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따라 신기한 복령 캐러 나섰습니다

나는 한 개도 캐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날이 그립습니다

등록 2004.01.05 17:54수정 2004.01.07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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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저도 복령 캐러 갈라요"하며 따라 나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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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령


오늘은 일곱 살 코흘리개가 아버지 따라 복령 캐러 가기로 한 날이다. 사나흘이나 졸라 산몰랭이(산꼭대기의 사투리)를 넘어 넘어 새벽녘에 출발하여 하루를 꼬박 걷고 땅을 쑤시다가 돌아와야 한다. 자초한 일이지만 맨날 나무만 하러 가는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좋은 계기이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니 들떴다.

"엄마, 거시기 벤또(도시락의 일본말) 챙겨 놨제라우?"
"쩌기 말래(마루)에 있응께, 김칫국물 흘리지 않게 조심혀라 와."
"알았어라우."
"망태에다 잘 넣어서 니가 지고 따라가거라. 글고 지금이라도 안 가면 안 되겄냐?"
"아따 엄니도 시방 그 말씀허면 되간디요…."
"글면 나무 끌텅(뾰족한 잡목(雜木)의 등걸) 잘 살펴라 와."
"하루 이틀 산에 가간디 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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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복령을 잘라 잘 말렸습니다. ⓒ 김규환

꼴 망태는 2개다. 풀을 담아 오던 걸 갈 때는 창(槍)을 넣고, 돌아 올 때는 복령을 가득 담아올 큰 것이다. 종이 가방보다 작은 아담한 망태에는 보자기로 싼 도시락이 들어 있다.

우리 양지마을 방리는 아침 일찍부터 발간 햇살이 한껏 내리 쬐었다. 서리(霜)와 덜 녹은 눈(雪)이 깨어나느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시냇가 물이 튀어 동글동글한 얼음이 나뭇가지와 풀에 매달려 수정처럼 맑다. 툭 하나 떼어서는 입에 넣으니 몽롱했던 잠이 확 달아난다.

복령이 뭣이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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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하나 툭 따서 입에 넣으면 얼마나 시원하던지 목구멍에서 피가 날 지경입니다. ⓒ 김규환


물 건너고 언덕배기를 수도 없이 오르는데 등줄기에서는 땀이 모락모락 난다. 벌써 몸이 풀려간다. 눈 덮인 들판은 보리 싹마저 보이지 않으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아부지 쬐까(조금) 쉬었다 가면 안되끄라우?"
"그려."
"근디 아부지는 왜 힘들게 복령 캐로 다니신다요?"
"복령은 복조리보다 낫고 당귀, 엉겅퀴, 백지, 삽주, 창출, 백출, 천마, 우슬(牛膝), 백작약, 맥문동, 오미자, 구기자 등 일반 약재를 캐고 따는 것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단다. 그건 니기 엄마가 해도 되고…. 그 중에서 백복령 몇 개 캐는 날이면 노다지 캐는 것과 같지. 한약에서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란다."
"글면 우리 집 금방 부자 되불겄네요."
"암은."

잠시 쉬고 나서 산비탈로 접어들었다. '비까리'를 지나 평산(平山) '평까끔'에 이르자 굵은 나무는 베어지고 군데군데 꼿꼿하고 날렵한 소나무 밭이 나온다. 응달진 곳이라 밟히는 곳마다 서릿발(霜柱) 기둥이 스르르 미끄러진다. 투명한 소리에 귀마저 싱그러워진다.

한참을 오르다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선다.

"다 왔능가요?"
"여기가 있을 법하다."

신비한 복령 캐던 짧은 하루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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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나갔는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잎이 퍼진만큼 뿌리도 뻗어 있답니다. 나무 굵기를 보고 짐작할 수 있으면 기초를 갖춘 것입니다. ⓒ 김규환


두 자(한 자는 30cm)나 되는 긴 창을 얼마나 많이 찔러댔는지 땅에 박힌 부분은 하얗고 둥글게 닳아서 흙 한 줌도 붙지 않게 잘 갈려있다. 꺼내느라 작은 창과 부딪히니 "쨍그랑" 소리가 적막을 깨트린다. 'T'자 모양의 손잡이를 잡고 양손으로 "푸~욱" 쑤시기를 한 번 두 번 거듭하신다.

