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마을서 500년째 장승제

여주 강천면 적금2리, 사람뿐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의 안녕 기원

등록 2004.02.05 00:01수정 2004.02.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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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주가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태우고 있다

제주가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소지를 태우고 있다 ⓒ 이장호

작은 농촌 마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사흘에 지내는 장승제를 500여 년째 이어오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마을은 영동고속도로 여주-원주 사이에 자리잡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적금2리로 올해도 주민들이 모여 3일 오후 6시경부터 장승제를 지냈다.

매년 음력 정월 열사흘에 지내는 장승제는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주민들 중에서 제주(祭主)를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제주의 집과 장승 앞에 금줄을 쳐서 잡인의 출입을 막고, 몸을 정갈하게 하게 하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주의 집 금줄만을 걷어낸다.


제주는 마을 주민들 중에 흉한 일이 없고 그 해에 운수가 좋은 사람을 선발하며 제주로 뽑힌 사람은 장승제를 지내는 날까지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로 뽑힌 사람은 장승제를 지낸 뒤 주민들과 외부인을 초청해 술과 떡을 나눠 먹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한다.

올해의 제주로 뽑힌 이범준(51)씨는 “나이가 어린 데도 제주로 뽑혀서 영광”이라며 “젊은 세대들이 장승제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 마을 김흥수(81)옹은 “장승제는 아주 어려서부터 지내온 것으로 기억한다”며 “올해엔 장승을 깎지 않고 그냥 제만 지내고 2년에 한 번씩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기 때문에 내년엔 장승을 새로 깎아 세우는 장승제가 열린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원래 동네가 영동고속도로 너머 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을 비롯해 우마(牛馬)가 죽어나가는 등 흉한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던 중 한 도인이 나타나 지금의 마을 위치를 정해 주면서 격년으로 새로운 장승을 세우고 제를 지내되, 장승제는 매년 지내야 한다고 일러줘 장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 장승제의 특징은 사람들에 대한 기원뿐 아니라 우마(牛馬)의 건강에 대한 기원을 하며,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통사고 예방 기원 등 다양한 내용으로 치러진다는 것이다. 또한 주민 가가호호마다 가정사에 따른 기원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김아무개씨 댁 소지입니다. 올해는 김아무개씨가 술을 적게 먹고 작년에 시작한 00일이 잘 되게 도와 주십시오”하는 식으로 제주가 마을 주민들의 사정에 따라 바라는 바를 함께 올린다.


강천면 적금리는 원래 강원도 원주시에 속한 지역이었으며 ‘적그미’ 또는 ‘적금동’이라고 했는데 고종 32년(1895년)에 여주군에 편입된 곳으로, 옛날엔 사금을 채취하여 금을 거래했다는 ‘관방골’, 사금을 채취하던 ‘야금물’, 찬물이 나는 샘이 있고 진흙이 많아 보습성이 뛰어난 ‘참샘들’이라고 하는 정겨운 고유 지명들이 아직도 전해지고 있는 시골마을이다.

덧붙이는 글 | 여주신문, 서울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주신문, 서울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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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에서 지역신문 일을 하는 시골기자 입니다.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며, 이런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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