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희씨 마침내 이달말 미국행 기사(2004.1.26)
이 일을 추진하면서 '한 국어교사가 왜 이런 일을 하는가?'라고 자문자답하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닌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이 하지 못한 일을 누군가 불씨를 지펴야합니다. 그래야 후일 부끄럽지 않는 백성이 됩니다.
네티즌들의 성원에 고마울 따름입니다. 우리 백성들 가슴속에 담긴 민족혼을 읽을 수 있었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침 이 열기가 친일파 인명사전 모금에도 이어져서 흐뭇합니다."
- 중국 항일 유적 답사기는 <오마이뉴스>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안동 MBC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3·1절 특집으로 1월 하순에 갈 계획이었다가 만주지방의 날씨 관계로 8·15 특집으로 연기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99년, 2000년 두 차례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상해, 북경, 동북삼성 등 항일유적지는 샅샅이 뒤졌습니다. 안중근 홍범도 이상룡 김약연 윤동주 양세봉 김동삼 윤봉길 김구… 등 헤아릴 수 없는 선열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발자취가 사라지는데 많은 울분도 느꼈습니다.
저는 교육자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젊은 세대를 위하여 아주 쉽게 썼습니다. 2000년에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라는 책으로 펴냈던 것을 지난해에 다시 다듬고 손보아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했었습니다.
하나의 여담은 하얼빈 동북렬사기념관에서 허형식이라는 위대한 독립전사를 만난 것입니다. 그분은 제 고향 경북 구미 임은동 분으로 왕산 허위(마지막 의병장) 선생의 조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알아주는데 정작 고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솔직히 고향사람인 저도 임은동 건너편 박정희 대통령만 알았지요. 그분을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지요. 1942년 일제가 최후 발악으로 빗질 토벌을 하는데도 그분은 결코 소련 땅으로 가지 않고 무장투쟁을 하다가 만주 땅에서 33세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제 방에는 그분의 사진을 네 해째 걸어두고 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을 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분 때문에 성균관대학의 장세윤 교수도, 대한매일의 정운현(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기자도 만났지요. 장 교수는 그분을 연구한 국내 유일의 학자요, 정 기자는 국내 언론에 처음 보도한 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마이뉴스> 기자가 된 겁니다. 저는 그분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평생 숙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느릿느릿 박철
- 어려운 질문인데 인간, 박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청소년 시절의 꿈을 다 이뤘기 때문입니다(비록 무명이지만). 어렸을 때의 꿈이었던 교사가 되고 작가가 되고 기자까지 되었으니…. 그리고 자화자찬 같은데 집념이 강하다고 할까요."
-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내자와 딸(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이론과 2년 재학) 아들(회사원)이 있습니다."
- 끝으로 교단생활을 접으면서 간단한 소회와 청소년들에 대해 고언을 부탁드립니다.
"교육을 바로 해야 나라가 바로 된다고 믿습니다. 특기적성교육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보충수업, 자율학습이라는 타율학습, 이런 게 모든 학교에서 모두 없어져야 학교 교육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내 자식만, 내 학교 아이만 잘 되는 교육이 나라를 망칩니다. 정말 정말 정말 정직한 교육을 해야 정직한 나라가 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 | 박도 선생 소개 | | | | 박도 선생은 1945년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나 구미초등학교, 구미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의 중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의 오산중학교, 중동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 이대부속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다. 작품집에는 장편 소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면 산다> 산문집 <비어있는 자리> <애물단지> < 아버지는 언제나 너희들 편이다> <아름다운 열매> <샘물같은 사람> 등이 있다. 올해 2월말 경 명예퇴직후 귀농하여 글쓰기에 전념할 계획이다. | | | | | |
장시간의 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 사람의 모든 가치를 물질과 권력이 지배하려고 드는 시대에 우리는 참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을 잃고 사는지 박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박 선생님은 우리 시대에 잊혀진 것 같지만 잊혀지지 않은,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아직 살아있는 역사의 진실을 끊임없이 추적하는 역사의 파수꾼 같은 분이다.
남을 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마다 않고 자기만을 위한 일이면 삼가는 마음이 깊고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더 없는 행복이다. 요즘 그러한 사람을 만나기 너무나 어려운 까닭에 박도 선생님과의 조우(遭遇)는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다.
오늘같이 희망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가뭇한 시절에 박도 선생님같이 마음이 듬직하여 행동이 진실하고 일마다 신중하여 한결같은 분을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세상 어디서 그러한 분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살벌한 세상일수록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기댈 수 있는 언덕과 같은 사람이다. 박도 선생이야말로 그런 분이다. 언제나 역사의 진보와 정방향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분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 모두가 존경할 만한 진정한 엘리트요, 사표가 아니겠는가.
박 선생님은 앞으로 더 열심히 글쓰는 작업에 정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시대 글을 쓴다는 행위자체가 우리에게 냉엄한 도덕적 사회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실천적 결단까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박도 선생님의 <샘물 같은 사람>이라는 책에서 소설가 박범신씨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