아버지는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매일 산으로 출근을 하셨다. 무쇠로 만든 긴 창을 성냥간(대장간)에 가서 담금질을 해서 녹을 벗겨내니 부러질 일은 없다. 그렇게 날마다 산으로 들어가 나무 뿌리가 뻗어갈 곳을 미리 짐작하고 드넓은 땅을 지뢰 찾듯, 길 잃은 소경이 제 갈 길을 찾아 헤매듯 푹푹 쑤시고 다닌다.

2~3년 전 소나무 밭에 산판(벌목의 사투리)으로 베어진 등걸을 보아 나무 크기를 짐작하고 나뭇가지가 뻗어나간 수간(樹幹)을 셈하여 뿌리가 어느 쪽으로 실하게 뻗쳤을까를 어림셈 하기는 어렵지 않으신가 보다. 가장 실한 쪽을 골라 방향을 정하고 꾹 눌러 주는 것이 복령 캐기의 기초다. 이어 돌이 나오면 그 자리만 피해 주위를 맴돈다.

백복령(白茯笭)과 적복령(赤茯笭)의 가격 차이는 없던 시절 쌀과 보리쌀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소나무를 베고 난 후 그루터기가 발로 살짝 건드리면 툭 넘어질 때 만들어지는 복령.

나무 두께(胸高直徑)가 10cm 이상 되는 조선소나무(육송, 적송, 미인송, 금강송, 강송, 춘양목) 밑 둥지에서 가장 굵은 뿌리 줄기를 따라 내려간 송진이 고구마 혹은 못생긴 감자 모양으로 아이들 머리통만큼 큰 것에서 둥근 고구마 만하게 뭉쳐 있다. 껍질은 타다 만 고구마가 딱딱하게 굳은 껍데기 같다. 그 안에 송진 결정이 모여 찐득찐득한 진만 빠져 엉겨붙은 덩어리가 복령이다.

몇 번 들쑤셔 봤다가 없으면 예전에 봐뒀던 다른 산으로 이동을 하여 그 일을 지속한다. 문득 "찐득"하면서도 찰흙보다 더 끈덕지면서 뭔가 잡아당기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그곳을 파 보면 어김없이 복령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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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먹는 밥은 시장이 반찬인지 어떻게 싸가도 맛있습니다. 작년 2월 유명산 눈밭에서. ⓒ 김규환


부산히 움직이시던 아버지가 아무 발걸음이 없으시더니,

"아야, 이리 좀 와 봐라."
"왜라우? 복령 있간디요?"
"그려. 뭔가 맞히는 게 있당께."
"큰 것인가요?"
"잡아댕기는 힘이 센 것을 보니 솔찬히(꽤, 제법) 큰 것이구만."
"아부지, 저도 이 자리 한번 찔러 볼라요. 그래야 담에 저도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요."
"잡아채지 말고 위에서 아래로 곧바로 눌러야 한다. 알겄제?"
"예."

자갈 만한 돌을 만나 다시 위치를 조금 옮겨 꾹 눌러 줬다. 손에 찰떡이 묻은 듯 창끝을 끌어당긴다. 송진과 날카로운 창의 만남은 강한 끌림이 있었다.

아버지는 약괭이로 주변을 정리하시더니 속살 같은 가는 흙이 나오자 긴 창으로 조심스럽게 파 들어갔다. 한동안 씨름을 하니 한 움큼 주위로 50여cm 깊이로 파졌다. 서서히 드러나는 정체는 분명 까맣고 단단한 복령이렷다!

"아부지 요것이 복령 맞다요?"
"백복령이구만. 서 근(세 근)도 넘을 성 싶다."
"인자 지가 다 캘랑게 아부지는 쉬엄쉬엄 하싯쇼."
"오냐. 아들은 밥 묵을 채비를 하거라."
"예."

