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정국에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딜레마에 빠졌다. 바로 자신도 '물갈이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 때문이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우리 정치권에 고여있는 썩은 물을 새롭고 맑은 물로 갈아버리자.'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동안 지역구도 덕분으로 정치적 장수(長壽)를 누려온 무능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퇴출시키고, 그 자리를 깨끗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채우는 것은 이번 총선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 흐름을 읽어서인지, 먼저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가 정국의 관심사로 등장해 있다. 최병렬 대표를 축으로 하는 주류측에서는 '공천혁명'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서청원 전 대표가 앞장선 비주류측에서는 이를 사당화 기도라고 규정하며 공천작업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최병렬 대표측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물갈이 프로그램을 보면, 한나라당의 물갈이 얘기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확정된 공천규정을 보면 제도를 통한 물갈이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공천에서 현 지구당위원장들의 기득권이 최소화되게 되었고,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공천 부적격자는 사전에 걸러내도록 되어있다. 더구나 선거인단의 90%를 일반 주민에게 개방하도록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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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사들이 참여한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도 김문수 의원이 맡는 파격이 뒤따랐다. 적어도 제도상으로 보면 다른 정당들도 쉽게 시도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다. 최병렬 대표로서는 공천 물갈이를 통한 총선 승리에 정치적 승부를 건 모습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나라당의 이같은 물갈이 시도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트럭으로 검은 돈을 실어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지역구도가 유지될 경우 여전히 많은 의석 수야 확보할 수 있겠지만, '차떼기당'이라는 야유를 들으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예상된다.
특히 접전의 가능성이 큰 수도권에서의 승부를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대대적 변신은 필수적인 선택이다. 낡고 부패한 정당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나는 길만이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살 수 있는 길이고, 그 여부는 물갈이의 수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 대표가 선택한 물갈이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생존전략으로 일단 평가하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이 과감한 물갈이를 한다는데 선뜻 박수를 보내게 되지는 않는다. 우리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원내 과반수 정당이 낡고 부패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기 위해 변신하겠다면 쌍수를 들며 환영하고 나서는 것이 마땅한데, 어쩐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물갈이의 설득력이 가슴으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물갈이를 이끌고 있는 최병렬 대표의 경우를 보며 물갈이 주체와 대상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하며 5·6공 정치를 풍미했던 최 대표. 물론 그의 소신과 추진력에 긍정적인 평가도 따랐지만, 역대 정권을 두루 거친 그 역시 물갈이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경우이다.
더욱이 최 대표는 구시대적 색깔론을 꺼내들며 상대방을 향해 이념공세를 펴는 모습을 최근까지도 종종 보여왔다. 원내 제1당 대표로서 일부 극우단체의 반북집회에까지 참석하는 그의 모습은 냉전시대형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며 과거로 돌아가려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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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다른 사람이 물갈이의 칼을 빼드는 경우였다면, 최 대표 또한 물갈이의 대상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물갈이의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 물갈이를 이끌고 있는 상황. 그것이 지금 한나라당의 물갈이가 안고 있는 한계이자 딜레마이다. 정치권 물갈이라는 국민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비주류가 물갈이에 맞서며 사당화 기도라고 대응할 수 있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가 비주류의 저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니 지역주의에 기댄 낡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저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최 대표 자신부터 스스로를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갈이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자신마저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줄 때, 비로소 최 대표가 시도하는 공천 물갈이는 '공천혁명'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원내총무라는 사람이 "김정일 호감세력이 노무현 지지세력"이라는 색깔공세나 펴고 있는 상황에서 외쳐지는 '공천혁명'의 구호는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린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갈아야 할 물은 무엇인가.
색깔론이나 펴는 낡은 정치, 차떼기로 상징되는 부패정치, 그런 것들이야말로 한나라당이 갈아야 할 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때아닌 색깔론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백배사죄하고, '차떼기'에 대해서는 진상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쳐지는 '공천혁명'의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물갈이는 한나라당 비주류의 물갈이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보여온 낡고 부패한 정치 행태의 물갈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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