가리기 위한 조사의 참고인으로 소환을 검토중인 전 북한공작원 김현희(金賢姬, 41)씨 가족이 최근 잠적한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2월 2일 대북 관련 부서 등에 따르면 김현희씨 가족이 지난달 중순께 거주지에서 종적을 감춰 요원들이 이들의 행적을 쫓고 있다. 가족들은 남편 J(45)씨가 대북 관련 모 기관으로부터 KAL기 폭파사건 조작 주장 등에 대한 김씨의 적극적인 해명을 요구받은 직후 행방을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대공 관련 기관들은 KAL 858기 폭파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 5명이 사건 조작설을 담은 소설의 저자와 출판사를 고소함에 따라 검찰이 당시 수사기록을 확인하고 범인 김씨 소환을 검토한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노출을 꺼려 잠적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김현희씨로 하여금 가족과의 잠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KAL858기 사건. KAL기 승무원과 중동 근로자 등 115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 사건에 대한 '교과서' 역할을 지금까지 담당해온 것은 1988년 1월 15일 발표된 안기부 수사보고서와 김현희 자필진술서였다. 당시 안기부는 "북한의 김정일이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에게 친필지령을 내려 KAL858기를 폭파시킨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북한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이의 제기도 이단시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두 개의 자료가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바이블'처럼 여겨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최근 그 '교과서'와 '바이블'이 사실은 셀 수 없이 많은 오류와 실수로 얼룩진 '누더기'이자 각종 의혹 제기에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모래 위의 성'이었음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김현희가 '북한 출신 공작원'이 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결정적 증거라며 안기부가 자신있게 공개했던 '꽃을 든 소녀' 사진도, 김현희의 아버지라고 발표했던 김원석의 직책인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도, 김현희가 유럽에서 북한 공작원 아지트와 연락하기 위해 점자식으로 암호화했다는 전화번호도 거의 모두 가짜였음이 외국 정부와 언론의 추적에 의해 밝혀졌다.

물론 이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안기부 직원마저 최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현희가 진술한 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인데 그럼 어쩌란 말이냐. 수사보고서가 잘못된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도 잘 모르니까 김현희한테 직접 물어 보라"고 거꾸로 하소연(?)하는 진풍경까지 벌어졌겠는가.

"큰 침묵의 바다를 건너왔다."

지난 11월 29일 열린 16주기 추모식에서 차옥정 가족회 회장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큰 침묵의 바다' 건너편에서 '큰 진실의 언덕'과 만날 수 있을까. 오는 12월 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연희동 골목길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의 일단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현희와 '남자들'... 즐겁던 그들, 지금은 무섭다?

KAL가족회 관계자들은 잠적한 김현희씨를 찾아낼 것을 요구할 정치인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과거 김현희씨의 체포, 수사, 재판, 사면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그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 중 핵심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 전두환

KAL858기 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 당시 최고권력자. 그 해 4월 13일 호헌발표를 했다가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자 한때 계엄령 선포를 고려하는 등 배수진을 치다가 미국의 압력 등에 밀려 결국은 자신의 의지를 꺾어야 했다. 민주화 열기를 등에 업은 민간정부에 권력을 넘겨줄 경우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 초에는 수지김 사건이, 말에는 김현희 사건이 발생했다.

● 노태우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 덕분에 손쉽게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 바레인에서 생포된 김현희가 절묘하게도 투표일 하루 전날인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을 통해 압송되면서 대통령 선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다음날 모든 신문은 큼지막한 활자로 '노태우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에 대한 특별배려(?)였을까. 노태우 정부는 1990년 4월 12일 사형수 김현희에게 특별사면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 정형근

자신이 김현희 수사를 담당, 관리했다고 자처하는 인물. "KAL기 사건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친북 주사파"라는 발언 때문에 KAL기 사건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가장 큰 원한을 사고 있다. 지난 7월 9일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고영구 국정원장에게 소설 <배후>가 KAL기 사건 조작설을 제기하는 것에 대한 대응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서현우씨는 이 소식을 듣고 7월 22일 각 언론사에 공개질의서와 보도자료를 돌렸으나, 통일뉴스를 제외하고 어떤 언론도 다루어주지 않았다.

● 이회창

대법원이 1990년 3월 27일 김현희에게 최종적으로 사형선고를 확정할 당시 4명의 대법관 중 한 명. 당시 재판에는 배석, 이회창, 김상원, 김주한 등 4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 사건의 수사는 거의 전적으로 김현희의 자백과 진술에 의존한 것이다. 실제로 비행기 폭파로 희생됐다는 피해자들의 사체나 유품 하나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선진국의 법정이었다면 피고인의 자백만으로 이 엄청난 사건의 전모를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형선고를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 최병렬

노태우 정부의 김현희 특별사면을 발표했던 당사자. 노태우 정부의 공보처장관으로 정부 대변인을 겸직했던 최병렬 현 한나라당 대표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지 보름밖에 지나지 않은 1990년 4월 12일 김현희에 대한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김양이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있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대열에 동참시키는 사면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김현희는 이 범행사건에 투입된 한낱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주범은 김일성 부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115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죽였다고 자백한 김현희에겐 관용을 베풀자고 호소했던 최 대표였지만 대한민국 국민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친다'고 고백한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 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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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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