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선물로 꽁치를 사면서

2003년을 보내며

등록 2004.01.01 00:01수정 2004.01.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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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백순

2003년의 마지막날 주문진을 다녀왔습니다. 주변에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끝에 꽁치를 사기로 했습니다.

5천원이면 40마리를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서부터 별다른 수입원이 없습니다. 40마리면 어머니와 처갓집, 2살짜리 인화를 봐주는 처제네 집과 나누고도 몇 마리 구워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화엄마의 생각입니다. 경제권이 없는 저로서는 따라 나설 뿐입니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카메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주문진 항에는 고기반 사람반 이었습니다. 회를 뜨고, 대게를 삶고, 콘도에 가지고 가서 먹겠다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꿈틀거리던 문어가 솥 안에 들어갔다가는 더운 김과 함께 오그라져서 나옵니다. 색깔도 곱고 마치 장난감 같습니다.

수조에서 건져진 오징어는 바구니에 담겨서 물을 "찍" 쏟아 냅니다. 화들짝 놀라는 저를 보고 아주머니가 한 말씀 건넵니다.

"아저씨한테 반했다네요, 만원에 네 마리 드릴게 썰어가세요"

사실 오징어는 지금 제 철이 아닙니다. 너무 커서 맛이 덜합니다. 회를 뜰 때에도 두 겹으로 가른답니다. 살집이 두터워 먹기가 불편하죠. 젓가락 만한 게 나올 때 내장만 바르고 껍질 채 썰어서 초장에 버무려 먹는 게 제 맛이랍니다.

아무려면 어때요. 입안에 가득 고이는 침을 삼키며 돌아섰습니다. 담 벽을 따라 늘어선 구이 집들에서는 조개랑 새우랑 양미리가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가끔 통째로 올려진 오징어도 보입니다.

마흔 마리 오천원, 마흔 두 마리 오천원, 지날 때마다 마리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바퀴를 돌고나니 마흔 다섯 마리에 오천원이랍니다.

흥정을 끝내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검정 비닐봉투에 주워 담기 시작합니다. 둘 넷 여섯 아홉….

제가 보기엔 마흔 마리 짜리 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데, 집사람은 마음에 드는 표정입니다. 시장 터를 조금 벗어나니 양미리 손질이 한참입니다. 그물에 걸린 양미를 몸통을 잡고 그대로 잡아당깁니다. 아가미가 터지는 놈들도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한 무더기 쌓아놓고 연출 사진을 찍자고 말하려다 그냥 일하는 모습 그대로 찍기로 했습니다.

공무원들이나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벌써 종무식 끝내고 업무 종친 시간에 어민들은 그물 손질하고 생선 한 마리 더 팔려고 하는데 귀찮게 할 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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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에 정박한 어선 ⓒ 최백순

올해의 마지막 해가 넘어가려는 순간인가 봅니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바닷가 황금빛으로 반짝입니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합니다. 이때가 되면 갈매기도 날개 짓이 많아집니다.

저 배들은 내일 새벽이 되면 바다로 나가고 새로운 일년의 첫 출항이 되겠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천에서 지는 해를 만났습니다. 산불과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산너머로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먼 산에 불이 타오르듯 불은 선을 그렸습니다.

주머니는 넉넉지 않은 한 해였지만 새로운 희망을 안고 시작한 새해였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국회의원끼리 야합하자는 조아무개씨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메모장을 뒤적이다 마음에 쏙 드는 글귀를 찾았습니다.

"의인이 악인에게 다소 핍박을 받은들 그것이 삶의 승패로 결정되던가. 정의는 마지막에 상석의 성좌에 앉는다. 어떤 결과든 하늘이 의로운 자를 버리는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새해에 마음에 꼭 담아두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강릉투데이에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강릉투데이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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