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커간다

<서울로 간 허수아비>의 동화작가 윤기현 선생 강연

등록 2004.02.03 12:14수정 2004.02.0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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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샘 어린이 도서관 겨울 독서교실 첫날(2일). '농촌작가'로 널리 알려진 윤기현 선생을 모시고 <오늘의 농촌 현실과 아동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강연은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 50분을 하고 잠깐 쉰 다음, 어른들을 위한 강연이 약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선생은 주제에 크게 구애됨 없이 먼저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중심으로 어린이들과 자모들(주로 여수·순천 동화읽는 어른 모임 회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술술 풀어 놓으셨다.


그는 살아오면서 동화를 쓰게 된 계기와 농민 운동을 해 온 과정, 그리고 극에 달한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교육, 가정 해체 문제들에 관해 주로 말했다. 다음은 기자가 강연 내용을 듣고 정리해둔 메모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필자주>


정병진
1. 어린이들에게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제가 어릴 적에는 시골에도 아이들이 참 많았지요. 여러분 중에 <달걀밥 해 먹기>를 읽고 "그걸 어떻게 해 먹을 생각을 했느냐?" "정말 맛 있느냐?"하는 질문을 하는데, 그 책에 나오듯이 시골 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노는 것이 일상이고 그렇게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해요.

이를테면 요즘처럼 겨울에는 동네 친구들이랑 산에 올라 토끼몰이를 하곤 했지요. 산짐승들이 뒷다리가 길잖아요? 그래서 오르기는 잘해도 내려오는 것은 잘 못하니까 위쪽으로만 도망치거든요. 그래서 산꼭대기 쪽에 친구들이 여럿 지키고 있고 밑에서부터 몰아서 잡는 것이지요.

시골에서 자라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동화를 쓰면서 소재가 참 많아요. 다른 동화 작가들은 동화 소재가 궁해서 고민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나는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그것이 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더불어서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여러분들같이 도시에서 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 학교, 학원 이 세 곳만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왔다 갔다 하면서 꽉 짜여진 틀 안에서 크고 있지만 농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보통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만 해도 족히 한 시간 이상이나 걸리지요.

그렇게 걸어가는 시간 동안 같이 걷는 친구와 더 깊이 사귈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어요? 어렸을 때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야 해요. 다 크고 나서 친구를 사귄다고 그러는데,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그때 나쁜 친구들 만나 엉뚱한 데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선 시대 같이 봉건왕조 시대에는 어느 집안, 누구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냐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규정되었어요. 좋은 집안에 태어나야 대접받는 시대였지요. 그 다음, 근대에 들어와서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최고였어요. 그래서 해외 유학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사회에서 지도자 노릇을 했지요.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또다시 바뀌었어요. 이제는 정보만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어요. 그것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더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절대 빈곤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 정도 밥은 먹고 살아요. 힘이 세거나 집이 부자거나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이제는 뛰어난 창의력과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시대이지요. 그러면 어디서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간단해요.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 많이 뛰어 놀아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 부모님들은 맨날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 말만 하지요? 그러니 놀 시간이 좀처럼 없는 건 당연해요. 그럼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서 지혜가 필요해요. 부모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으니까 공부와 놀이를 같이할 궁리를 해야겠지요.

수학 문제 한 가지를 풀더라도 그것을 친구들과 놀이로 만들어 풀어보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공부를 놀이로 승화시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분명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에요.

사람을 아는 공부보다 더 좋은 공부가 없어요. 여러분이 친구 대신 맨날 가지고 노는 컴퓨터도 알고 보면 사람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사람 머리를 보고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놀면서 창의력도 키우는 여러분이 다들 되었으면 좋겠어요.

2. 자모들에게

저희 할아버지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가 기독교를 믿으면서 집안 친척들의 미움을 톡톡히 받았어요. 그래서 해남에 들어와 당시 상것들이나 한다는 질그릇 만드는 일을 했어요. 그렇게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면서 내가 열다섯 살이 될 무렵, 같은 교회 청년들과 "왜 우린 가난하고 못사는가?"에 대해 생각을 나눈 적 있어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맨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이나 우리 모두 착하게 사는데, 왜 우리는 가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 열 명을 꼽아서 그들이 잘 살게 된 이유를 따져 보았어요.

그랬더니 그들이 모두 아주 못된 사람들이었어요. 지주 아들로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거나, 일제 시대 친일을 했거나, 면서기이거나 뭐 다 그런 식이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무턱대고 시키는 대로 하면서 착하게만 살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요구도 하자고 결심했지요.

그래서 당시 소작료가 5:5 인 터라, 이걸 뜯어고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일제 시대만 해도 6:4였는데, 5:5는 해도 너무하다. 소작료를 인하하라"는 요구를 했지요. 당시가 60년대 말이었어요. 우리는 지주들에게 요구를 했건만 난데없이 경찰들이 몰려와서 우릴 잡아가는 거예요. 그 당시 경찰들 말을 들어보니 우리를 보고 "자생적 공산주의자"라고 해요.

