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후손도 4세부턴 동포 아니다?

[긴급점검 ①] 자동폐기된 '재외동포법'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 2004.01.02 11:20수정 2004.01.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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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이하 재외동포법)'이 개정시한을 넘김에 따라 재외동포법 가운데 외국국적 관련조항이 1월1일부터 자동폐기됐다. 이로써 법개정을 통해 합법체류와 자유왕래를 학수고대하던 재중동포들의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특히 재미동포 및 유럽동포 등 외국국적을 가진 3만여 재외동포들의 국내체류와 연장, 국내 금융기관 이용과 재산 반입·반출이 불가능해지는 등 법적 혼란과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물론 법무부 개정안은 올해 1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종교·시민단체들은 법무부의 개정안이 재외동포의 권리를 제약한 개악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년간 끌다가 법 개정 시한을 넘기면서 법률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재외동포법'에 대한 문제점을 3차례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편집자 주


'재외동포법' 개정하게 된 배경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는 종교계 1천인 선언.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는 종교계 1천인 선언.재외동포연대
'재외동포법'이 처음 시행된 것은 지난 1999년 12월 2일. 1998년 6월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에게 재외동포를 위한 특례법 제정을 지시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IMF상황에서 재미동포들의 국내투자를 통한 외환유치와 재미교포 사회의 줄기찬 요구가 맞아 떨어져 이 법이 제정됐다.

정부는 재외동포법을 만들면서 의도적으로 재중동포 및 구소련동포를 제외시키기 위해 '외국국적 동포'의 정의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국외로 이주한 자"로 규정했다.

재외동포법의 외국국적 동포들은 △체류자격 2년과 연장 허용 등 출입국상 특혜부여(제10조) △부동산 거래에서 내국민 대우(제11조) △금융거래·외국환 거래에서 내국민 대우(제12,13조) △90일 이상 체류 시 의료보험 가입 허용(제14조) 등의 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즉 재중동포 및 구소련동포들은 '재외동포법' 혜택에서 제외됐다.


이에 돈벌기 위해 한국에 건너온 재중동포 조연섭씨 등 3명은 재중동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인 지난 99년 8월 23일 "재중동포를 차별하는 '재외동포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 2001년 11월 29일 결정문에서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위하여 또는 강제징용이나 수탈을 피하기 위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주동포를 재외동포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자의적인 입법이며, 헌법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2003년 12월 31일까지 법률을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개정안에서 '외국국적동포의 정의'를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직계비속 2대까지를 동포 범위로 한정했다.

동포의 범위를 직계비속 2대로 한정한 것은 외교부의 경우 재외동포법 개정을 반대하는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피하고, 노동부는 재중동포의 급격한 유입에 따른 노동시장 교란을, 그리고 국가정보원은 안보상 문제 등의 이유를 내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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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에 끌려 다니다 무산시킨 책임 국회의원에 있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는 종교, 시민단체의 국회 기자회견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는 종교, 시민단체의 국회 기자회견오마이뉴스 조호진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법개정을 2년간이나 끌다가 무산시키자 그 화살이 국회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모아졌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추진해온 종교·시민단체들은 국회 법사위가 법무부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원회(위원장 함승희)는 작년 12월 24일 한나라당 조웅규 의원 등 55명이 발의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중 개정법률안에 대해 심사를 했으나 법무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난항을 겪었다. 함승희(민주당) 위원장은 법무부와 조 의원 측의 의견조율을 종용하며 법안심사를 보류했다.

이날 법무부 관계자와 조 의원 측은 의견조율 끝에 재외동포법 2조2호 개정안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던 자(대한민국 정부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자도 포함한다) 및 직계비속 중에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를 외국국적동포의 범주로 포함하기로 했다. 법무부의 기존 개정안에다 조 의원 측이 제시한 내용이 괄호안에 추가 삽입된 것이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작년 12월 31일 "법안심사 1소위에서 심사가 끝났기 때문에 조웅규 의원측과 법무부간의 의견조율이 끝나면 내년 1월 7·8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라면서 "전 세계의 650여만 재외동포들은 29일부터 발효된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안을 적용받게 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재중동포 및 구소련동포가 재외동포법에 추가로 포함되지만 직계비속 2대(아들.손자) 이후와 일본의 조총련 재일동포, 무국적동포들은 배제된다. 따라서 법개정 이후에도 배제된 재외동포들의 차별을 문제삼는 헌법소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황윤성 법무부 국제법무과장은 작년 12월 29일 "조 의원 측이 제외동포법 제2조 2호에 추가 문구 삽입을 요청했다"면서 "조 의원의 제시 안을 포함시켜도 법안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조율했을 뿐 합의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황 과장은 이어 31일 "재외동포법과 시행령이 일체가 돼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위헌상태가 해소됐다"면서 "(재외동포법의) 효력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헌법학자와 시민단체들은 황 과장의 해명은 헌재의 결정문과 어긋나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재외동포연대추진위원회는 1일 "헌재 결정에 의해 1월 1일부터는 (재외동포들의) 제 권리가 박탈당하게 되며 법원 등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적용할 수 없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됐다"며 "만약 법무부가 예전처럼 법을 적용한다면 명백히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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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인회, "국회의원들 미국에 손 벌리러 올 생각 말라" 경고

