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세상

디카, 시뮬라시옹, 포스트모던

등록 2004.01.01 10:58수정 2004.01.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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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광고 카피와 영상, 대중스타의 이미지들, ‘이미지’의 범람은 오래 전부터 이미 이른바 포스트 모던 사회를 상징하는 특징적 현상이었다. 대중들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 파묻혀 속수무책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피동적 수용자였다. 그러한 대중들이 요즘 들어선 이미지 생산자의 어마한 대열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함께 손에는‘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를 들고, 이미지의 홍수의 차원을 넘어‘이미지의 범람’의 시대이다.

이미지의‘범람’이라고? 그게 뭐가 문젠데? 이미지가 범람하는 것이 문제일까? 영화 <맨인 블랙2>를 잠깐 생각해 보자.

영화는 허구이며, 이미지이다. 즉, 실제 세계가 아닌 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허구이며,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 배경, 그 안의 모든 페러다임은 실제 인간세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실제 세계의 반영인‘이미지’인 것이다.

<맨인 블랙>은 완전한 허구적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등장한다. 영화 속 제이(윌 스미스 역) 와 케이(타미리 존스 역)는 실제세계의 인간의 반영인‘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의 태도나 행동에서 ('이미지'로서는) 꽤나 특이한 면이 눈에 띤다.

그 첫 번째 제이와 케이에게는 절대 감정의 기복이 없다. 영화의 내용을 잠시만 떠올려보자.

케이는 자신이 일하던 우체국의 점원들이 어느 순간 외계인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하며, 제이는 빌딩만한 외계인들과 싸우기도 한다. 기절 초풍할 사건들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들은 단 한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다이하드를 비롯한 수많은 액션영화들을 떠올려보자.) ‘인간’같지 않은 모습. 제이와 케이는 마치 그들 스스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듯 하다.

하나 더, 두 주인공은 초인적 능력을 지닌다. 그들은 그 험한 싸움 속에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으며, 와이셔츠 단추하나 풀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슈퍼맨이나 베트맨이나 스파이더맨과 같이 어떤 초인적 능력을 갖게 된다는 배경도 없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단지 운동신경이 뛰어난 일반인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실제’를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이미지로 보기에 제이와 케이는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영화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물론 모든 영화는 현실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MIB는 사실과의 그‘괴리’를‘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질적이다. 가령, ‘스파이더맨’은 주인공이 변종거미의 침에 물려 그 DNA에 의해 초인적 능력을 얻게 된다는 둥의 설명을 함으로써,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제이와 케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인간’에 비해 이질적인 것은, 그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MIB 안에서 그들은 ‘원래가’그렇기 때문이다. 원래가 그런 애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질성에 대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제이와 케이는 원래가 그렇다? 혼란스럽다. 그들은 image이지 않은가. image 라는 것은 ‘실제’의 반영이지 않은가. 실제의 반영에 불과한 image가 ‘원래’가 그렇다? 그 image의 ‘실제’는 어떡하고?

MIB는 제이와 케이의, ‘인간’이라는 ‘실제’와의 관련성을 부정한다. 그래서 그들의 무감각함, 초인적 능력의 이유에 대해 영화 밖의 인간들에게 설명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제이와 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는 ‘실제’의 반영인 image가 아닌 것이다.

image는 ‘실제’와의 이원성, 그 괴리로 인해 허구이다. 그렇다면, image와 ‘실제’와의 이원적 연관성이 상실된다면? image는 더 이상 허구가 아니다. MIB는 영화 밖 실제 세계를 인식하지 않는다. 실제와의 연관성을 부정함으로써 창조되는 새로운 image의 세계.

MIB는 이 시뮬라시옹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이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은 현실의 연장선상의 어느 위치, 그 허구를 살지만, 제이와 케이는 단지 그들의 창조된 세계에 산다. 관객은‘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MIB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구경하는 것이다.

<맨인블랙2>는 우리가 알고 있는‘영화’가 아닌‘시뮬라크르의 세계’이다. 오버일까? 모르겠다. 현실문제로 내려와 보자.

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들과 기존의‘사진’혹은 그림들과의 차이는 이미지와 그것의 실체와의 연관성에 있다. 사진과 그림들은 실체의 반영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는 실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찍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같은 대상으로도 여러 개의 이미지가 어떤 것은 추하게도, 어떤 것은 아름답게도 찍혀 나온다.

같은 세상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듯, 사람들의 눈과 관점은 각양각색임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선, 그림도 사진과 다르지 않다. 얼핏, 심하게 왜곡되어 보이는 그림들이 무수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사실’혹은‘진리’에 바탕하고 있고, 세상의 참모습을 바라보고자 하는 인간 군상들의 발버둥이 창조해낸 작품들인 것이다. 즉 사진과 그림들은 ‘실체’를 반영하는 이미지, 이데아를 품고 있는 플라톤의‘동굴에 비친 그림자’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들은‘실체와의 연관성’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쉽게 가공되고, 쉽게 편집된다. 실체를 고민하지 않고, 이미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 카메라의 가장 큰 skill이고, 가장 큰 특성이다. 실체의 반영을 위한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 창조(이것도 창조라고 부를 수 있다면). 디지털 카메라는“‘실체’를 잊어라!”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그 기능을 무기로 자신감 있게.

image와 실체와의 연관성 상실. 이를 통해 image는 더욱더 힘을 얻게 된다. 진짜 아닌‘모조’에 머물게 하는‘실체’와의 사이의 끈을 끊어버림으로써 image는 모조 아닌‘사실’이 되고자 한다. 디지털 카메라가 양산해내는 이미지들은‘시뮬라크르’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한 현상일까?

‘실제’가 의미를 상실하고‘이미지’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주는 ‘코페르니쿠스적 도치’의 현상은 이미 현대사회를 특정하는 하나의 단면이다. 디지털, 인터넷, 대중매체, 그리고 Brand가 지배하는 소비사회. 이 모든 것들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우리가 그 image들에 의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뜻밖에도‘(아무런 의미 없는)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않은’자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실제가 된 이미지,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갇혀‘사실’과 유리된, 허구의 사이버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이것도 포스트 모던한 현상일까?

포스트 모던 시대,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혹은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났지만 여전히 주체성은 결여되어있다. 우리의 관심은 전체 혹은 권력 혹은 어떤 이상향에서 현실로 내려왔지만, 결국 말초감각의 범위 안에 갇히고 말았다. 단순한, 너무나도 단순한, 그래서 천박한 모습이 바로 우리시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모습이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기는 할까? 현실과 유리된,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갇혀있는 현대인들에게 유토피아는 어떤 것일까? 로또에 당첨되는 것? 멋진 스포츠카를 타는 것? 섹시한 여자와 즐기는 것? 현대인들의 유토피아는 말초적이다. 그것에도‘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자에게는‘모순’이 보일 수 없다. 모순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역사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은 현실에 순응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면, 그‘대안’을 생각할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유토피아를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현실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와 이미지의 도치, 이미지의 재생, 이 시뮬라시옹 현상은 이미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를 정체시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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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자 합니다. 오마이 뉴스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형성해 왔다고 믿는데 이제는 저의 작은 의견을 개시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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