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했습니다”... “네? 약속했어요?”

사진으로 본 27일 오전의 3당 대표 표정

등록 2004.01.27 19:20수정 2004.01.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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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왼쪽부터 조순형 민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왼쪽부터 조순형 민주당 대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권기봉
오랜만에 3당 대표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차떼기’ 등 정치 자금 수사로 관계가 불편했던 탓인지 서로 견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27일 오전 11시 한국보도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프레스센터 1층 서울 갤러리에 도착한 3당 대표는 또 박관용 국회의장과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과도 마주쳤다.

“이거 하나 때문에 우리 민주당 표가 많이 떨어졌다.” (조순형 대표)
“이거 하나 때문에 우리 민주당 표가 많이 떨어졌다.” (조순형 대표)권기봉
가장 먼저 전시회장에 도착한 조순형 민주당 대표. 유종필 대변인과 함께 사진전을 둘러보던 조 대표는 송영진 의원이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정치 부문 금은상은 모두 민주당 관련 사진이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 대표는 또 뉴스 부문 금상을 수상한 ‘머리채잡이 정치판’을 보며 “이거 하나 때문에 우리 민주당 표가 많이 떨어졌다”며 멋쩍게 웃었다. 사진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분당되기 직전 이미경 민주당 의원이 구주류 한 당원으로부터 머리채를 휘어잡히던 순간을 포착한 것. 이 사진은 당시 거의 대부분의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3인3색? 3인2색? (왼쪽부터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정동영 의장, 조순형 대표)
3인3색? 3인2색? (왼쪽부터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정동영 의장, 조순형 대표)권기봉

“이거 정말 막 가자는 거네?” (왼쪽부터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정동영 의장)
“이거 정말 막 가자는 거네?” (왼쪽부터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 정동영 의장)권기봉
이어 도착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문희상 대통령 비서실장과 함께 전시회장에 나타난 정 의장은 강금실 장관이 “코메디야, 코메디”라고 말하며 웃던 것을 찍은 사진을 지나 한 사진 앞에 섰다.

그 사진이 포커스를 맞추고 있던 것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는 한 구의회 의장. 그런데 졸고 있는 구의회 의장 뒤로 노무현 대통령도 보였다. 연단에서 노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는 동안 그 구의회 의장은 졸고 있던 것이다. 그 사진을 본 정 의장이 웃으며 던진 한 마디.

“이거 정말 막 가자는 거네?”


“허허” (박관용 국회의장)
“허허” (박관용 국회의장)권기봉
다음에 들어온 이는 박관용 국회의장이었다. 박 의장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광주 5·18 묘역에 참배 갔다가 한총련 학생들의 집회로 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탈출’하는 사진과 영화배우 예지원이 국회 대문을 넘으며 자유로운 촬영을 요구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나란히 전시돼 있는 것을 보고 장난스럽게 “허허” 웃었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쳐다보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오른쪽은 박관용 국회의장.
노무현 대통령 사진을 쳐다보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오른쪽은 박관용 국회의장.권기봉
얼마나 흘렀을까? 조순형 민주당 대표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분산돼 있던 사진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사진전의 주인인 사진기자들이 전시회를 즐길 틈도 없이 일제히 렌즈를 빼앗은 이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 실시를 주장하며 단식투쟁을 한 바 있는 최 대표는 당시의 쇠잔했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감회에 젖는 듯했다. 또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비탄의 눈물을 흘리던 한 여인의 사진을 보고는 “아마 당시에 나도 대구에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린.. 친구인가요?
우린.. 친구인가요?권기봉
뻥 뚫린 공간에 3당 대표가 모두 들어섰지만 서로에게 있어 서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을까? 3당 대표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길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애써 서로의 외면하는 듯한 표정들.

이때 박관용 국회의장이 나섰다. 박 의장은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다”며 “내가 한 번 초청할 테니 모두들 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서로 웃기만 할 뿐 또렷하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들은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러나 웃고 있다고 해서 항상 웃고 있는 것은 아닌 법. 개막식이 끝날 때까지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권기봉
박관용 국회의장에 이어 3당 대표가 차례로 개막식 축사를 하자 박 의장이 3당 대표에게 사진 기자들을 위해 ‘서비스’ 포즈를 취하자고 제의,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박관용 국회의장 – “2월 국회와 정치개혁 마무리 잘하고, FTA 합의하겠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3당 대표와) 합의했습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 “네? 약속했어요?”

덧붙이는 글 | www.finlan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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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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