그때 정말 죽도록 두들겨 맞았지요. 하지만 교회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공산주의자로까지는 몰지는 않더군요. 종교가 공산주의는 될 수 없으니까. 당시 우리 교회 목사님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고 나와 보니 그래도 품삯은 올랐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부분을 고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하면 힘은 들지만 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그때부터 갖게 되었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는 이래요. 제가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오르간 반주를 했어요. 어느 날 반주 연습을 하려고 교회에 갔더니 아주머니인 집사님 한 분이 눈물로 기도를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기도 중에 오르간을 칠 수는 없으니까 기도가 끝나기를 한참 기다렸지요. 나중에 왜 그리 우시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해요.

그 아주머니가 동네에서 착하고 부지런하기로 소문났어요.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분이었지요. 그런데 그 날, 아들이 도시락을 놓고 가서 학교에 도시락을 갖다 주러 갔다는 거예요. 농촌 사람들이 무슨 멋드러진 옷이 있나요? 몸뻬 바지 차림으로 평소 일하던 모습을 하고 도시락을 들고 갔더니 아들이 부끄럽다고 화장실로 숨어 버렸대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을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반 아이들을 풀어서 찾도록 했다는 거예요. 그 애는 나중에 엄마 앞에 와서는 도시락을 건네 받자마자 뭐 하러 창피하게 여기까지 왔냐며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는군요.

어머니로서는 아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고 너무나 기가 막혔고 충격을 받았던 거예요. 지금까지 아들 하나 바라보고 힘겨워도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왔는데, 자기 몸으로 낳은 아들이 이러니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농촌 사람들이 무얼 잘못한 게 있다고 자기 아들에게까지 이런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나 하면서 고민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만약 여러분이 그 아들이었다면 달랐을까요? 그래서 당시 교회 학교 예배 시간에 동화구연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때 내가 나름대로 지은 농촌의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들이 다음부터는 동네 어른들을 보고 꼬박꼬박 인사도 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들의 부모님이 단지 무식하고 못나서 시골에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정병진
그러던 어느 날, 황석영 선생이 해남에 들어와 살 무렵 그런 이야기를 들려 줬더니만 그거 어느 책에서 보았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생각해서 지은 거라고 했지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황석영씨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내가 해 준 이야기 같은 건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대요. 그러면서 아주 좋은 내용이니 그걸 글로 써보라고 하더군요. 당시 내가 초등학교밖에 졸업을 못했고 글이라고는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우연치 않게 <기독교 교육>이라는 잡지에 동화 원고 모집하는 것을 보고 대학 노트에다 써서 한번 보내 봤어요.

그러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 데, 당선되었다는 통지가 왔더군요. 난생 처음 써 본 동화가 당선된 거예요. 그래서 시상식에 꼭 참석하라고 해서 갔더니 심사위원 가운데 한 분이 한쪽으로 불러요. 그 분이 내가 대학 노트에다 써서 보낸 원고를 원고지에다 옮겨 적어서 제출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원고지에다 작품을 써보라고 원고지 쓰는 법에 관한 책을 한 권 같이 주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원고지에다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작가로 등단하고 나니까 같이 농민 운동하던 사람들이 글쟁이로 나설 것인지, 운동을 같이 할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어요. 당시는 워낙 독재와 민주라는 전선이 분명했던 시절이었고, 소위 지식인이라면 모두들 독재 정권의 앵무새 노릇이나 하는 교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글쟁이에 대한 인식이 아주 안 좋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현실 문제가 더욱 시급하기 때문에 운동을 택했습니다. 당시에는 신앙적인 부분도 작용했어요. 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분들도 글 한 줄 직접 남긴 것이 없잖아요? 삶의 문제에 뛰어들어 제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글이라는 것은 후세에 다른 사람들이 남겨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크리스천 아카데미와 가톨릭 농민회에서 하는 농민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농촌 문제를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지요. 그 후 당시 심각했던 각종 농민들에 대한 부당한 세금들, 예를 들면 수세 싸움 같은 것을 조직하고 투쟁을 벌였어요.

80년 5·18이 터졌을 때는 도청에 들어가 총 들고 시민군으로 싸우기도 했는데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어요. 그 뒤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단단히 찍혔지요. 그 다음부터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찰의 뒷조사를 받고 끌려가 다쳐요. 그러니 운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었지요. 그래서 한 2년 동안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면서 구상했던 작품을 썼는데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서울로 간 허수아비>예요.

이 책은 나온 지 얼마 안 되서 판금이 되었어요. 그런데 판금이 되니까 더 많이 팔리더군요. 당시 전국의 대학생들이 1만 명씩 농활을 가고 그러던 시절이었는데, 그 책을 여러 권씩 사서 들고 갔어요. 그렇게 농민들과 농촌 아이들을 만나고 그랬거든요. 그런 까닭에 공식적인 통계 외에도 엄청나게 많이 팔린 책이 되었어요.

