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포 아저씨

등록 2004.02.02 11:31수정 2004.02.0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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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이상하게 비싸더만… 그래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니까."


모임에 늦게 도착한 친구 녀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씩씩거리며 들어섭니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급한 나머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 갑자기 앞에 서있는 차를 들이박았습니다.

평소 운전 솜씨가 좋아 친구들 중에 베스트 드라이버로 소문이 나 있는데 이번 사고로 그 체면이 다 깎였습니다. 다행히 생각 외로 다치진 않아 병원 갈 일도 없이 친구들 모임에 나와 놀고 있지만 차 수리비가 골치인 듯합니다.

"완전히 바가지야 바가지. 상대방이 아는 사람이라고 갔는데 말이야 내가 아는 카센타보다 두 배나 비싸더라구. 내가 기가 막혀서…. 무슨 수리비가 다 자기 맘이냐."

한 때 뉴스에서 카센타 차수리 업소들의 과잉정비와 바가지 성행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수그러 들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 친구는 53만원에 했는데, 난 바가지 써서 97만원이나 들었네! 에휴…."


정말 큰 차이입니다. 상대방 수리비에 자기 차 수리비, 거기에 보험료에 이것저것 다 더하면 신년 액땜치곤 큰 편입니다. 베스트 드라이버가 사고 당한 것도 울분을 토할 일인데, 바가지까지 썼으니 기분이 상할만 합니다. 친구들이 안 다친 게 다행이라고 그만 술이나 먹자고 위로를 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신나게 퇴근 중이었는데 자전거 도로에 움푹 패인 곳을 보지 못하고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충격으로 인해 자전거 안장에 오는 압력으로 가랑이 사이가 아직도 얼얼하긴 하지만 별로 다친 곳이 없습니다. 정작 다친 녀석은 저의 철마입니다. 중심을 잃으면서 녀석의 머리(핸들)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돌아가 버렸고 바닥에 넘어지며 부딪쳐 몸통 이곳저곳 흠집이 났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부상은 녀석의 다리인 바퀴였습니다. 몸을 추스리고 저의 철마를 일으켜 세웠는데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있었습니다. 바퀴가 펑크난 것이죠. 할 수 없이 녀석을 이끌고 10분을 걸어 집까지 왔습니다.

다음날 철마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자전거포를 찾아 다녔습니다.주변에 카센터는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자전거포는 안 보입니다. 작은 동네 슈퍼 주인 할머니한테 물어 큰 길 넘어 20분을 걸어 오래 된 자전거포집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아휴 정말 찾기 힘드네. 누구 계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낡은 점퍼를 걸친 아저씨가 어슬렁 나오십니다.

"어 뭐 땜시 왔는가?"
"예. 자전거 앞바퀴에 펑크가 난 것 같아서요."
"그래? 그럼 좀 기다려 보게나."

아저씨께서는 빨간 대야에 물을 받아 가지고 다소 느리지만 꼼꼼히 바퀴 안의 고무 호스를 점검하십니다.

"아저씨, 이 고무호스 가는 데 얼마에요?"

고등학교 때 교회를 가다 이렇게 펑크가 난 적이 있는데 그 때 호스를 갈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에도 값싼 자전거에 호스 가는 비용이 꽤 나간 것으로 기억이 나서죠.

"응. 만원이야"
"예? 만원이나 해요?"
"응. 다른 건 8000원인데 자네가 봐도 알겠지만 이런 자전거는 많지 않아서 부품값이 좀 비싸."

아무래도 만원은 나갈 듯 보였습니다. 가랑이 사이가 얼얼할만큼 충격이 컸으니, 고무호스 전체를 가는 건 당연합니다. 안 그래도, 이 자전거포를 찾아 다니느라 짜증이 날만큼 났는데 생돈 1만원까지 완전히 불난집에 부채질입니다.

"근데 학생. 이건 때우기만 해도 되겠네."
"네?"

듣던 중 반가운 아저씨의 대답에 순간 얼떨떨했지만 곰곰히 전 다시 생각을 합니다. 대충 고쳐서 또 이 먼곳을 다시 오거니와 다시 가랑이가 얼얼하도록 아픈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다 갈으면 나야 돈 벌어서 좋긴 한데, 바퀴에 바람이 없는 상태에서 넘어졌구만. 그냥 때우기만 해도 되겠어 3000원이야."

아저씨는 노랑 오공 본드와 동그랗게 생긴 고무를 가져 오시더니 금세 빵구를 때우시고 바람까지 넣어 마지막으로 잘 때워졌나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틀어진 철마의 핸들을 바로 잡아주시기까지 합니다.

처음엔 허름하신 복장의 아저씨를 보고 믿음이 영 가지 않았는데 뚝딱뚝딱 손놀림이 유연합니다. 그리고 생돈 만원이나 나갈 줄 알았는데 천원짜리 세 장으로 수리할 수 있어 더욱 기분 좋습니다.

"자. 다 됐네."
"예. 감사합니다. 또 고장나면 여기로 올게요."
"허허. 고장나지 말아야지. 이거 하나 먹고 가게."

엉겁결에 음료수를 받았지만 3000원 수리비에 병음료수까지 주니 기분이 좋다가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 이러면 뭐 남아요?"

아저씨는 입가에 환하게 미소를 띠고 음료수를 들이킵니다.

"어. 안 남아. 조심히 잘 몰고 다녀 또 빵구내지 말고."

핸들과 앞바퀴를 완전수리한 철마는 저를 태우고 달리기 시작합니다.값싼 수리비로 저의 기분도 기분이지만 자전거포 아저씨의 정직하고 따뜻한 사랑을 받은 철마는 더욱 더 즐거워 보입니다.

친구 녀석의 차수리비 투정이 또 시작입니다. 몇 십만원을 뒤집어 썼으니 분통이 터질 겁니다. 벌써 수리에 대한 계산을 하고 1주일이나 지나서 다시 물리는 것도 어려울 듯합니다.

'어. 안 남아.'

하시며 씩 웃던 아저씨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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