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속에 담긴 문학

유고작가 강홍규의 문학동네 이야기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등록 2004.01.02 12:45수정 2004.01.02 16:26
0
원고료로 응원
강홍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마산문화문고 제공
강홍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마산문화문고 제공나들목
문단 에피소드는 술안주로는 안성맞춤이지만 독자들에게 소개하기에는 꺼려지는 부분도 많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거북하게 만들 염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되도록 맹물 맛을 안 내면서 등장인물들의 이름에도 누를 끼치지 않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이 글을 적으면서 가장 고심한 부분이었다.

자신을 7류 소설가라고 불러주는 것을 오히려 고마워하던 작가 강홍규. 바둑기사이기도 했던 그도 박인환의 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처럼 지난 1990년 1월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책은 '그 눈동자 입술'처럼 우리들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다.


스스로를 7류라고 겸손해 하였지만 '소설'이 무엇이며 그리고 '소설가'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있던 고인에게서 본격적인 소설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소설가와 그 소설가들이 모였던 술자리 이야기만을 하는 고인이었다. 그것도 '핑핑 날리는' 현역에서 한발 비켜서 관철동 근방을 어슬렁거리는 '한물 간' 작가들의 옛날 이야기였다.(김성동 서문 '외야에서 게걸음으로' 몇 토막)

유고작가 강홍규가 쓴 문학동네 에피소드 모음집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나들목)이 나왔다. 이 산문집은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작가가 <경향신문>에 '관철동 시대' 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문인들의 이야기로, 어둡고 추웠던 시대를 외골수로 살아냈던 작가들의 눈물과 웃음, 해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이 이번에 처음 묶여 나온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지난 1987년 <관철동 시대>라는 이름으로 첫 출간되었다. 그리고 1990년 작가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다시 빠진 원고를 보충하고 일부 손질을 가해 <문학동네 술동네>란 이름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5여 년이 지난 지금 왜 이 책이 다시 나왔을까.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에 나오는 싯귀처럼 지금도 "저 유리창 밖/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처럼 사람은 가도 그의 글은 여전히 살아 남아서 지금도 문학동네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와 어울리는 술좌석은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가 벌이는 여흥에 손뼉을 치노라면 흥에 취해 술에 취할 새가 없는 것이다. 황석영의 곱추춤은 공(孔)옥진이라도 배워갈 만하다. 그의 거지 타령이나 문둥이 타령은 현역이 없어진 요즈음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할 일이다.


특히 황석영의 '약장수'는 현란하다. 레퍼토리가 대여섯 개가 되는 모양인데 그중에서도 정력제를 파는 약장수 얘기가 사회풍자의 의미도 곁들이면서 청중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이 비아미로 말 할 것 같으면 비아미를 잡아먹고 사는 비아민데…."('약장수 황석영' 몇 토막)



황석영의 익살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명한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 일행에게 황석영이 자기 소개를 하자 일행들이 "예끼 이 사람!"이라고 하면서 "소설가 황석영이 어떤 사람이라고 자네 같은 건달이 이름을 팔아! 엉!"이라고 하자 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죄송합니다. 전 소설 따위는 모릅니다. 이름이 그냥 황석영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저는 약장수 황석영입니다."('약장수 황석영' 몇 토막)

쌍과부집에서 있었던 천상병 시인과 추자댁의 어린 아들 비룡이와의 장난기 어린 이야기도 꽤나 우습다. 추자댁이 시장을 보러 나간 사이 쌍과부집에 나타난 천상병은 술독에 남아 있는 약간 쉰 막걸리 한 사발을 퍼마신 뒤 쌍과부집을 나오려다 어린 비룡이를 혼자 남겨두고 나오기가 몹시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비룡아, 너희 아빠는 어디 있노?"
"울 아빠 어쩌."
"이놈아, 아빠 없는 놈이 어디 있노."
"울 아빠 어쩌."
"너도 아빠가 있다. 그 아빠 이름은 천상병이다."
......

비룡이는 말똥말똥 천상병만 쳐다보고 있었다. 보통으로는 세뇌가 잘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천상병은 얼른 밖에 나가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 들고 왔다. 그러자 비룡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 말해 봐. 우리 아빠는 천상병이다!"
"울 아빠는......"
"천상병이다!"
"천상병이다아-"
"우리 아빠는 천상병이다!"
"울 아빠는 천상병이다아-"

('억척 추자댁 울린 천상병' 몇 토막)


이처럼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에는 윤동주, 박인환, 오상순, 이장희, 김수영, 신경림, 최인호 등 한국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숨은 이야기가 칡넝쿨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더불어 문단 주변에서 떠도는 작가 지망생들의 한탄과 한숨도 식탁 위 나뒹구는 술잔처럼 쓸쓸하게 엎질러 있다.

특히 첫 시집이 제본소에서 불타버려 미리 불운을 예고했던 박인환, 승려에서 잡지사 기자를 거치다가 소설가의 길로 접어드는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신춘문예 원고더미에 묻혀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뻔 했던 조태일의 시 '아침 선박'에 얽힌 이야기는 반복해서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다.

1953년 8월 1일 주간지 <신문의 신문>이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정체'라는 제목으로 한하운을 '문화 빨치산'이라고 고발했다. 한하운이라는 이름조차도 한국을 저주하는 의미의 가공 이름이라고 했다. 시의 내용이 불온하며 공산당식이라고 했다. 심지어 한하운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주간지가 한하운을 그렇게 매도한 것은 그 나름으로 근거가 하나 있었다. 한하운을 <신천지>에 추천한 이병철이 월북 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병철이 서문을 얹은 한하운의 첫 시집 <한하운 시초>도 문제였다. 이 시집이 세로쓰기인데도 좌철(左綴)로 편집되었다는 점이 수상쩍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가로쓰기 책의 경우 왼쪽을 묶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며 보는 것이 상식이다. 세로쓰기 책을 상식을 거부하고 좌철로 편집했으니 '좌익'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문화빨치산 누명 쓴 한하운' 몇 토막)


유고작가 강홍규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은 1950~60년대 '명동시대'부터 1970~80년대 '관철동시대'까지 있었던 문인들의 야사다. 이 야사 속에는 가난 속에서도 기이한 행동과 익살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괴짜 문인들이 나오는가 하면, 불운한 시대에서도 해학과 유머를 통해 이 세상을 질타한 문인들의 재치가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강홍규 지음,
나들목, 2003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4. 4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5. 5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