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레의 시민과 성웅 이순신의 차이

<현대조각의 거장- 로댕> 전시회에 다녀와서

등록 2004.02.09 00:52수정 2004.02.0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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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깔레의 시민, 1889, 청동, 252×283×223cm

깔레의 시민, 1889, 청동, 252×283×223cm ⓒ 로댕갤러리

출퇴근 시간이면 콩나물 시루가 되어버리는 지하철과 의사와는 무관하게 들이킬 수밖에 없는 매캐한 매연. 무표정한 표정의 사람들과 ‘네 갈 길’과 ‘내 갈 길’이 하나가 되어 본 적이 없는 도시. 서울 생활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 생활도 그리 나쁘지 않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힘들이지 않아도 좋은 전시회를 접할 수 있다는 것. 온다던 눈은 아무런 소식이 없고 날만 쌀쌀하던 지난 6일, 서울 태평로에 있는 로댕갤러리를 찾았다.


오귀스트 로댕.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우리에겐 아주 낯익은 작가. 오랜만에 그의 다양한 인물 표현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있어 로댕 전문 갤러리인 로댕갤러리를 찾은 것이다.

혼탁한 서울 도심 한가운데 여유로이 자리 잡은 로댕갤러리.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처럼 유리로 둘러싸인 상설 전시장 글래스 파빌리온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면에는 청동조각 <깔레의 시민>이, 오른쪽으로 <지옥의 문>이 보인다. 모두 로댕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서 유독 눈에 띈 것은 <깔레의 시민>과 이를 위한 로댕의 습작들이었다.

동시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

a '깔레의 시민' 중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확대.

'깔레의 시민' 중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확대. ⓒ 로댕갤러리

<깔레의 시민>은 프랑스판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만들어진 조각이 아닐까? 1871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 제3공화국은 자신들의 역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동상을 세우는 데 열을 올렸다. 이는 파리뿐만 아니라 작은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버 해협에 면해 있어 지금도 영국에서 해저 터널을 통하거나 배를 이용해 프랑스에 가려면 거치게 되는 깔레. 이곳에서도 1884년 시의회 주도로 5000프랑의 상금을 걸고 깔레의 역사를 드높인 6인의 시민에 대한 조각 공모를 했는데, 다른 두 명의 조각가와 함께 로댕도 이에 응했다.


공모전에 참여한 로댕은 같은 해 가을 첫 번째 모형을 제작했고, 이어 1885년 1월 중순쯤 위원회는 로댕의 모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작품을 완성하기 전 원래의 3분의 1 크기로 두 번째 모형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첫 번째 모형 때와는 달리 시의회와 시민들이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이유는 영국에 항거했던 ‘위대한’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와 장 데르, 자크 드 비쌍 등 6명의 모습이 전혀 존경스럽거나 영웅처럼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로댕의 조각은 기존의 일반적인 조각들과는 달리 전혀 아카데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로댕은 드바브랭에게 1885년 8월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카데미식으로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원칙에 반대합니다. 이건 벌써 오래 전부터 우리 시대를 가로막아 왔던 원칙입니다. 이건 다음 시대의 위대한 예술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으로, 경직되고 완고한 사고의 산물입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작품은 관례에 굴복하게 됩니다. (중략) 파리에서 나는 연극 같이 꾸민 아카데미 미술의 적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경멸하는 이런 관례적인 미술을 따르도록 하려는 겁니다.”

결국 <깔레의 시민>은 뜻하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1895년 6월 3일, 약 1.5m의 받침대 위에 쇠난간에 둘러싸인 채 제막됐다. 이를 두고, 원래는 조각을 정원에 놓을 계획이었는데 실제로는 공공 화장실 앞에 놓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a 관람객들이 문화자원봉사자 류경영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관람객들이 문화자원봉사자 류경영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권기봉

