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대표단 영변방문 허용" 핵협상 새 국면?

USA투데이 보도... 6자회담 앞두고 '주목'

등록 2004.01.02 17:22수정 2004.01.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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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차 6자회담을 앞두고 다음 주에 방북하는 미국 대표단에 영변 핵시설 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미국의 < USA 투데이 >가 보도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신문은 2일자에서 부시 행정부도 미국 대표단의 영변 핵시설 방문 계획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방북이 성사될 경우 북한이 지난 2002년 12월 3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을 추방한 이후 1년 여 만에 처음으로 해외 시찰단이 영변 땅을 밟게 된다. 특히 부시 행정부가 지난 10월 커트 웰든 공화당 의원을 대표로 한 미국 의회 대표단의 방북을 불허한 것과는 달리 이번 대표단의 방북은 승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방북단에는 1986년부터 97년까지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시스 헥커가 포함되어 있다.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핵무기를 제조한 곳으로 현재 신형 핵무기를 비롯한 다양한 핵무기를 연구·개발하고 있는 핵심 연구소다. 헥커는 소장을 포함해 24년간 이 연구소의 요직을 거친 핵물질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또 대표단에는 스탠퍼드 대학 중국 전문가와 상원 외교위원회 보좌관 2명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 때 북핵 협상에 참여한 국무부 전직 관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북한이 이처럼 미국 대표단의 영변 방문을 허용한 것은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이미 작년 10월 방북 예정이던 웰든을 대표로 한 의회 방북단에게도 영변 핵시설 방문을 허용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웰든의 방북을 불허했다.

< USA 투데이 >는 부시 행정부가 이번 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한 시점이 미국이 북한에 식량 6만톤 지원을 발표한 12월 24일과 같다는 점에서 이번 방북을 꽤 오래 전부터 추진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처럼 북한이 미국 대표단의 영변 핵시설 방문을 허용한 것을 두고 "김정일 정권이 (6자회담을 앞두고) 강경한 협상 자세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반대로 "만약 협상이 타결되면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한다"는 상반된 분석을 내놓았다.


영변 핵시설 방문 결과는?

이처럼 북한이 미국 대표단과 영변 핵시설 방문에 합의하고 부시 행정부가 이를 승인함으로써 2차 6자회담을 비롯한 북미간의 대결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과 미국의 정확한 의도는 좀더 두고봐야겠지만 가장 민감한 핵시설 방문에 합의했다는 것은 양측의 신뢰구축에 일정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시설 방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지, 그리고 육안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확인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 영변에는 5메가와트(MWe) 원자로를 비롯해 사용 후 연료봉의 저장시설 그리고 사용 후 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 시설)이 있다.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재처리 여부와 그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용 후 연료봉의 저장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내부' 방문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북한이 이 수준까지 공개할지는 확실치 않다. 참고로 북한은 이미 8천여 개의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했다고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공언해온 것처럼 사용 후 연료봉의 재처리를 미국 대표단에 확인시켜주면서 '핵무기 개발이 임박해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협상이 타결되면 조속히 사찰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을 방북단을 통해 부시 행정부에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하나는 주마간산식으로 겉모습만 보여주면서 재처리 여부와 그 수준에 대해 여전히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시 행정부의 북핵 정보 판단을 미궁에 빠뜨리면서 방북단을 통해 협상 의지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부시 행정부의 반응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번 영변 핵시설 방문이 성사된 배경에는 부시 행정부의 '승인'도 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지난해 10월말 커트 웰든 방북은 불허한 반면에 '왜 이번에는 승인했는가'이다. 이를 두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 때문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웰든의 경우에는 2단계 해법까지 제시하면서 북미 직접협상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부시 행정부에는 껄끄러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이번 미국 대표단의 방북 결과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에 있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 방문 허용을 추후에 사찰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하면서 진지하게 협상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북한의 기만 전술'로 보면서 기존의 강경 태도를 고수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때마침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부시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리처드 펄 국방정책 자문위원과 '악의 축' 발언이 포함된 부시 연설문 작성에 참여했던 데이비드 프럼이 "북한 핵시설 폭격 계획이 포함된 군사적 봉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책 권고안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31일자에서 리처드 펄과 데이비드 프럼이 미국 정부는 북한이 수용할 수 없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명백한 전쟁 준비와 군사적 봉쇄를 단행해야 하며 여기에는 비무장지대에 전진 배치된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의 힘을 보여주면 "운 좋게도 중국이 김정일 정권의 축출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효과(?)도 덧붙였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물론 이는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정책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펄과 프럼이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들과도 뜻을 맞춰왔다는 점에서 그냥 흘려들을 수만도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6자회담을 앞두고 북미간에는 물론이고 미국 내 강온파 사이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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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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