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국김규환
아침이면 솔잎으로 불을 지펴서 큰 밥솥에 밥을 하고, 이 정도로 날씨가 쌀쌀해지면 무순 말린 것을 가지고 시래기국을 끓인다. 요즘 우거지국을 가지고 시래기국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한 상 차려지면 아들만 넷인 이곳에선 밥 먹기 쟁탈전이 벌어져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하곤 했다.
아이들이 밥 먹지 않아서 고민스러운 현대 부모들의 심정을 그 때 부모님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그 때를 회상하시면서, "버는 것도 없는데, 머스마 넷이 먹기는 얼마나 먹어대는지…" 라고 하신다.
그리고 남은 밥은 큰 양은 그릇에 모두 담아서 아랫목에 고이 모셔둔다. 보온 밥솥이 없었던 시절, 양은 그릇과 군불을 지펴서 따뜻하게 데워놓은 아랫목은 좋은 보온 밥솥 구실을 했다. 최고의 점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점심때가 되어서 양은 그릇의 뚜껑을 벗기면, 여전히 김이 솔솔 오르는 밥이 먹기 좋을 만큼 따뜻하다. 여기에다가 죽죽 찢어 놓은 김장 김치를 척척 걸쳐서 먹는 밥맛은 최고의 점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탄 보일러도 없었던 시골인지라, 그곳의 겨울나기는 땔감을 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겨울이 다 가도록 땔감을 주워나른다. 특히 어머니께서 돈을 벌러 나가셨기 때문에 늘 나무하는 것은 맏이였던 나와 바로 밑의 동생이었다. 겨울방학만 시작되면 어김없이 아침저녁으로 산에 나무하러 올라가서 두 동이씩을 지고 내려왔다.
오전 나무를 한 짐 해서 내려다 놓고는 아랫목에서 밥을 꺼내 식은 시래기국 건더기에 고추장 한 술 떠 넣어서 비벼먹곤 했었다. 간혹 참기름이라도 있어서 한 방울 떨어뜨려 놓고 슥슥 비벼놓으면, 그 밥맛은 임금님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았다. 노동의 뒤에 오는 눈물겹도록 맛있는 밥 한 그릇은 또 다시 오후 노동을 할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많다. 맛있는 점심의 선택을 도와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이니까, 말해서 무엇하랴 싶다. 굳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문 밖에만 나서면 온통 식당 간판으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식당에 들어가면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여러 반찬들이 밥상을 가득 채우곤 한다. 하지만 늘 점심때만 되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왜일까?
먹을 게 없었던 시절, 최고의 점심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유년시절의 어려웠던 기억과 짧게나마 노동이 가져다주는 건강한 허기가 섞여있다.
어쩌면 맛은 음식 그 자체보다도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부분도 많은 것 같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먹을 것이 없는 요즘, 우리는 이미 어려웠던 기억과 노동이 가져다주는 건강한 허기를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전기 밥솥도 있고, 불을 지펴서 밥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시골에 가면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예의 그 시래기국을 끓어 주신다.
내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김장김치 한 사발, 그리고 그 시래기국 하나면 여전히 최고의 점심이다. 그것이 유난히 맛있는 것은 아마도 내 유년시절의 추억과 건강한 허기의 기억을 함께 먹기 때문일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