겨울 산에서 먹는 점심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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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복령 널어진 풍경이 그립다. ⓒ 김규환


1정(1ha 곧 3000평)을 이리저리 돌며 맨 땅을 쑤셔대니 배가 고파올 때가 된 건 속일 수 없는가 보다. 작은 망태에 들어 있던 보자기를 풀자 밥은 냄비에 들어 있고 김장 김치와 소금과 고춧가루로 짜게 담근 '무짠지'가 옆옆이 놓여 있다. 거기에 김치에 멸치 넣고 짤박하게 졸여 놓은 반찬까지 있다.

눈을 치우고 주위를 정리하여 돌 두 개를 걸고 밥을 먼저 데웠다. 숨만 죽이고 나서 김치조림을 불 위에 올려놓고 아버지를 불렀다. 여름에도 따순 밥(따뜻한 밥) 아니면 드시지 않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해 놓아야 한술이라도 뜨셨다. 지글지글 맛있는 국물이 데워진다. 진달래 가지를 꺾은 젓가락으로 한 가닥 한 가닥 건져 밥에 올려 먹는 그 맛 끝내줬다.

"아부지 많이 캐셨는그라우?"
"인자 다섯 개 캤응께 예닐곱 개만 더 캐면 되겠지."

점심을 먹고 한참을 지나니 햇살이 이곳 응달에도 들어왔다. 서사면(西斜面)에 해가 비추면 짧아진 해는 곧 어둠을 몰고 온다. 내려오던 길에는 토끼 똥이 즐비했다. 쥐 집도 몇 개 보였다.

이 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 하루 내내 쑤셔보고 밀어 넣어봐도 내가 찾은 복령은 하나도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망태에 가득 든 복령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 뒤로 난 아버지를 따라 복령 캐러 다시는 가지 않았다.

밤새 손질하여 평상에 널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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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이 도는 적복령은 백복령 값의 1/5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 김규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거의 뛰다시피 했다. 운수 좋은 날은 꼴망태 가득 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하루 두 주먹을 합친 것만 한 것 대여섯 개 캐오기 십상인데 오늘은 망태가 꽉 차도록 채웠으니 기분도 좋았다.

얼른 달려가서 엄마에게 '나도 한 개 캤다'며 자랑하고 싶어진다. 싱건지국에 저녁밥을 먹고 두 어른들은 도톰한 껍질을 밤 껍데기 까듯 조심히 쥐어뜯고 칼로 이물질을 툭툭 밀어 벗기고는 본격적인 손질을 시작한다.

깨끗한 면을 행주로 닦아 먼지를 제거한 사료 부대를 깔아 놓고 손톱 만한 두께로 일정하게 요리조리 돌려가며 밀어서 깎는다. 마치 세수 비누를 깎아내는 듯한 좋은 느낌이다. 호롱불이 흔들리는 외풍이 심했던 그 집은 복령 손질하느라 밤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얇게 깔아 평상 위에 올려 널린 하얀 백복령과 조금은 붉으스름하면서도 푸석푸석한 적복령이 따로 어울려 지난날 산촌의 겨울은 긴 그림자 밑에 알알이 말라갔다.

다만 마당에 놓아 기르던 토종닭이 휘젓는 일만 막으면 되었다. 이젠 아름다운 그 풍경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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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 뿌리 이것도 구워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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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만난 쥐집.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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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 토끼똥을 만나면 덫놓을 준비를 합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복령 덩어리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 글로 표현하자니 한계를 느낍니다. 누구 복령 사진 있으면 좀 올려 주시지요. 

이젠 우리 나라에 복령캘 줄 아는 사람 과연 몇이나 남아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복령 덩어리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 글로 표현하자니 한계를 느낍니다. 누구 복령 사진 있으면 좀 올려 주시지요. 

이젠 우리 나라에 복령캘 줄 아는 사람 과연 몇이나 남아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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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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