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새해 한국 교육계의 화두

[주장] 시험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말자

등록 2004.01.01 14:41수정 2004.01.0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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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 새해가 밝았다. 비리로 얼룩진 2003년은, 이제는 정치권이 깨끗해졌겠지 하고 기대했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절망과 좌절감을 심어주고 사라졌다. 끊이지 않는 비리로 얼룩진 일말의 사태들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정치권이 달라지고 교육문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개선되는 새해가 되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입시위주의 교육가치에 따라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에서 그러한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새해 한국 교육계의 화두는 무엇이 될까? 사람에 따라 그 입장이 다르겠지만 시험이라는 문제야말로 한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시험에 대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라야 모든 교육문제의 실마리가 보여질 것이다.

교육의 문제는 광범위하고 또 다양하며 올해의 이슈가 될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겠지만 그 모든 이슈의 중핵에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이슈의 근원에 있는 게 바로 시험이라고 생각된다. 시험을 바로 알고 시험을 바로 볼 때 한국 교육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은 최상의 도덕가치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교육이란 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고, 도덕적이고 자율적이며 창의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 변함없는 교육의 국가적 목표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학부모와 교사들의 실제적 교육목표는 모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데에 있다.

설령 입시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교사들이라고 해도 잠재의식 속에서 창의성을 포기하더라도 교육이란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안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과 그들에 의해 교육받는 신세대들 역시 시험을 잘보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도덕규범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고 있다. 이를테면 1등을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꼴찌를 하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솔직한 현주소이다.

아직도 교육목표가 시험을 잘 보는 1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1등만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암담하다 못해 참담하다. 학교와 교사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만 되면 된다.

남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나만 1등을 하면 그만이다, 라는 비도덕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들이 쉴 새 없이 육성되고 있다. 그렇게 육성된 인간들은 사회에 나가서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유자가 되고, 아무리 양심적이라는 사람들도 결국 돈 앞에 굴복하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에는 교육자나 학부모들은 결코 교육은 1등을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먼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지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 역시 버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시험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에빙하우스는 그의 망각이론에서 인간은 한번 배운 것은 대부분 망각한다는 것을 밝혔다. 하루가 지나면 70%를 망각하고 한 달이 지나면 80%를 망각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이를테면 복습과정 없이 공부만 시킨다고 했을 때 80%가 넘게 망각된다는 것이다.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고 잘 가르쳐도 그 내용을 아동들이 60%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대부분을 망각한다는 사실은 시험이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교육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은 교육은 반드시 아동이 확실히 이해를 하고 그것이 망각되어지지 않을 때라야 진정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교육이 중요시되어야 할 중·고등학교에서도 시험의 횟수가 한 학기 2회로 제한되어져 있고 이러한 시험횟수의 제한은 학생이 좋은 교육을 받고도 모든 것을 망각할 수 있는 상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 달동안 특정교과 시간에 배운 내용은 매우 엄청날 것이다. 시험은 제 때 보아야 복습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며, 많은 범위를 대상으로 했을 때는 시험이 더 어렵거니와 복습의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두 달 동안 배운 내용을 불과 25문제로 테스트한다는 것은 매우 타당성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그 시험문제는 가르친 내용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이해의 깊이를 측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험을 결과로 보지 말고 과정으로 보자

시험이 내포하는 부조리 중에 하나는 시험을 과정으로 보지 않고 결과로 본다는 점이다. 시험이란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다. 만약에 모르고 있다면 다시 가르쳐야 하는 게 교사와 학부모의 도리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시험을 보고 나면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생각하고 서로 결과를 비교한다. 이것이 현재 시험이 잘못 실시되면서 나타나는 부조리한 현상이다.

교사가 시험을 보지 않고 가르치기만 한다면 그 교육내용을 학생이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 망각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교육에 대한 투자는 헛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부모나 교사가 시험을 보는 목적을 교육내용의 습득을 확인하고 피드백을 주는데에 둔다면 교육내용은 더 내면화될 것이고 더 완벽하게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컨대 시험은 하나의 과정이며 모르는 부분을 확실하게 가르쳐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따라서 중간평가, 기말평가로서 학생의 순위를 매기고 학생들을 서로 비교하며 부화뇌동하게 만들 것이 아니고, 매 단원의 끝에서 학생들의 이해를 깊게 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충하는 수단으로서 시험은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시험을 정례화해서 보는 것보다 교사가 단원의 끝에서 필요할 때 시험을 보는 식의 시험이 학생들의 학력을 신장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많은 시험문제를 볼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해지며 지금처럼 너무 쉬운 문제를 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시험의 성공은 80%의 성공이다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서울대가 고작 세계 74위권의 대학이라는 이 심각한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은 결국 시험이 전부이며 시험을 잘 본 사람은 전지전능하다는 국민적 인식의 결과가 낳은 산물이라고 생각된다.

시험은 교육의 80%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지필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을 교육의 끝으로 인식함으로 인해서 한국의 교육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창의성을 개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오는 대학의 낙후성을 불러일으켰다.

80점의 성공 후에 교육이 해야 할 일은 학생이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의 생각을 정립하고 자기가 배운 이론을 비판하고 현실에 이론을 적용해서 참뜻을 깨닫거나 수정을 하고 그 보다 더 나은 자신의 관념을 창조해내는 일이다. 결국 이러한 일을 대학원에서나 하는 일로 받아들인 결과로 인해 한국 교육은 파행의 늪 속에 빠져있다.

최근 민족사관고에서 '배우고 토론하고 쓴다'는 3단계의 학습방법은 결국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익힌 후에 창의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매우 적절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한편 논술을 대입전형에서 아예 제외한 서울대학교의 조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대학교수들조차 시험에서 100점이면 100점이라는 생각에 물들어 생각의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씁쓸함을 느낄 뿐이다.

시험제도의 개선이야말로 교육개혁의 핵심적인 키

평준화도 좋고 평준화를 보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창의성 교육을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시험횟수만 제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시험의 문제점은 아래와 같다.

첫째, 중·고등학교의 시험횟수가 지나치게 제한 되어있다. 일년에 4번 시험을 보기 때문에 충분한 내용을 테스트하지 못하고 타당도와 신뢰도가 떨어지는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둘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몰아치기식 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몰아치기 시험은 학생들을 부담스럽게 할 뿐 아니라 시간에 쫓겨서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없게 한다. 시험을 더 자주 실시하되 과목별로 필요에 따라 조정한다면 학생들의 부담도 적고 피드백의 효과도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셋째, 학교마다 너무 쉬운 문제를 출제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만의 요소가 되고 있다. 시험의 횟수가 너무 제한되어서 충분한 복습이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시험문제조차 쉬워서 타당성 있는 검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시험을 본 후에 결손을 보충하거나 배운 내용을 비판하고 토론하며 이를 현실에 응용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시험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시험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위험하다. 시험을 바로 알고 시험을 제대로 실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새해에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에 학력신장과 창의성 신장의 열쇠가 있다. 배우고 시험보고 토론하고 써보는 일, 교육과정과 학교교육이 모두 거기에 맞추어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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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에서 3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4차원적 사고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 속에서 4차원적인 문제발견력과 문제해결력으로 수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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