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살해, 급브레이크를 걸자

‘자식은 부모 소유물’?…인권의식 실종

등록 2004.01.02 15:42수정 2004.01.02 16:36
0
원고료로 응원
일러스트=장승태
생활고로 인한 ‘자녀살해’와 가족 동반자살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7월 이후 불과 6개월 새 부모에 의해 자녀가 희생된 사건은 전국에서 모두 12건이나 된다. 부모를 포함해 모두 39명이 숨졌고 이중 어린 자녀가 23명이나 희생됐다.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란 전근대적 사고가 아동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우먼타임스>는 ‘자녀 살해, 급브레이크를 걸자’란 주제로 3부작 기획을 마련, 이 같은 비극적 사회 병리현상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필자주>


“오늘처럼 어른인 것이 부끄러운 적이 있을까? 어른들의 잘못으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두 아이의 죽음 앞에 한없이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네티즌 ‘미안’)

“부끄러움과 함께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아야겠다. 나눌 수 있으면 나누어야겠다.”(네티즌 ‘젊은 교사’)

작년 7월 이후 6개월 새 12건 발생, 23명 아까운 죽음

지난 12월 20일 5세, 6세 아이들을 한강에 던져 살해한 비정한 아버지 이모(24)씨가 구속됐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씨에 대한 비난과 함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네티즌들의 글로 가득 찼다. 범행을 저지른 이씨는 도박으로 3500여만원의 카드 빚이 쌓이자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이후 불과 6개월 새 부모에 의해 자녀가 희생된 사건은 전국에서 모두 12건이며 이중 어린 자녀 23명이 희생됐다. 대부분 생활고, 사업실패, 주식투자, 카드 빚이 자녀 살해 및 동반자살의 원인이었다.


생활고를 이유로 내건 자녀 살해와 자살이라는 ‘죽음의 행렬’은 마치 유행병처럼 전국으로 확산됐다. 지난 7월에는 인천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주부가 세 자녀와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울산에서는 주식실패로 손해를 본 30대 주부가 두 자녀를 살해하고 투신했다.

9월에는 전주에서 사업실패를 비관한 30대 남성이 아내, 세 자녀와 함께 탄 승용차에 불을 질러 동반자살했다. 11월에는 대전에서 사업에 실패한 40대 남성이 아내와 두 자녀를 공기총으로 쏴 살해한 뒤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12월에는 서울에서 경마 빚으로 고통을 받던 40대 부부가 두 자녀와 음독자살하는 등 자녀 살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 복지제도 부재도 원인

신광용 중앙대 산업사회학과 교수는 “IMF 사태 이후 경제적 이유로 자녀를 살해하고 동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면서 “자식까지 죽이는 행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부모들이 자녀와 동반 죽음을 택하는 이유를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결국 생명권과 인권이라는 인권 교육이 전무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 ‘사회복지제도의 부재’를 꼽았다. 신 교수는 “일단 부모가 없으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면서 “고아원 등 아동보호시설에 대한 불신이 매우 강하고 사회복지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자녀 살해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조은희 박사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사적인 관계로 인정되기 때문에 부모가 자녀에게 행사하는 온갖 종류의 학대행위가 묵과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할 때 양육권에 제한을 가하는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국가가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에 개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83.5%, 법원 양육권 감시기능 필요

“가족관계를 연구해온 사회학자로서 요즘처럼 위기의식이 느껴진 적이 없다.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기 전에 분명히 아이들을 학대하는 등 아동학대증후군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에게서 양육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자녀양육권에 대한 감시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박사는 최근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자녀 살해와 동반자살에 대해 이렇게 처방했다. 변 박사는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아동폭력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자녀 살해는 아동학대의 극단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변 박사의 지적처럼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현황을 분석해보면 부모에 의한 폭행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아동학대건수 2183건 중 발생 장소는 가정 내가 1777건으로 81%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집 주변 85건, 친척집 80건, 시설 36건, 이웃집 24건 등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부모가 전체의 83.5%(1823건)를 차지했는데 이 가운데 친아버지가 무려 65.5%(1195건)나 차지했다. 가해 부모 가운데 친어머니는 26.6%(485건)로 나타나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었다.

아동학대의 유형은 방임이 전체 2183건 중 665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신체학대 282건, 정서학대 160건, 성학대 129건 등으로 조사됐다.

현재 민법 제909조 1항에는 ‘미성년자는 부모의 친권에 복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은희(한국여성개발원, 법학전공) 박사는 “이 규정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가 복종관계가 아닌 상호 배려하는 관계로 개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조 박사는 “법원은 친권의 남용으로 자녀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을 때 직권상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며 법원은 경고 혹은 일정한 조치를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학대받는 자녀가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사후 대책 등도 충분히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성종합신문 <우먼타임스>에서 제공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신체·속옷 찍어 '성관계 후기', 위험한 픽업아티스트 상담소
  5. 5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전 대법관, 박정훈 대령 바라보며 "왜 '별들'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