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여행(1)...좋은 마음이 사람들을 이어줍니다

등록 2004.01.19 11:33수정 2004.01.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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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장 10박 11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저마다 등짐을 짊어지고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출발하던 날은 봄날처럼 쾌청했습니다. 겨울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습니다.


여행지에서 갈아입을 옷 보따리며 간소한 선물꾸러미 등을 준비 완료하고 떠나는 날 아침. 큰 아이 인효는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들떠 있는데 작은 아이 인상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뒤 개울가에서 나뭇가지로 쌓인 낙엽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인상아 가자!‘
“어딜 가는데?”

아내는 보름 전부터 들떠 이것저것 준비하고 여기저기 연락을 취했습니다. 날짜 조절까지 해가며 제주도에 간다고 누차 말했는데도 인상이는 정작 출발하는 날 어디를 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은 늘 그렇듯이 어디론가 떠난다니 떠나는가 보다, 천하태평입니다. 그렇다고 여행 떠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제주도 가기로 했잖어.”
“제주도? 아참 그렇지, 비행기 타고 가?”

큰 맘 먹고 비행기를 타고 갈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와 가장 가까운 항구인 완도에서 배를 타면 왕복 30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완도항에 자동차를 무한정 세워 놓아도 주차비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a 우리는 여행길에 반드시 도시락을 싸 들고 갑니다.

우리는 여행길에 반드시 도시락을 싸 들고 갑니다. ⓒ 송성영

시간을 다투는 출장 길도 아니고, 급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주도 길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완도까지 자동차로 5시간. 비용도 비용이었지만 쉬엄쉬엄 오고가는 길에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어 여러모로 좋았습니다.

우리식구가 여행을 떠날 때는 반드시 챙기는 게 있습니다. 하루치의 맛난 도시락입니다. 가는 날은 금강 하구 둑에 차를 세워놓고 너른 강을 바라보며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며 소풍 가는 기분을 한껏 즐겼습니다. 금강 하구에서 철새들을 만나고 군산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잡아 타 목포까지 신나게 내달렸습니다. 목포까지는 별탈 없이 잘 왔습니다.

a 금강 하구에서 철새들을 만났습니다.

금강 하구에서 철새들을 만났습니다. ⓒ 송성영

헌데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인가 봅니다. 목포를 거의 빠져 나와 해남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참으로 어이없는 사건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앞차를 들이받았던 것입니다. 좌석이 네 개 딸려 있는 트럭이었습니다. 정지선을 어림잡아 달려왔는데 앞서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 정지선 보다 훨씬 앞에 멈춰 섰던 것입니다.


힘껏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그대로 미끄러져 멀쩡하게 서 있는 트럭을 들이받았던 것입니다. 앞에 선 트럭의 후등이 깨졌고 범퍼가 조금 휘어졌습니다. 프라이드인 우리 차는 헤드라이트가 박살나 버렸고 보닛이 조금 휘어져 잘 닫히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프라이드 역시 굴러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평소 앞차를 들이받는 차들에게 ‘에이그, 덜 떨어진 인간 다 보겠네, 왜 멀쩡하게 서 있는 차를 쫓아가서 들이받구 그려…’ 라며 흉을 보곤 했는데 내가 그 꼴이었습니다. 함부로 혀를 놀리지 말아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흉을 보면 그대로 되받는다는 말이 꼭 맞는 듯합니다.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어 이거 참, 죄송합니다. 죄송해서 어떻게 하지요”를 연발하면서 보험처리 해 주겠다고 하자 트럭 주인이 보험 처리하면 당신만 손해라며 17만원을 요구했습니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라는 심보로 2만원 깎아서 딱 떨어지게 15만원만 받으면 어떻겠냐고 흥정을 했습니다.

트럭 주인 역시 군소리 없이 “그럽시다” 하여 고마운 마음에 얼른 15만원을 내 주었습니다. 물론 거기다가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덧붙였지요.

