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들 "한자까지 공부하라고?"

경제5단체의 한자 능력 평가 도입 관련 논란 예상

등록 2003.12.31 16:26수정 2003.12.3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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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교 1∼2년생은 한자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취업할 때 한자시험을 보아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대학생 김현제(22세·신림동)씨

상당수의 기업들이 내년도 신입 사원 채용 계획조차 세우지 못해 취업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앞으로 취업준비생들은 한자시험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와 한국무역협회(이하 무협) 등 경제5단체는 30일(화)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상근부회장단 회의를 열어, 내년부터 각 경제단체의 신입사원 채용시 한자 능력을 평가하기로 했다. 또한 경제단체 각 소속 회원사에 대해서도 입사시험에 한자시험을 포함하도록 권장하기로 했다.

경제단체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한자 공부를 하면 나날이 확대되는 중국 및 일본 시장에 접근하기가 수월할 것이고, 기업 내에서 쓰이는 문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조성하 전경련 상무는 "앞으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 한자 능력을 평가하게 되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동아시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용어에 버금가는 한자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한자시험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무협 관계자는 "요즘 젊은 사원들은 한자에 약해 독해 수준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주로 읽는 능력 위주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단체의 이같은 결정이 알려진 직후,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중국이나 일본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중국어나 일본어를 시험에 넣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한자시험을 보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한자에 대한 향수를 의미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또 "기업들이 한자 능력도 평가할 경우 영어 열풍이 불 때처럼 초중고생들에게까지 한자 광풍이 불 수도 있다"며 "사적인 단체가 나서서 하는 것이라 무어라 하기는 힘들지만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강재(서울대 중어중문학) 교수도 "우리나라에서 쓰는 정자 한자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상당히 달라, 우리나라 한자를 공부했다고 해서 중국인과 필담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며 "한자 공부를 한다고 해서 중국인이나 일본인과의 교류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다만 "심리적인 부담감 정도는 줄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경련 소속 한 기업의 홍보실장은 "경제5단체의 한자 능력 평가 권고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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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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