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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동안 많이 바빴지?
내년엔 조금만 덜 바빠라.
너무 바쁘게 살면 놓치고 사는 게 많으니까. 후훗
그래서 글도 더 여유 있게 쓰고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영아가 되길 바란다~
너무 이른 크리스마스 카드가 될지 모르지만
올해처럼 내년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가 되길 바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바다가 보이는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중 1 때의 짝꿍이 보낸 2003년 첫 크리스마스 카드에 써 있는 글귀입니다. '바빴다'로 귀결되는 2003년이었습니다.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 아니 정확한 표현을 빌자면 멀어진 것도 적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나만의 특종감은 왜 이리도 많은지요. 그 중에서 오랫동안 마음을 끌고 있는 설레임을 적어보려 합니다.
1박 2일간 원주 토지 문화관에서 보낸 꿈길
원주 가는 길목의 아름다움을 보기도 전에 밤은 너무나 빨리 찾아왔습니다.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비닐하우스의 둥근 지붕위로 오묘한 색의 구름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다정한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고 있을 법한 마을의 지붕 위를 어슬렁거리던 연기는 살아있음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키 큰 고목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까치집에도 어둠이 깃드는 정겨움을 오래도록 보고 싶었는데 검은 밤은 그대로 내려앉았습니다.
승객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던 고속버스 차창 밖의 풍경은 자주 떠나지 못하는 내 눈으로 속속들이 들어와 둥지를 틀기에 바빴습니다. 눈은 초롱초롱한데 산허리는 검게 물들어 가는 숲들의 술렁거림만 주었습니다.
버스도 끊긴 인적 없는 토지 문화관으로 가는 길은 고즈넉했습니다. 달빛 머금은 호수가 찰랑인 것 모두가 황홀한 시선이었지요. 수업 때문에 출판사에서 마련한 전세 버스를 타지 못했습니다. 늦은 오후에 혼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갔지만 마음과 몸은 설레임에 그네처럼 오락가락 했습니다.
창작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인 '푸른책들'(대표 신형건)이 제정한 제1회 푸른아동문학상의 '미래의 작가상' 과 '새로운 작가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11월 14일 오후 7시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렸습니다.
출판사에서 동화공부를 한 1, 2기 선배들과 현역인 3기생들과 수상자 가족이 훌륭한 동화 작가 선생님들과 1박 2일 일정으로 원주 토지 문화관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 분들을 가까이에서 뵐 기회였고, 좋은 작가가 되겠다는 자극도 많이 받았습니다.
역사 동화를 쓰시는 작가 선생님의 힘있는 정체성의 강연은 시원함을 주었습니다. 젊은이들 못지 않은 열정뿐만 아니라 해맑은 미소와 겸손함은 또 한번 머리를 숙이게 해 주었습니다.
한결같은 웃음과 사랑 주시는 선생님의 진면목을 새삼 느낀 원주의 깊은 밤은 출렁이는 감성으로 가슴을 뭉클뭉클 흔들어 놓았습니다. 동시 쓰는 선생님은 작은 농담에도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자꾸만 빨개져서 동시만큼 순수함이 빛나 보였습니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겠구나, 자신에게 최면을 건 벅찬 자리였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다짐하게 한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동화를 쉽게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하나 하나 새삼 깨닫게 된 다시 맛볼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훌륭하신 동화 작가님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지만 희망을 부풀려 왔습니다. 뒷풀이 할 때 1,2,3기가 함께 빙둘러 자기 소개를 할 때 터널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1기, 2기 선배님들의 기운찬 팀웍 속에서 열정을 배웠습니다. 어설펐던 우리 3기는 좋은 것들을 보았고 희망을 전해 받았습니다.
한 이불 덮고 누운 우리 기수들. 젊은 날의 캠프에 온 소녀들처럼 새벽동이 틀 때까지 웃고 떠드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막내 기수처럼 행동도 늦장이던 우리를 기쁘게 바라봐 주시던 선배님들의 포근함도 좋았습니다. 마른 속을 풀어준 아침 북어국의 시원함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싸늘한 기운을 녹여준 모닝 커피의 따사로움도 오래 기억할 거구요.
색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야외 공원을 산책할 때 잠깐 뵐 수 있었던 박경리 선생님의 은빛 머리는 초겨울 햇살에 쨍! 하고 빛났고 우리는 큰 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원주 토지문화관 그 이름 못지 않게 엄청난 기를 받았다고 즐거워하던 동기들도 떠날 시간이 되자 아쉬움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지요.
차갑지만 옹달샘처럼 맑은 향긋한 동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숙소로 가는 짧은 복도에서도 볼 수 있던 상큼한 별빛 같은 고운 동화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생 함께 갈 좋은 친구, 마지막 내 사랑 동화를 이제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처럼 보듬을 수 있던 원주에서의 1박 2일간의 꿈길은 2003년 내가 뽑은 행복한 특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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