그동안 '동화'하면 기껏해야 왕자, 공주, 무지개, 하늘, 이슬, 뭐 이런 판에 박히고 허무맹랑한 주제나 내용들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었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간 허수아비가> 나온 뒤부터 점차 바뀌기 시작했지요.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고, 그렇게 현실을 담은 책들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먹혀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산하' '창비' 같은 출판사에서 그러한 책들을 연달아 만들어 내었어요.

하지만 저는 농민 운동이 더 절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품 활동보다는 오랫동안 농민 운동과 관련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해 왔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시대도 변하고 내가 아니어도 뛰어난 젊은 운동가들이 많이 생기고 하니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기 위해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2천 년대 들어서 생겨나는 문제가 바로 도덕적 해이잖아요? 내가 책임져야할 문제인데도 남들에게만 자꾸 전가시키려 든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말기 시대를 살면서 신자유주의 같은 것들을 통해서 인간성이 말살되고 삶의 뿌리가 뽑히는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작품을 쓰려고 해요.

그래서 자꾸만 사라져 가는 농촌 공동체의 건강한 모습을 증언하고 복원시키자는 내용으로 글을 쓰고 있지요. 최근에 쓴 <달걀밥 해먹기>나 <당산나무 아랫집 계숙이네> 같은 책들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결국은 인간의 근본이 되는 농촌 공동체를 떠나서는 안 되고 거기에다 희망을 둬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그것이 자꾸만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그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문학이 제 인생의 목표는 아니에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어 있고 작품을 쓰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니겠어요?

요즘 사스다, 돼지 콜레라다, 조류독감이다 난리지요? 왜 그렇게 되었지요? 경쟁, 속도, 효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옛날에는 닭이나 오리 같은 것을 지금처럼 집단으로 대량으로 사료 같은 것을 먹여가며 키우지 않았어요. 그래서 가축들이 저항력이 강했고 지금처럼 집단적인 발병을 할 위험도 적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닭만 하더라도 양계장에서 심야까지 전등을 환하게 밝혀두고 억지로 알을 낳게 하잖아요? 그렇게 혹사 당하는 동물들이 저항력이 없어서 병원균에 감염되면 집단 발병을 하고 집단 폐사를 하고 있어요.

그러고도 TV 같은 매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집단 폐사한 오리나 닭 같은 것을 땅에다 묻는 장면을 보여줘요. 이런 것을 보고도 어느 누구 하나 잘못되었다고 따지지 않고 있지요. 그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한 생명인데 말이예요.

더욱 무서운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동물들말고 사람의 차례가 얼마 안 있어 올 거라는 사실이에요. 생각하기도 끔찍하지만, 사람이 불치의 병원균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한군데 모아서 집단 학살을 시킬 것인가요?

요즘 자녀들 교육 문제 때문에 부모들이 난리법석인데, 교육 문제는 어린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부모들의 문제예요. 그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어린이들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가 아닌가요? 결정권은 어른들이 쥐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자기 자식들 출세시키자고 너무 극성을 부리다가 "저항력 없는 아이들"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없으면 스스로 밥도 제대로 못해 먹는 정도가 되었어요.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광고와 섹스로 대표되는 사회인데, 사람들이 광고 같은 것에 자꾸 현혹되다 보니 어느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인지를 잃어 버렸어요.

그래서 남자들도 남들이 예쁘다는 자기 아내는 맘에 안 든다며 자꾸 다른 여자를 찾고, 여자들도 광고에 나오는 기준에 따라 예쁘게 만든다고 멀쩡한 얼굴 뜯어고치고 있어요. 광고에 나온 대로 예쁜 눈, 코, 입 조각 조각 내서 뜯어고치려고 성형수술 해봐야 그 모습이 괴물밖에 더 되겠어요?

그 결과는 갈수록 이혼율만 높아지고 가정이 해체되어 오갈 데 없어진 아이들이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지고 있어요. 그러니 해체되는 가정을 통합시키는 것으로 가야 해요.

<동화 읽는 어른 모임>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은데, 이런 모임이 단지 자신의 지적 만족이나 채우고, 단지 까페 문화로 새로 나온 작품 토론이나 하면서 끝나서는 안돼요. 현실을 외면한 채 단지 가벼운 재미만 추구하고 또 그러한 작품들이 대단한 것처럼 평가된다면 그건 아니라는 것이지요. TV에서 밤이고 낮이고 계속해서 오락 프로만 내보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나는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동화를 쓰느냐 하면, 신자유주의로 인해 80대 20의 사회가 된 이 마당에 맨 뒤끝에 있는 10명, 20명의 사람을 위해 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앞의 잘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 동화는 별로 필요 없을 거예요.

그러나 뒤쳐진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구원이 필요한 것이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거지요. 결국 진리는 거기에서 나온다고 봐요. 소외된 사람들은 자기 고민을 해결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극복하는 지도자도 거기서 나오기 마련이지요.

서울로 간 허수아비 - 제2판

윤기현 지음, 정효정 그림,
산하,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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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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