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빔 입은 채홍이 세배 받으세요

'설' 맞으러 고향으로 향합니다

등록 2004.01.20 01:25수정 2004.01.2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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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빔을 곱게 차려 입은 채홍이가 세배드립니다
설빔을 곱게 차려 입은 채홍이가 세배드립니다이임숙
설이 코앞에 왔습니다. 우리 집은 오늘 시골에 있는 아이들의 큰집으로 떠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귀향행렬에 앞서 길을 나서려는 것입니다. 어쩌면 덜 막히는 도로를 달리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한복은 당최 입으려 들지 않아 늘 새 것을 입어 보지도 않고 작아지도록 하여 애를 태우게 하던 딸아이가 한복을 사달라고 조릅니다. 반신반의하면서 큰맘 먹고 한 벌 사 주었더니 좋아라 하면서 세배 드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합니다.

시골 큰집에는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외가에는 외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염두에 둔 모양입니다. 해마다 아이들의 큰어머니도, 큰아버지도 아직 자기네들은 젊다면서 영 세배를 받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께만 세배 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채홍아, 진수야, 올해는 꼭 큰엄마, 큰아빠, 작은엄마, 작은아빠께도 세배 드려야 한다."

"치, 내 한복은 새것도 아니잖아. 누나만 새것 사 주고…."

우리집 '삐질이' 아들 녀석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려 합니다. 말짱한 새 한복이 있는데도 누나가 새로 얻어 입은 설빔을 질투하나 봅니다.


"엄마, 세배 드릴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만 하는 거예요?"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를 드리면 더 좋지."
"아, 그래요 엄마, 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머리에 아얌까지 쓰고 오늘 우리 채홍이는 기분이 날아갈 듯한가 봅니다.


딸아이는 늘 바지만 고집하였습니다. 아기 적부터 치마라고 생긴 것을 입혀 보려 들면 늘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던 아이가 없는 한복을 졸라서 한 벌 얻어 입고는 저리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철이 들려나 보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습니다.

언제 아이들이 이렇게 커 버렸는지요. 이제 딸아이는 우리 나이로 열 한 살, 아들은 열 살이 됩니다. 시골 큰집의 아이들도 다들 커서 이제는 대학생이 둘이나 됩니다. 세월이 이리 빠르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중년을 넘긴 나이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을 쇠러 고향으로 향하는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이 나 있습니다. 시골에 닿으면 비료 포대를 썰매 삼아 언덕을 구르며 눈썰매 신나게 탈 터이고 얼음 언 물가에 나가 팽이치기를 하겠다고 벼르고 별렀으니까요.

모두들 고향으로 향하는 와중이거나 고향 꿈에 부풀면서 설맞이 준비에 한창일 터이지요? 귀향길 안녕히들 다녀오세요. 설맞이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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