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3, 다대포여! 안녕

2003 다대포 해넘이 축제

등록 2004.01.01 16:43수정 2004.01.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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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한해도 저물어 간다. 연말이면 해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사자성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 넉자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에서는 한 해의 사회상을 사자성어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본을 흉내낸 것이다. 일본은 1995년부터 그 해의 사회상을 한문 글자 한 자로 나타내기 시작했다는데 진(震)이니 식(食)이니 금(金)이니 하고 나타냈다.


'금'은 2000년의 글자로 그 해에 우리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을 기념한 글자라고 한다. 우리 한국의 사정이 일본에도 이처럼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가 보다.

2003년에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란 사자성어가 등장했다. 다사다난 속에서 우왕좌왕했던 한해였던가 보다. 우왕좌왕이란 말 다음으로 후보에 올랐던 말은 점입가경, 이전투구, 지리멸렬, 아수라장이다. 부정일변도의 말이다.

다대포 해수욕장 모래톱 위에 남은 바람의 흔적들, 파도처럼 불어온 바람은 어지러이 흩어진 사람의 발걸음을 아름다운 물결로 묻어 주었다. 2003 한해도 저렇게 묻혀지는 것이리라.
다대포 해수욕장 모래톱 위에 남은 바람의 흔적들, 파도처럼 불어온 바람은 어지러이 흩어진 사람의 발걸음을 아름다운 물결로 묻어 주었다. 2003 한해도 저렇게 묻혀지는 것이리라.정근영
넓게 펼쳐진 다대포 해수욕장 모래톱, 그 위로 파도처럼 바람이 흘러간다. 숱한 발자국들이 모래 위에 덮이고 만다. 그리고 아름다운 작은 물결을 남는다. 그 물결 속에 어지러이 흩어졌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묻혀 있다. 이제 우왕좌왕 어지러웠던 한해 바람결 속에 다대포 해넘이 축제 속에 날려보내자.

낙동강. 한반도 남단 바윗돌을 뚫고 산길을 돌아 산과 들을 묶고 마침내 낙동강 하구 이곳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몸을 푼다. 흔히들 낙동강 칠백리라고 하지만 낙동강의 길이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이 있다. 낙동강의 길이를 두고도 우왕좌왕하는 것인가. 낙동강은 1차수 1634곳, 2차수 397곳, 3차수 85곳, 4차수 21곳, 5차수 5곳, 6차수 1곳에 이르러 드디어 낙동강 본류를 이룬다.

이렇게 수많은 시내가 모이고 작은 강이 모여 낙동강이 되었다. '낙'의 동쪽강, 그 낙은 가락이라고 한다. 가락 곧 가야국의 동쪽에 자리잡은 낙동강, 그 강은 한반도 남쪽을 하나로 묶고 있다. 가락과 신라를 묶고 백제를 묶는 한반도의 핏줄이다.


강원도 황지, 아니 천의봉 너덜샘에서 시작한 낙동강물이 흐르고 흘러 태평양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낙동강 하구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이제 2003 한해를 바람결에 날려보내고 있다. 저 푸른 강물 속으로 흘려 보내고 있다. 다시는 다시는 생각하기도 싫은 한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한해가 아닐까.

날이면 날마다 최루탄을 뒤집어쓰며 눈물을 흘렸고 화염병으로 밤하늘을 밝히고 계엄령이며 긴급조치로 번득이는 총칼 밑에서 제대로 숨을 죽여야 했던 지난 날을 생각한다면 2003 한해는 행복했던 한해였노라고 말할 날이 있을 것이다.


다대포 객사, 사람도 역사속에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이 아닐까.
다대포 객사, 사람도 역사속에 잠깐 머물다 가는 손님이 아닐까.정근영
다대포 객사.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 문화재 제3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조선후기 다대첨절제사영에 있었던 객사다. 다대포는 왜적을 막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후 경상좌도에는 7진이 설치되었는데 그 가운데 부산진과 다대포진이 가장 중요한 진이었고 이곳은 다른 진의 2배의 병선을 보유했고 첨사는 정3품 당상관이 되었다.

객사는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보관하였고 고을 수령은 이곳에서 초하루 보름에 대궐을 향해 망배를 드린 곳이다. 또 사신의 숙소가 되기도 한 곳으로 정당과 그 좌우에는 익실을 두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익실은 없어지고 정당만 이곳 몰운대로 옮겨 놓았다.

