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국민의례 거부' 고입생 불합격 처분을 보며

등록 2003.12.23 11:17수정 2003.12.2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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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정부시의 한 고등학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국민의례를 거부하겠다고 밝힌 응시생을 불합격 처분(아래 관련기사 참조)한 것에 대하여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학교의 불합격 처분이 신앙의 자유 및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과 국민의례 거부는 전체 학생의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상충되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련기사] <한겨레> 12월 23일 ‘국민의례 거부’ 고입생 낙방

<한겨레>는 전교조 의정부지회 등 교육 시민단체들이 22일 성명을 내어 모 고교의 처사는 "헌법에 보장된 신앙의 자유는 물론 종교 선택의 자유 및 교육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한 것"이라며 "반민주적, 비이성적 학사운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에 학교 교감은 "특정 종교 때문에 불합격 처리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례를 하지 못하겠다는 의지 때문에 전체 학생의 교육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시민들 사이에는 "학교의 불합격 처분은 국민의 기본적 양심 및 신앙을 용인하지 못하는 극단적이고 편협한 처사"라는 주장과 "종교적 이유로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행위는 국가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라고 비난하며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므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충되는 주장도 이와 비슷하다. 즉, 국가의 안보 및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주장과 개인의 신앙 및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며 보호해 줄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충돌이다.

개인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 및 애국가를 부르는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의 안보에 위협을 주는 행위이거나 그렇다고 국가를 무시하는 행위는 분명 아니다.


그런데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것이며 국민된 도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반사회적인 종교"이니 "사이비"라고 집단적 정죄 행위를 하는 태도는 획일적이고 집단적 또는 극단적 국가주의적 발상에 근거한다.

위의 이슈에 관하여 언제나 "국가가 먼저냐 개인이 우선이냐"하는 식의 논란이 뒤따르기는 하지만, 다양성이 인정되지 못하며 다수에 의한 횡포로 인하여 소수의 양심이 위협을 받는 사회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소홀히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다수는 힘이 없다"(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b.13, ch.5)라는 문구가 있다. 양심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개개인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소중한 권리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게 되는데 다수결의 원칙은 공공복리를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나, 다수의 논리는 하나의 커다란 힘을 형성하게되고 그 힘이 소수의 반대자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갈 경우에는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억압하는 비민주주의 사회, 또는 강력한 독재권력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자신이 믿는 양심 및 신앙에 따라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그 믿음을 실천에 옮겼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다수를 위하여 소수는 양보하며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가를 존속시키기 위하여 개인의 양심마저 양보하며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이라는 주장이 함께 결합되어 다양성 및 관용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획일적 사회를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 사회의 병폐 중의 하나가 집단적 획일주의로 인하여 소수자들의 양심을 용인하지 못하는 불관용 정신이다.

소중하게 보호되어야 할 개인의 양심 및 신앙의 자유가 다수의 힘에 의하여 억압되는 사회는 진정 자유로운 사회라고 볼 수 없다. 국가가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쉽게 개인의 양심 및 신앙을 제한하는 경우가 늘 있었지만, 학교가 입학생의 신앙적 양심을 국가와 다수의 학생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분을 내린 경우는 바로 한국 사회의 모순적이고 병폐적인 불관용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하여 다수의 힘을 빌어 획일적인 보호장치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유를 결과적으로 억압하는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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