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6월 3일 <중앙일보> 머리면
여·야 중진 6명 전격회동
정일권·김성곤·이후락·김대중·김영삼·이철승씨
공화·신민 양당 중진들은 2일 밤 서울교외에서 처음으로 한 자리에 앉았다. 선거후의 첫 비공식회담이 된 이 모임에는 공화당의 정일권 김성곤 양씨와 신민당의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씨, 그리고 정부측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참석했다.
이 모임은 미 의회의 청문회에 참석키 위해 5일 일시 귀국하는 포터 주한미국대사를 위해 모 신문사사장이 양주군 덕소에 있는 그의 별장에 마련한 것이다.
저녁 6시부터 8시30분까지 2시간 반 동안의 모임에서 앞으로의 국회운영이나 여야관계 조정에 관해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던 것 같으나 회의에 참석했던 한 사람은 "이런 기회를 통해 격의 없는 대화의 폭을 넓혀야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은 앞으로의 여야관계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임에 나간 사실을 측근에게까지 알리지 않아 사실상 비밀회담이었던 셈이며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도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다.
덕소농장의 여·야 대화
양차 선거 후 여야간부들이 처음으로 만난 덕소의 농장은 K대학임업시험장 깊숙이 자리잡은 한적한 곳. 별로 크지 않은 한식기와집과 정원에 야생수가 무성한 임야와 연못이 이어져있다.
정일권 김성곤 이후락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씨, 포터 대사와 그 밖의 한두 참석자는 바람이 서늘한 장원의 등나무의자에 엇바꿔 섞어 앉았다. 주위에 세워진 횃불이 한결 운치를 돋우었다.
▲K사장 "포터 대사의 이임을 앞두고 송별회를 겸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바쁜 틈을 내주어 감사합니다."
▲포터 대사 "여야중진들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김성곤씨 "내 얼굴은 본래 검지만 여러분들의 얼굴이 까맣게 탄 것을 보니 선거에 고생들이 많았겠읍니다."
▲김대중씨 "김 위원장은 선거구에 별로 내려가지도 않고 거뜬히 당선되었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
▲김성곤씨 "나야 정치를 계속 해왔지만 이철승씨는 10년간이나 정치방학을 하고도 이번에도 나오는 것을 보니까 옛날 가락이 되살아난 것 같더군."
▲김영삼씨 "이효상 의장이 낙선된데 대해 개인적으로는 섭섭하지만 지역감정을 자극한 결과로 볼 수 있겠지요."
▲정일권씨 "김 총무가 대구에 가서 온통 뒤집어놓았다면서요."
▲김영삼씨 "대구시민들의 판단이지, 우리 얘기가 얼마나 크게 작용했겠읍니까."
▲이후락씨 "한미간의 우호증진에 공헌이 큰 포터 대사가 본 우리의 민주역량은 어떻습니까."
▲포터 대사 "이번 선거결과가 특히 잘 설명해줍니다만, 미국 못지 않게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읍니다.
사이밍턴 청문회라도 있게 되면 여기서 찍은 사진과 함께 민주주의가 잘되고 있다는 증언을 하지요."
▲김성곤씨(사진 찍으며) "김대중 후보의 붕대가 오늘 날짜를 잘 표현해서 며칟날 찍은 사진이란 표시가 필요 없게 됐읍니다.(웃음)"
▲포터 대사 "오늘 찍은 사진 잘 부탁합니다."
▲K사장 "앞으로 우리 정치는 오늘과 같은 대화와 명랑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공동된 요망인 것 같습니다."
▲이철승씨 "여당이 이제 독주는 삼가겠지요.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민심을 잘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정일권씨 "여당의 자세도 중요하지만 야당의 협력하는 미덕이 더 많이 요청됩니다."
▲김영삼씨 "정치에 있어 대화는 기본요건이 되겠지요. 대화를 통한 명랑한 정치풍토를 이루도록 합시다."
▲이후락씨 "난 정치를 잘 모르니까, 오늘 음식이 특별히 맛있다는 얘기밖에 할말이 없읍니다."
▲김대중씨 "교외에 나온 탓인지 모든 것이 신선합니다."
▲김성곤씨 "신선한 정치를 위해 다시 한번 축배를 듭시다."
이렇게 교환이 거듭되었다. 8시30분. 참석자들은 각기 승용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왔다. 시내 모처에 2차의 자리가 마련되었으나 김대중씨만은 몸이 완쾌되지 않았다 해서 일찍 돌아갔다.
처음으로 모인 여야회담의 참석자가 흥미롭다. 초청자인 K사장이 혼자 결정한 것인지, 혹은 주빈인 포터 대사나 그 밖의 사람과 상의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김종필씨는 초청대상이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모임에 참석치 않았다.
전당대회와 지도체제 개편문제 등으로 분주하던 신민당의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씨 등 세40대는 2일 하오 거의 같은 시간에 서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날 하오 김대중씨는 동교동자택에서, 김영삼씨는 관철동사무실에서, 이철승씨는 뉴·코리아·호텔의 코피·숍에서 당내 인사들과 만나고 있다가 하오5시쯤 약속이 있다고 자리를 떴다. 비서들도 수행치 못했다.
바로 이날 낮 40대 세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40대 세 사람이 자리를 같이 할 기회를 만들까 한다." "당장 함께 만나서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대여통화나 당내의사소통은 유리상자 속에서 하듯 해야한다".
그러나 덕소회담은 유리상자 속의 대화가 아니었다.
외교사절을 주빈으로 한 외교적 리셉션이라고는 하지만 제한된 참석자, 그리고 초청된 사람의 정치적 비중으로 보아 바로 정치적 회담이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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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대사 송별회 명분 여야 중진 6명 전격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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