객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이다. 안두리 기둥에 절단된 큰 들보 5량집으로 벽이 없다. 다대포 객사 너머로 이글거리는 빛을 토해내며 2003 마지막 한 해를 장식한다.

다대포 객사 저 너머로 2003 한해가 저물어 간다.
다대포 객사 저 너머로 2003 한해가 저물어 간다.정근영
다대포 하면 유신공화국 치하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간첩침투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지금도 다대포 바닷가 큰 길 옆에는 철망이 그 때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구포까지 펼쳐진 강변도로는 시원한 강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민주화의 바람이 이처럼 평화스런 것인가를 실감하게 한다.

우왕좌왕, 갈팡질팡, 점입가경, 이전투구, 지리멸렬, 아수라장이라고 한탄하지만 유신의 그 시절에 지금 같은 평화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도고마장이라고 도가 높으면 마도 높은 탓인가. 겨울공화국의 그 추위를 기억한다면 오늘날의 행복은 분에 넘치는 것이지 않을까.

몰운대도 군사독재시절엔 철조망으로 꽉 막혀 있었고 집총한 군인이 눈알을 부라리며 저 바다를 응시하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그 절경은 부산시민에게 개방되어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사람들로 붐빈다. 화손대 벼랑 위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면 하얀 물거품을 이루고 사라져 가는 파도를 보게 된다. 우리 인생, 우리 한해도 저렇게 물거품처럼 스러져 가는 것이 아닌가.

몰운대, 그 아름다운 경치를 시인 묵객이 놓칠 리 없다. 조선후기 선조 40년에 동래부사 이춘원은 이렇게 몰운대를 노래했다. 정경주가 번역한 시다.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새벽마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묵은 해를 보내며 무슨 소망을 저렇게 적을까. 무병장수?
묵은 해를 보내며 무슨 소망을 저렇게 적을까. 무병장수?정근영
아듀 2003, 다대포 해넘이 축제는 연날리기 대회, 제웅만들기, 소망적기, 길놀이와 사물놀이, 북소리 공연, 송구영신제와 메시지 낭독, 달집태우기, 불꽃놀이로 2003년 그 마지막 시간을 장식했다.

제웅 속에 내 몸에 있었던 온갖 재앙을 끄집어내어 밀어 넣고 2004 새해 소망을 소지에 적어 달집 속에 넣고 태움으로써 액난은 물리치고 행복을 불러본다.

타오르는 달집 속에서 제웅이 불타고 소망이 불꽃 되어 피어오른다.

불쌍한 제웅아, 죄없는 제웅속에 내 몸속의 재앙을 꺼내어 제웅의 몸속에 다 넣어준다. 제웅아, 이 몸에 남은 재앙일랑 모두 네 몸속에 담아서 불태워 버려라.
불쌍한 제웅아, 죄없는 제웅속에 내 몸속의 재앙을 꺼내어 제웅의 몸속에 다 넣어준다. 제웅아, 이 몸에 남은 재앙일랑 모두 네 몸속에 담아서 불태워 버려라.정근영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길놀이, 흥겨운 풍악소리 속에 신구가 바뀐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길놀이, 흥겨운 풍악소리 속에 신구가 바뀐다.정근영
하늘 높이 나는 연, 새해 소망은 저렇게 하늘높이 나는 것일까.
하늘 높이 나는 연, 새해 소망은 저렇게 하늘높이 나는 것일까.정근영
달집, 저 속에 제웅을 묻고 소망을 심어 불태우리라. 저 불꽃속에 재앙은 녹고 새해 희망은 솟아오르리라.
달집, 저 속에 제웅을 묻고 소망을 심어 불태우리라. 저 불꽃속에 재앙은 녹고 새해 희망은 솟아오르리라.정근영
아듀 2003, 저 바다속으로, 아니 바다 건너 저 산속으로 해는 저문다. 모래톱 위에 흔적으로 남은 물결을 남기고서.
아듀 2003, 저 바다속으로, 아니 바다 건너 저 산속으로 해는 저문다. 모래톱 위에 흔적으로 남은 물결을 남기고서.정근영
2004, 다시 찾아온 아침해. 우리집 아파트에서 맞는 해는 너무도 늦다. 온 세상이 환한 07시 55분이다.
2004, 다시 찾아온 아침해. 우리집 아파트에서 맞는 해는 너무도 늦다. 온 세상이 환한 07시 55분이다.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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