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지기 노산문학상 대상 동시 수상

박천도· 최병우씨 70넘어 문단 등단... 왕성한 문학활동

등록 2003.12.22 14:06수정 2003.12.22 15:37
0
원고료로 응원
80이 넘은 나이라면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과시하며 왕성한 문학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두 문인이 있다.

올해 83세인 박천도 수필가와 최병우 시인. 이들은 지난 4일 제 28회 노산문학상 수필과 한국시 분야에서 박천도씨와 최병우씨가 각각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이들의 수상 소식은 나주문학계 사상 가장 큰 사건이었다. 70이 넘어 본격적인 문학세계에 뛰어든 이들의 대상 수상은 다른 수상자들과 의미 부여부터 다르다. 타 지역의 경우 80세가 넘은 원로들은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나 후배들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무슨 일이든 정열적으로 처리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우정도 남다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들은 해방 전 신간회가 운영하는 나주유치원에 함께 다닌 뒤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다.

76세 나이에 <한국시> 등단

a 박천도씨.

박천도씨. ⓒ 신광재

40여년에 가까운 공직에 몸담아 온 박천도씨는 1997년 월간 '한국시'로 등단하기 전까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수필을 써왔다.향토사 연구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동학란과 나주', '나주의병대장 김천일 장군', '다산의 만남' 등 20여편의 글을 등단하기 전 발표했다.

1999년 '나주문학'에 등재된 그의 수필 '차를 들며'를 살펴보면 작가의 높은 품격을 읽을 수 있으며 인생 관조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조용한 필치로 무념, 무욕의 차의 세계를 차분히 찬미하고 있다.


이 수필에서 그는 옛 어른들은 차의 담백함에서 매사에 지나치지 않음을 배웠으며 그 담담함에 사로잡히지 아니하니 무념, 무욕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최근 눈 시력이 떨어져 글쓰는 일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틈틈히 집필할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낙엽을 쓸며'라는 수필을 음미해 보자


'낙엽을 쓸며'

'밤새 잠결에 바람소리를 들었다.
새벽에 잠을 개고 보니 바람에 진 낙엽을 비로 쓰러 모으며 나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도 저 낙엽이 되었구나. 그리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서글펐다.기력이 넘치는 젊어서는 그 젊음의 고마움을 별로 모르지만 나이를 먹어 늙고보니 그 늙음이란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의식하며 사로잡는 것이다.
<중간생략>

버스는 벌써 만원이었다. 다음 차편으로 갈까 하다가 에라 한 걸음이라도 빨리 가자는 급한 생각으로 휘청거리며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어린 학생이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음 그래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그 할아버지라는 한마디가 귀에 좀 거북스럽게 들렸다.

내가 할아버님을 모신 적이 엊그제 같은데 그 할아버님은 가시고 어느새 내가 할아버지로 불리게 되 버렸구나 생각하니 쓸쓸하기 조차했다. -생략-
'

그의 수필은 그윽한 향취가 물씬 풍겨난다. 그의 작품세계를 넓게 음미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교 신자답게 수필 속에 자연, 무소유, 선(善)을 담아내고 있다.

현재 나주불교신도 연합회 회장과 광주, 전남불교신도회 부회장, 그리고 나주문협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향토사 연구위원으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화상'

병원에 한번 안 가고
주사 한방 안 맞고
살아나온 끈기

돌대가리에 두통약만 퍼붓고
칠십 년을 살고보니
휘청휘청 여섯자 안팎의
뼈 부치만 남았구나

덜렁한 훈장 하나 그대로 달고
아직 왕성한 식욕 하나로
오뚜기처럼 근들근들 서 있다.
녹슬은 빈 총 하나 메고


시어에 삶의 진솔성 담아 낸 최병우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다.13년전인 70세때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이라는 시를 통해 어려웠던 시절 겪었던 고통과 이를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냈다.

칠십 년을 살고보니 '여섯자 안팎의 뼈부치만 남았어도 그래도 자랑스런 훈장 하나, 아직 왕성한 식욕덕으로 오뚜기처럼 근들근들 녹슬은 빈 총 하나 메고 서 있다'며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은유적 표현 없이 일상적인 시어만으로 피부에 와 닿게 묘사하고 있다.

a 최병우씨.

최병우씨. ⓒ 신광재

최병우 시인의 작품은 은유적이고 멋스러운 기교보다는 생활의 언어, 즉 일상어를 시어 소재로 선택해 시를 잘 모르는 이들이 읽더라도 쉽게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는 "저의 생활체험을 통해 얻어진 삶의 진실을 제가 알고 있는 생활언어로 나열하고 있다"며 자신의 작품에 겸손해 하고 있다. 1990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현상 모집에 당선된 작품 '열자에 아홉의 단칸방'의 심사평을 보면 그의 시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당시 심사평은 수사적 기법에서나 삶의 진솔성, 작품이 지녀야 하는 서정성이 단연 빼어났으며, 일상어를 시어로 바꾸는 그 뛰어난 기법이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필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그의 작품성을 높이 샀다.

중학교 시절부터 문학서적을 즐겨 읽었던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수선화'라는 시집을 내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6세때 전남일보에 '감격'이라는 시를 발표하고 그 해 '향수', '황혼의 구름'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심취해 오다 72살의 나이에 바로서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시대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83세의 나이에도 이들은 현재 시집과 수필집을 내기 위해 오늘도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 다니는 이들은 현재 병석에 누워있는 승지행 소설가와도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광주매일신문에서 역사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사회, 정치, 스포츠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4. 4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5. 5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