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의 난' 촬영지 아부오름

제주의 오름기행(8)

등록 2004.01.02 15:12수정 2004.01.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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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해를 맞이하여 아부오름을 찾은 분들이 많다.

새해를 맞이하여 아부오름을 찾은 분들이 많다. ⓒ 김민수


새해 벽두에 오른 '아부오름(亞父岳)'은 원래 계획상에 오르려는 오름이 아니었으나 새해 벽두에 처음으로 오른 오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오른 오름이지만 가장 오르고 싶었던 오름 중의 하나였기에 '앞오름'이라는 표지석을 보는 순간 마치 큰 행운이라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많은 오름을 가지고 있는 송당, 그 곳을 지나다 아직은 이름도 모르는 오름 중에서 가장 오르기 쉬울 것 같은 오름을 택해서 올라가기로 했는데 한 오름은 올라가는 길을 못 찾았고, 당오름으로 추정되는 오름을 오르려다 뒤를 돌아보니 나지막한 오름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a 아부오름 표지석 아래 아부오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오름마다 이런 표지석들이 새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아부오름 표지석 아래 아부오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오름마다 이런 표지석들이 새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 김민수


그 곳에 가보니 '앞오름(前岳)'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표지석 아래에는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산 164-1번지 일대라는 주소와 함께 자세한 오름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구좌읍 송당리 남쪽에 있는, 표고 301m(비고 51m)의 오름이다. 일찍부터 '압오름'으로 불렸고, 송당마을과 당오름 남쪽에 있어서 '앞오름'이라 하며 이것을 한자를 빌어 표기한 것이 '前岳'이다. 또한 산모양이 움푹 파여 있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믿음직하게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아부오름(亞父岳)' 이라고도 한다.

오름 정상에 함지박과 같은 둥그런 굼부리가 패여 있다. 굼부리안 비탈에는 스코리아(scoria)층이 있다. 오름 대부분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공으로 심은 삼나무가 있고, 그 사이로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 등이 있다. 풀밭에는 솜양지꽃, 풀솜나물, 향유, 쥐손이풀, 청미래덩굴, 찔레 등이 여기저기에서 자란다."


a 아부오름을 오르기 전 큰 나무(팽나무로 추정)도 운치가 있다.

아부오름을 오르기 전 큰 나무(팽나무로 추정)도 운치가 있다. ⓒ 김민수


이 설명을 보는 순간 이 곳이 1901년 일어난 제주민란을 소재로 한 영화 <이재수의 난>(1999)을 촬영함으로 유명해 진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교래리에서 수산방향으로 새로 난 길 양옆으로 우거진 삼나무 숲 또한 영화의 소재가 된 곳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재수의 난>의 촬영지로는 성읍 민속마을, 제주민속촌, 섭지코지, 만장굴, 아부오름, 좌보미오름, 동거미오름, 개오름, 백약이오름, 비치미오름, 대정향교, 송악산, 교래숲, 한라산 등 다양한 제주도의 풍광을 담고있다고 합니다. 요즘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대장금>도 제주에서 촬영을 했는데 제주의 풍광만으로도 화면이 주는 아름다움이 별미였습니다.

a 아부오름 오르는 길

아부오름 오르는 길 ⓒ 김민수


1901년에 일어난 '이재수의 난'은 '천주교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학계에서는 이를 '신축 제주교안'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고, 영화란 것은 특정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시나리오가 전개되다보니 그것을 객관적인 결론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재수 난의 원인은 관기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폐단이 그 하나요, 정치권의 힘을 업은 천주교의 폐단 때문이었습니다. 천주교가 전래되면서 천주교의 지배세력은 백성의 원성을 사는 일들을 많이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교세를 등에 지고 이미 팔았던 토지와 가옥을 원가로 물려받고 또 고가로 파는 일, 도당을 이루어 민재를 탈취하는 일, 타인의 금지에 무단 매장하는 일, 범법한 자를 교인이라 하여 석방시키는 일, 교인들을 훼방하면 교회당에 잡아다가 사형하는 일 등이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게 교회가 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자연히 반기를 든 민병들은 각 마을에 있는 천주교인과 가족들을 묶어 오도록 하여 성을 공격할 때 총알받이로 서게 하거나, 작폐가 심하다고 지목된 자는 죽이기도 했고, 결국은 지배권력과 천주교의 부패는 민중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하고 죽이게 했습니다.

결국 이 난을 주도했던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은 사형이 확정되어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죽었습니다. 한편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의 사형에 대해서 도민들이 서운하게 생각하여 60년이 지난 신축년(1961년)에 대정읍 보성리에 삼의사비를 세우고 그들의 의로운 정신을 기념하고 있답니다.

a 아부오름의 능선은 참으로 길다.

아부오름의 능선은 참으로 길다. ⓒ 김민수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지는 못했지만 제주도에 천주교가 전래된 지 2년밖에 안된 시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사실 무고한 천주교 교인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사건의 근본원인이야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과중한 세금징수의 폐단 시정이 목표였으나 결국 근본원인에 대한 처절한 싸움을 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권력자들과 하나되고, 물질적인 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 종교는 구도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요즘 한국 교회와 사찰이 날로 대형화, 거대화되고 있는 현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5공화국 시절에도 교회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를 대형호텔에서 열어가며 얼마나 많이 축복해 주었습니까? 그러나 그 이후 그 조찬기도회를 주관했던 이들이 회개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지 않고 제대로 서려면 물신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a 아부오름 굼부리안에 인공으로 조성된 삼나무 숲.