조각품이 당대의 사람들과 거리감을 갖지 않게 하려고 아예 광장 한복판의 바닥돌 위에 받침대 없이 그대로 세우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던 로댕. 그는 애국주의나 영웅주의를 배제한 조각을 만들려고 했고, 독단적인 가르침을 주기보다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인간애와 그에 배어 있는 정겨움. 여기서 자연스레 그가 지녔을 인간애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물론 우리에게도 역사와 관련 있는 조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광화문 앞 세종로에 늠름한 모습으로 서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러나 그는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높은 곳에서 굽어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김세중씨가 만든 이 동상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동네 아저씨일 리는 없어 보인다. 그래, 그는 영웅이자 성웅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의 <징비록> 중 "순신의 사람 된 품이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아담하여 마치 수양하며 근신하는 선비 같았으나 가슴에 담력이 있어 몸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갔으니 본래부터 수양해온 소치라 하겠다”는 글을 바탕으로, 1953년 장우성 화백이 그린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 진짜 모습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순신 장군은 하나 같이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어쩌면 위엄의 과잉일지도 모를 이런 세태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극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영웅은 영웅이되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하는 영웅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로댕은 이미 19세기에 극복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의 조각’을 넘어 ‘나만의 조각’

a '깔레의 시민' 중 장 데르,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자크 드 비쌍(왼쪽부터)

'깔레의 시민' 중 장 데르,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자크 드 비쌍(왼쪽부터) ⓒ 로댕갤러리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지옥의 문>을 지나 기획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기면 다시 <깔레의 시민>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6명이 하나의 조각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따로 떨어져 있다.

로댕은 <깔레의 시민>을 만들기 위해 몇 번에 걸쳐 예비 조각들을 만들었는데, 기획전시실에 있는 장 데르나 자크 드 비쌍 등 6인의 상도 마찬가지다. 그 중 가장 관심이 간 것은 <깔레의 시민> 중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의 동상.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의 동상은 로댕이 그것을 만든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물화를 그릴 때 있는 그대로를 그려야 하는 것처럼 조각도 마찬가지일 텐데, 로댕의 그것은 아예 딴판이었던 것이다.

이를 테면 <두 번째 모형을 위한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동상에 비해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 동상은 상당히 쇠약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볼살은 형편없이 무너져 버려 광대뼈가 있는 힘껏 튀어 올라 있고, 표정 역시 곧 쓰러질 사람 같이 안쓰러워 보였다. 작가가 느끼기에 따라 같은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모습은 달랐다.

아마도 <깔레의 시민>을 만들 당시 시의회와 사람들에게 반발을 샀을 때처럼, 눈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양 자체보다는 그의 성격을 탐구한 다음 그것을 토대로 표현하는 로댕의 방식 때문이지 않을까?

오랜 기간 동안 배고픔과 공포로 몸서리쳤을 그들을 영웅과 같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면 오히려 사실성을 잃고 진실은 묻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기존의 미술이 요구하던 ‘있는 그대로의 조각’을 넘어 ‘나만의 조각’을 하는 데 열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6명의 깔레 시민들은 자신이 처형되겠다고 앞으로 나섰지만, 정작 어깨 힘은 쭉 빠져 있고 그들의 발에는 접착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뒤쪽으로 처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의와 죽음에의 공포 사이에서 앞으로 걸어나가던 당시에도 여전히 번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은 용기로 충만한 동시에 삶에 대한 미련을 저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a 로댕갤러리를 찾은 한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로댕갤러리를 찾은 한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권기봉

굳이 프랑스에 가지 않아도 로댕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적잖은 행복이다. 세계에 단 12개밖에 없는 로댕 박물관 중 세계에서 7번째 <지옥의 문>과 12번째 <깔레의 시민>을 소장하고 있는 로댕갤러리.

봄 기운이 나는 요즘, 로댕갤러리를 찾아 관례나 권위에 기대기보다 겸손함과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거장, 로댕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기획전시는 끝났다지만 미술관 문은 모든 이를 위해 열려 있어 깔레의 시민들은 항상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비록 절규하고는 있지만.

덧붙이는 글 | 개인 홈페이지 (클릭!)www.finlandian.com 방문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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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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