유골을 내려놓고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는 재중동포들
유골을 내려놓고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는 재중동포들오마이뉴스 조호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외국에 정착하거나 망명한 독립투사와 민주 인사의 후손들을 환영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제는 동포로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애국자의 후손들은 가난에 쪼들려 사는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이런 법을 만드는 관료나 이를 통과시키려는 정치인들이 제 정신인지 묻고 싶다"

김상돈(반민특위부위원장)씨의 장남인 김준형(59)씨는 작년 12월 29일 재외동포의 범위를 직계비속 2대로 한정한 법무부의 '재외동포법' 개정안 시행령을 강하게 성토했다. 김씨는 "이승만 정권과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에서 40년을 살다 한국에 왔는데 손자 이후 대(代)부터는 동포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법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어이없어 했다.

법무부의 재외동포법 개정안이 올 1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재외동포 1세대와 아들과 손자(代)까지만 동포이고 4대부터는 법적으로 동포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이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구소련지역으로 이주했거나 취업 등의 이유로 미국 등지로 이주한 해외동포 4세대들은 재외동포가 아닌, 외국인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배덕호(35) 재외동포연대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작년 12월 29일 "법무부 관계자와 조 의원 측이 '동포'의 정의를 추가 삽입했지만 또 다른 차별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다"면서 "그것은 시행령에서 동포의 범주를 직계비속 2대로 못박은 법무부의 개악안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며 위헌 시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다.

미국 뉴욕지역한인회 등 미주지역 단체들은 작년 12월 2일 성명서에서 "뉴욕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동포에게 한 연설에서 재외동포법의 바른 개정과 존속을 약속한 바 있다"며 "더불어 야당당수,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한민국정부 고위관료들도 재외동포법의 존속을 위한 약속으로 동포사회의 환영을 받았다"며 한국 정부와 정치인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이들은 그러나 "동포사회와의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동포사회를 방문, 동포후원회를 조직하는 국회의원, 정치인들은 앞으로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면서 재외동포법의 개악과 함께 법개정 지연에 대한 책임을 경고했다. 이들은 올 초순 법개정 무산에 따른 성명서 발표 등의 대응책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대로 쫓겨나면 한국 동포들 큰일 당할 수 있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재중동포들.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재중동포들.오마이뉴스 조호진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며 50여 일째 농성중인 재중동포들은 한 가닥 희망이었던 재외동포법의 연내 개정이 무산된 데 대한 절망감이 심각하다.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처럼 자유왕래와 합법체류를 요구해 온 이들은 법개정 무산에 따른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법개정이 되더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개악될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에 더 심각한 표정이다. 게다가 자진출국 시한이 연말로 만료됨에 따라 올해 초부터 불어닥칠 일제단속과 강제출국에 떨고 있다.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농성중인 계휘(42·흑룡강성)씨는 작년 12월 31일 "어제까지만(30일)해도 재외동포법이 통과된다는 이야기를 들어 될 줄 알았는데 내년 1월 7.8일로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하다"면서 "그때 가서도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계씨는 "만일에 재외동포법이 평등하게 개정되지 않고 강제출국 시키면 중국에 와 있는 한국의 기업이나 동포들을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극도의 원망이 터져나오고 있다"면서 "조국에서 동포로 대접받기는커녕, 임금체불, 산재, 강제추방 당한 데 대한 분노가 심각한 수준이다"고 동포들의 자포자기 심정을 털어놨다.

'외국인노동자의 집과 중국동포의집은(대표 김해성 목사)'은 작년 12월 31일 긴급 성명서에서 "재외동포법 개정 요구가 줄기차게 제기되었지만 해당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법안 통과가 무산되고 말았다"면서 "강제추방 반대와 재외동포법 평등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재중동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해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고 있다"고 지탄했다.

이와 함께 "농성 기간 동안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서 자살한 스리랑카 다라카씨를 필두로 재중동포 김원섭, 강대걸씨 등 10명이 자살한 비보를 들어야 했다"면서 "고용허가제 대상에서 배제된 강제추방 대상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법화 조치를 요구하며 재외동포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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