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4일 대북송금 첫공판이 열린 서울지방법원에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출석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들은 한결같이 무죄를 호소하고 있다. DJ 또한 박지원 전 비서실장 등의 무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노갑 고문은 이미 다른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또 국민의 정부 시절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을 당해 특검에 의해 구속된 김태정 전 법무장관(옷로비 의혹), 진형구 전 검사장(파업 유도 혐의), 신광옥 전 민정수석(뇌물수수 혐의) 등도 나중에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 점에 비추어 이들이 상급심이나 혹은 재심을 청구해서라도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 또한 없지는 않다.
그러나 DJ 본인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핵심 가신들이 줄줄이 철창 신세를 진 지금 이 순간에 DJ는 경제(외환위기 극복)와 외교안보(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이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실패한 정치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법정에서의 '유죄'이건 '무죄'이건,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현실 정치에서 주역의 교체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3김 시대'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변화의 거센 흐름이 '인적 교체'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것은 70·80년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함께 한국 정치를 이끌어온 이들의 정치적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으로 들린다. 어쩌면 이같은 변화의 징후는 이미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처음 나타났고, 오는 4·15 총선으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변호사 노무현은 이들이 이끌어온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피크였던 1987년 '민주화 투쟁의 파도'를 타고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리고 정치인 노무현은 마침내 2002년 대선에서 이들의 정치적 수명이 다했음을 알리는 변화의 징후를 읽고 대권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른바 '천·신·정'으로 상징되는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은 DJ와 동교동계가 70년대부터 이끈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변호사 노무현이 가세한 87년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인 문민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역주의 극복 및 부패정치 청산'이라는 두가지 대의명분을 내걸고 민주당을 이탈해 '신당'(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겪은 이른바 동교-상도동 가신(家臣) 출신의 정치인들과 달리 이들이 8년 전인 96년에 쉽게 정치권에 안착해 '무임승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을 영입한 동교동계 인사들이 아스팔트에서 최루탄을 마실 때 안온한 법정에서 또는 방송국에서 길렀던 '전문성' 덕분이다.
이들은 지금 DJ와 동교동계야말로 지역주의라는 부조리의 '몸통'이라고 비난하지만, 이들이 정치권에 쉽게 입문할 수 있었던 배경 또한 지역주의 구도였다.
앵커 정동영이 96년 총선에서 참신한 이미지로 수도권에 바람을 일으켜 달라는 동교동계의 주문을 뿌리치고 전주 출마를 고집해 '전국 최다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목포 출신의 변호사 천정배와 남원 출신의 변호사 신기남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DJ와 동교동계가 정치신인인 이들에게 '호남표가 많은 지역구'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일까. 천·신·정 가운데 일부 인사는 '바보 김근태'의 고백을 계기로 마지못해 스스로 고백했듯이, 자신들이 혁파하려는 그 부패정치의 '검은 돈'과 정치적 후원으로 전도유망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웃자란'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