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주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하승창 칼럼] 주민투표를 앞두고

등록 2004.01.29 01:08수정 2004.01.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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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 오전 투표관리소 개소식을 가졌다.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 오전 투표관리소 개소식을 가졌다. ⓒ 황평우

지난 일요일(25일)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에 관한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출범이 있던 날, 부안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하루 전날 있었던 마지막 촛불시위가 끝나자 기다렸다는듯이 많은 눈이 내렸다. 7개월 동안의 갈등과 대립을 수북히 쌓인 눈 아래서 다 녹이고 새롭게 공동체의 의지를 모아 나갔으면 하는 절실한 군민들의 바람을 다 담을 것 같은 눈이었다.

지난 7개월 동안 부안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그럼에도 주민들은 주민투표가 이제 문제해결의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주민투표가 시작됨으로 해서 그간의 갈등과 대립, 반목 대신 귀기울여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다수의 뜻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온갖 경제적 피해와 심리적 좌절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기대는 분명하였다.

그러나 투표관리위원들이 시장과 마을을 돌며 느끼는 그 기대 속에는, 주민투표를 불법이라며 물리적으로 저지하겠다는 군수의 공언, 향토부대에 복무하는 아들들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압박에 또 다른 대립과 대결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처연함이 함께 있었다.

행정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어서 구속력 있는 결정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주민투표가 주민들 스스로에 의해 조직되는 것이 불법일 수 없음은 이미 여러 차원에서 확인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나 일산 백석동의 사례 같은 과거의 사례도 그러하거니와 비록 법원의 해석은 아닐지라도 민변의 법리적 해석도 불법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반대측 주민들에게 스스로 싸움을 중단하고 그간 수도 없이 뿌려진 찬성 논리가 담긴 '얼굴 없는' 유인물 대신 공론의 장으로 나와 이야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민투표에 대해 불법이라며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대화와 토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정부도 지난해 이미 주민투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시기가 문제라고 말한바 있다. 불법논란은 이미 논점일 수 없다.

시기 문제도 실상 논점일 수는 없다. 주민투표의 시기에 대해서는 차분한 찬반논의가 가능한 시점이어야 한다는 주장과 주민투표법이 발효되는 7월 이후에 실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차분한 찬반논의란 찬성측 주장에 대한 반대측 주민들의 협박과 위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주민투표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그같은 행위로 주민투표의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사라질텐데 어느 부안 주민이 그걸 원하겠는가?

a 부안 시장을 돌며 주민투표 참가를 홍보하는 투표관리위원들.

부안 시장을 돌며 주민투표 참가를 홍보하는 투표관리위원들. ⓒ 황평우

오히려 주민들의 걱정은 주민투표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불상사로 주민투표 자체가 무산되거나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간 계속되었던 촛불시위의 중단이 이미 다른 주장에 대한 봉쇄가 아니라 주장 대 주장의 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직접적 의사표현 아닌가?


7월 이후여야 한다는 것도, 이미 그 법 없이도 자발적으로 조직되는 주민투표의 경우에 대해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전례가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극심한 공동체 내의 반목과 대립을 더 오랜 시간 끌어 갈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안위를 유지해야 할 자기 임무를 망각한 처사 아니겠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주민투표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정부와 부안군이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미 방폐장 유치신청 과정에서 절차상의 하자가 있었음은 천하가 다 아는 일. 주민투표는 지난 7개월의 싸움과 촛불시위를 보고서도 전체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른다는 정부와 부안군수에게 주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 보여주려고 주민들 스스로 만든 절차이다.


정부나 부안군이 못하거나, 안하고 있는 것을 주민들 스스로 하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정부나 부안군이 그토록 절실히 원하는 평화적 방법으로, 이마저 막거나 외면한다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더 이상 부안군민들을 '위해서'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부안군이 최소한 해야 할 일은 주민들 스스로 의견을 모아내는 과정을 지켜주고, 그 결과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숙고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더 이상 부안군민들을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의 장으로 내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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