카 센터에서 우리의 조랑말, 프라이드의 이상유무를 확인하고 다시 목적지 완도를 향해 출발하는데 큰 아이 인효가 그럽니다.

“아빠 트럭하구 박치기 할 때 운전대 꼭 붙들고 고개 숙였지, 덜덜 떨면서….”
“이게 무슨 영화 찍는 줄 아냐, 떨긴 왜 떨어 자식아.”

아이들이 농담을 건 낼 정도로 놀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접촉 사고로 30분 정도를 소비하는 바람에 완도항에 배가 출발하기 10분전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급히 서둘러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제주행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a 제주로 향하는 배안에서

제주로 향하는 배안에서 ⓒ 송성영

우리식구는 그동안 그 흔한 피서지 한번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식구에겐 피서라는 게 따로 없습니다. 맑은 개울을 옆에 끼고 있는 우리 집이 바로 사람들이 놀러오는 피서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피서철에 피서는 가지 않지만 우리식구는 어디에든 가고 싶은 곳을 얼마든지 나다닐 수 있습니다. 산자락에 의지해 살다보니 여행을 떠날 때는 주로 탁 트인 바닷가로 갑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피서철을 피해서 갈 뿐입니다.

적게 벌어먹고 사니 가고싶은 곳을 어떻게 다 갈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서 가고싶은 곳을 꾹꾹 눌러 참고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적게 버는 만큼 가고 싶은 곳을 더 많이 다닐 수 있습니다.

비록 값비싼 숙박업소에서 머물 수는 없지만(사실 집사람이나 저나 값비싼 숙박업소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적게 버는 만큼 시간이 많다보니 가고싶은 곳을 얼마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꽉 채우고 얼마간의 여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우리식구의 여행은 평소 가깝게 지내고 있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숙박을 합니다. 그 분들이 우리 집에 찾아올 때 그러하듯이 선물 꾸러미 하나면 숙식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 분들 역시 우리를 기쁘게 반깁니다. 서로가 반갑고 고마워합니다. 숙식은 그렇게 기분 좋게 해결됩니다.

a 배안에서 컵라면 먹는 사람들

배안에서 컵라면 먹는 사람들 ⓒ 송성영

제주 여행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완도에서 3시간 20여분의 바다 길을 달려 제주에 도착했고 지난 봄, 우리 집에서 며칠을 묵어갔던 제주 토박이 강윤정씨 부부가 선뜻 내준 자동차를 이용해 10박 11일간의 신나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강윤정씨는 우리식구와 인연을 맺고 있는 박진순씨의 여고 제자입니다. 박 선생은 가끔씩 우리 집에 머물다 가곤 합니다. 제주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오래 전 사표를 내고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에게서 듣게 된 얘긴데 퇴직할 무렵 인도행 여비만을 남기고 퇴직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박 선생은 인도에서 몇 년을 지내고 지금은 가진 것 없이 배낭하나 달랑 들쳐 메고 전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 받으면 저 사람에게 건네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좋은 마음들을 이어주는 보기 드문 수행자입니다. 우리식구는 이런 박 선생과의 인연의 끈으로 제주도에서도 몇몇 반가운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분들 중에는 목사님도 스님도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국선도 수사도 있습니다. 종교를 초월해 우리가 평소 알고 지내는 분을 통해 처음 얼굴을 대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 역시 자신의 친구를 반기듯이 우리식구를 오랜 친구처럼 반겨주었습니다. 그 분들의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여행자들인 우리식구의 숙식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분들 역시 언젠가는 우리 집에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 집에 찾아와 우리에게 고맙게 반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11일간의 제주여행에서 우리 네 식구는 제주의 신비로운 풍경들만큼이나 신비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좋은 마음 한 자락이 수많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이어 주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에는 제주도에서 만난 분들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 기사에는 제주도에서 만난 분들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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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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