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친일파 청산을 반대하는 까닭

예결위,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예산 전액 삭감 '물의'

등록 2004.01.01 10:55수정 2004.01.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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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 간행한 만주와 중국관내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 ⓒ 민족문제연구소

16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한 채 거꾸로 가는 행태만 보여주고 있다. 각종 개혁 법안들이 표류하거나 개악되고 있는 가운데, 법정 시한을 넘겨 졸속으로 진행된 예산 심의에서도 총선용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무분별하게 늘려 8천억에 이르는 적자 편성을 감행했다.

이에 비해 국민적 공감 아래 성과 있게 추진되던 사업의 예산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액 삭감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 해 12월 29일 국회 예결위의 예산조정소위(위원장 박종근 한나라당 대구 달서갑 의원)가 예산조정과정에서 2002년도부터 2006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자료 조사에 책정된 예산 5억원 전부를 폐기하여, 2차년도 사업 종료와 함께 사업 추진이 좌초되고 만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예산집행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예산 책정을 반대하고 있어 전액을 삭감하였다는 것이지만 정작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만열)는 수 차례에 걸쳐 사업 추진의 필요성과 타당함을 밝힌 바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또 이 사업이 그간 국회 교육위와 예결위가 특별 편성한 예산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국회가 지원한 사업을 스스로 중도 폐기하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ADTOP@
친일단체인물연구사업 5개년 계획 일정표

2002년 :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 중앙편'간행(완료)
2003년 : '일제하 만주 중국관내 친일단체 편람' 간행(완료)
2004년 : '일제하 지방 친일단체 편람' 간행
2005년 : '일제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소속 인물 편람' 간행
2006년 : 연구성과 정보화 및 CD 제작

연구사업 수행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그간 국회가 특별 편성한 예산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2002년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편람(국내­중앙편)'을 발간한 데 이어 2차년도인 2003년에도 만주·중국 관내편을 발간함으로써 일제강점기 연구의 기초자료를 확보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외 매일신보·만선일보·조선일보 등 각종 신문 잡지류의 사료 입력 작업을 추진하고 조선총독부 관리 인명록·공직자 명부·만주국의 조선인 군인·경찰·관료 명부 등 4만여 명을 넘는 인명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이 시기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예산 전액 삭감이라는 의외의 결과에 대해 그 배경을 두고 의혹을 보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계속 거론되고 있는 동아·조선일보의 친일문제나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선친인 조병옥 박사의 친일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예산 심의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 그것이다.

과거사 청산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과 학계는 왜곡된 근현대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연구성과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학문외적 요인들에 의해 저해되는 현상에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친일문제는 현재진행형의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ADTOP_1@
최근 대표적인 친일파 중 하나인 송병준의 증손자가 인천시민들이 7년 동안 반환운동을 벌여 반환이 확정된 부평 미군기지 내 일부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반환 소송을 제기했는데 승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친일파의 재산권은 법의 보호 아래 보장되고 있는 반면, 제2의 반민특위를 꿈꾸며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서명하여 발의된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등 각종 과거사 관련 특별법은 막상 입법과정에 들어서는 거대 야당의 사실상의 반대에 부딪쳐 실종될 위기에 놓여있다.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지, 항상 민의와 반대로만 움직이는 그들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다가오는 2005년은 을사조약 체결 100주년, 해방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등 우리 근현대사의 한 장이 넘어가는 의미 있는 해이다. 지금이야말로 오욕의 역사를 정리해야 할 마지막 순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 때, 16대 국회는 친일청산 노력을 초토화시켜놓고 국민들에게 실망과 절망, 분노만을 남기며 역사 속에 사라질 전망이다.

일제하 단체·인물연구 예산 항목 삭제에 대한 입장

<'일제하 단체·인물연구'예산 지원문제에 대한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

○ 이 사업은 민족정기교육연구회 부설 민족문제연구소가 청원에 의하여 2억 원의 예산으로 2002년도부터 시작하여 2007년까지 5개년을 목표로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이며

○ 현 학계에서「친일」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합일되어 있지 않아, 친일문제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민족문제연구소가 2002년도에 연구하여 제출한 바 있는「일제하 한국 단체 인물 연구 편람집」은 다양한 식민지배 통치기구와 친일기관의 주요기능 및 활동 등 일제시대의 식민지배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집으로 학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 친일에 관한 연구는 범국민적 동의로 이루어져야 하고 또 장기적인 과제로 많은 액수의 경비가 소요될 것에 대비하여 현재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한일과거사사료수집연구및보존사회법」을 제정하여 법률과 예산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사료되나,

○ 이 법이 통과되어 시행되기 전에는 종래와 같이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하여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2003년 12월 29일


<일제하 단체·인물연구 예산 항목 삭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견해>

○ 이 사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정리하고 치유함으로써 새로운 21세기를 열기 위해 국회청원을 통해 2억원의 예산으로 2002년도부터 시작하여 2006년까지 5개년을 목표로 현재 추진 중인 사업입니다.

○ 사업의 성과로는 제1차년도에는 전3권 2,700여쪽의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편-중앙)’과 제2차년도에는 전2권 1,200여쪽의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외편)’을 발간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일제의 식민통치 체계를 해명하는데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어 학계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와 관련 연구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최대한의 성과를 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번 예결위의 계수조정위원회가 내년도 예산을 심의,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제3차년도 사업 항목을 뚜렷한 이유없이 삭제하였습니다. 이 결정은 매우 부당합니다. 첫째, 5개년이 소요되는 계속사업을 뚜렷한 이유없이 중간에 중지하는 일은 전례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성과가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사업을 중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심의 과정에서 신규사업으로 잘못 인지한 데서 비롯한 잘못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과거와는 달리 이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업을 감독하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방식의 문제에서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 추진하는 것이 최상책이나 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기존의 방법대로 지원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 친일 문제가 특정 개인을 비난하거나 포폄하는 일이 아니라 불행한 역사를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 인해 친일파의 후손이 조상땅을 찾겠다고 소송을 내고, 일제 침략기구의 첨병인 면사무소를 역사관으로 만들겠다고 지자체가 수십억의 혈세를 낭비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 국회가 민의를 대변하고 최소한의 상식과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는 대표기구라면 마땅히 올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중단하는 잘못을 범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2003년 12월 29일

덧붙이는 글 | 방학진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방학진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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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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