아부오름 굼부리안에 인공으로 조성된 삼나무 숲. ⓒ 김민수


나지막한 오름, 오름등반의 묘미는 오름에 올라 분화구의 풍광을 보는 것, 그리고 오름등선을 따라 펼쳐진 다른 오름들의 행렬을 보는 것입니다. 아부오름의 분화구는 마치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키는 형상이고, 아래는 인공적으로 만든 삼나무 숲이 둥그렇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삼나무는 방목을 하면서 소나 말이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심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형 삼나무 숲 가운데 있는 삼나무들은 방목하는 가축들의 휴식처요, 관리하는 이의 쉼터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저 굼부리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a 뱀고사리-이파리의 뒷면이다. 편의상 사진을 옆으로 했다.

뱀고사리-이파리의 뒷면이다. 편의상 사진을 옆으로 했다. ⓒ 김민수


올라온 거리만큼 내려가는 느낌, 그리고 더 가파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능선에 섰을 때 불던 추운 바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굼부리 안은 따스합니다. 막 삼나무 숲을 통과하려고 하는데 큼직한 뱀고사리가 푸른빛으로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야, 이 곳은 아직도 가을 같고, 봄 같구나!'

그러고 보니 아부오름 초입부터 서양민들래도 간간이 피어있었고, 꽃향유의 흔적도 남아있고, 쥐손이풀인지 이질풀인지 모르겠으나 단풍이 든 붉은 잎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오름은 어쩌면 두 계절이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맞물려 있는 계절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a 원형 삼나무 숲 안에 있는 쉼터 삼나무숲.

원형 삼나무 숲 안에 있는 쉼터 삼나무숲. ⓒ 김민수


드디어 가축들의 휴식처가 될 수도 있고, 가축을 돌보는 이의 휴식처가 될 수도 있는 삼나무 숲에 다다랐습니다. 햇살 따가운 여름에 아주 긴요한 쉼터가 되겠죠.

누구에게나 쉼터는 필요합니다. 그리고 '쉼'도 필요합니다.

언제부턴가 '빨리빨리'가 우리 사회의 슬로건이 되면서 '쉼'이 '재충전'이 아니라 '게으른 것'으로 치부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쉬었다가도 한 세월이고, 뛰어가도 한 세월입니다.

저는 천천히 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가니 숨도 차지 않고,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것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가다보니 그만큼 소비도 덜하게 되니 그만큼 죄도 덜 짓게 됩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은 일부 특별할 때 적용되는 이야기요, 소비는 엄연히 죄입니다.

a 굼부리 안에서 바라본 아부오름.

굼부리 안에서 바라본 아부오름. ⓒ 김민수


굼부리 안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모습도 색다른 모습입니다.

이 오름을 내려가려면 저 능선을 따라 올라가고 또 다시 내려가야만 합니다. 내려가려면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올라가려면 내려갈 때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사이클곡선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올라간다고, 내려간다고 하는 수치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삶의 지혜가 될 것 같습니다.

a 제주인의 손길이 간 곳마다 돌담은 존재한다.

제주인의 손길이 간 곳마다 돌담은 존재한다. ⓒ 김민수


이렇게 굼부리 안에도 제주인들의 손길이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돌담이 있습니다. 돌담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최근에 알게 된 사실들 몇 가지는 첫째, 경계석의 의미, 둘째, 돌을 골라냄으로 비옥한 땅을 만들고, 셋째, 돌로 경계석을 쌓음으로 바람으로부터의 피해를 줄였다는 것, 그리고 동물로부터 농작물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분도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주 사소한 것, 당연한 것들도 곱씹어보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갑신년의 첫 여행지가 우연치 않게 앞오름(아부오름)이 되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는 믿음직한 가장으로서 살아가라는 의미도 있고, 새해 첫날 그 많은 오름들 중에서 '앞'자가 들어간 오름에 올랐으니 좋은 일, 선한 일에 앞장서는 한 해가 되라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지니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주시에서 오시는 길은 5·16도로를 거쳐 교래리로 들어와 산굼부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수산가는길(아직 공사중임)이 나옵니다. 한 차선은 통제하고 있으나 거길 지나 10여 분 가다 좌측으로 보시면 앞오름이라는 표지석이 보입니다.
그리고 일주도로를 타고 송당으로 들어오시면 '아부오름'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으며 1112도로에서 1113도를 타고 10여 분 가다 우측으로 앞오름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제주시에서 오시는 길은 5·16도로를 거쳐 교래리로 들어와 산굼부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수산가는길(아직 공사중임)이 나옵니다. 한 차선은 통제하고 있으나 거길 지나 10여 분 가다 좌측으로 보시면 앞오름이라는 표지석이 보입니다.
그리고 일주도로를 타고 송당으로 들어오시면 '아부오름'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있으며 1112도로에서 1113도를 타고 10여 분 가다 우측으로 앞오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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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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