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닭은 소다를 한줌 넣고 삶으면 된다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4.02.09 06:19수정 2004.02.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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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박철
입춘(立春)이 지났습니다. 점심밥을 먹고 나면 춘곤증으로 온 몸이 나른해 집니다. 바야흐로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맘 때가 되면 병아리 장사가 자주 다닙니다. 집집마다 많이 산 집은 3-40마리를 사고, 적게 산 집은 열 마리 정도 다 샀습니다.


병아리를 키워서 알을 빼먹으려고 산 집은 몇 집 안 되고, 여름철 복날 잡아먹으려고 샀을 겁니다. 닭 사료와 쌀겨를 반반 섞어 먹이면 잘 자랍니다. 다 자란 놈을 황계나 인삼을 넣고 푹 고아 먹으면 국물도 시원하고 고기 맛도 좋습니다. 병아리 장사들이 묵은 닭하고도 바꿔주는 모양입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부흥강사들이 오래된 신자들을 곧잘‘묵은 닭’에 비유합니다. 만약 내가 우리교회에 오래 믿은 교우들을 묵은 닭이라고 한다던지, 묵은 닭은 질겨서 먹지도 못한다고 그랬다면 그날로 나는 당장에 쫓겨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흥강사들이 그러면 좋다고, 재밌다고 웃습니다. 부흥강사가 얘기하면 재밌고, 담임목사가 얘기하면 기분 나쁜 것인지요? 담임목사는 계속 머무를 사람이고 부흥강사는 부흥회만 끝나면 곧 떠날 사람이니 그렇다는 것은 설명이 좀 궁색한 것 아닙니까?

묵은 닭 얘기가 나왔으니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아내와 신혼 초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정선 덕송교회에서 첫 목회가 시작되었는데, 주택이 일자집인데 방 한 칸이 서재이고 가운데가 부엌, 또 방 한 칸이 안방 그렇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방이 얼마나 코딱지 만한지 잠잘 때 발을 쭉 펴고 잘 수가 없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그러니 대각선 방향으로 자는데 나도 불편하고, 아내도 불편하고 그래서 안방을 좀 넓히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개집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내가 무슨 수로 지붕을 들어내고 서까래를 잇대고 구들을 다시 놓고 방을 넓히는 공사를 하겠습니까? 엄두가 안 났습니다. 돈도 넉넉하지 않고, 마침 교회에 나오시는 유○○ 집사 남편이 동네 목수인데 찾아가서 정중히 부탁을 했습니다. 얼마나 무뚝뚝하던지 ‘좋다, 싫다’ 도통 대답이 없습니다. 며칠 지나자 유 집사로부터 기별이 왔는데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느릿느릿 박철
그 방을 넓히는 공사를 하는데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느라고 아내와 여선교회 회원들이 지방 여선교회 모임에 참석해서 고무장갑을 팔았는데 예배당을 짓는 것도 아니고, 방을 1미터 정도 더 넓히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 구차하게 고무장갑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아내가 자존심이 좀 상했을 겁니다.


정선읍내 제재소에 가서 기둥을 쓸 재목을 사오고 산에 가서 서까래로 쓸 낙엽송을 몇 개 찍어오고, 나는 최선을 다해 유 집사 남편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유 집사 남편은 연세가 환갑이 조금 넘으신 분이었는데 얼굴에 전혀 표정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나흘 동안 일을 하는데 한 말씀도 하질 않는 것입니다. 품값을 안 받고 해주시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 보조를 하고 아내는 애교라는 애교는 다 부려가면서 목수 아저씨의 비위를 맞추었습니다. 공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제 옥수수 대로 엮은 벽에 황토 흙을 쳐 바르고 시멘트로 미장을 하면 끝나는 일인데 그 일이 제일 더디고 힘들었습니다.

총 공사비가 25만원인데 남은 돈도 바닥이 났습니다. 저녁에 며칠 수고하신 목수아저씨 별식을 좀 만들어 들어야겠는데 삼겹살이나 사다 구워드릴까? 아니면 동태찌개를 얼큰하게 끓일까?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닭 장사가 들이닥쳤습니다. 확성기에서 뽕짝음악이 나오고 닭장사의 멘트가 흘러나왔습니다.

“아! 닭이 왔어요. 닭이! 병아리도 있어요. 병아리!”


느릿느릿 박철
‘옳지 됐다! 닭을 사서 육개장을 끓이면 되겠다’고 아내와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아내가 다른 건 잘못해도 친정어머니께 육개장 끓이는 걸 제대로 배워서 자신 있었나 봅니다. 값도 닭 3마리에 3천원, 한 마리에 천원 꼴이니 엄청 싸대요. 그것도 다 잡아 털까지 벗겨 놓은 놈을 양은솥에 집어넣고 장작불을 때 가면서 빨리 닭이 삶아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일단 닭이 삶아져야 삶은 고기를 잘게 찢어 넣고 갖은 양념 고추 가루 듬뿍 넣어 푹 끓이면 맛있는 육개장이 됩니다.

그런데 물이 펄펄 끓어서 젓가락으로 고기가 익었나? 안 익었나? 찔러보면 전혀 들어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솥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익었나? 안 익었나? 아무리 찔러보아도 고기가 익을 생각을 안 합니다. 미치고 환장하겠더라구요.

목수아저씨는 곧 손을 털고 일을 끝마칠 작정인데. 양은솥에 있는 닭은 익지를 않고, 일을 다 마친 아저씨가 아직도 저녁밥상이 안 차려진걸 보자 약간 골이 난 표정으로 “집에 가겠습니다” 딱 그 한마디 하더군요. 그래 내가 얼른 붙잡았습니다.

“아저씨 다 됐어요. 상만 차리면 돼요. 고기가 잘 안 익어서 좀 늦었어요.”


아내와 나는 허둥지둥 육개장이고 뭐고 포기하고 닭이 어느 정도 익었겠다 싶어 고길 찢어 놓으면 소금 찍어 잡수시면 됐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닭이 3시간 넘게 삶았는데 완전 고무타이어였습니다. 억지로 고기를 찢어서 접시에 담았는데. 이 아저씨 고기를 한번 씹어보더니 두 번 다시 손을 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틀니셨습니다.

느릿느릿 박철
육개장을 끓인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셨을 텐데 고무고기를 내놓았으니 씹어 먹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아저씨의 실망한 기색을 살피느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식사를 다 마치는 동안 말씀을 한마디도 안 하시대요.

그때 묵은 닭이 말만 들었지 그렇게 질긴 줄 처음 알았습니다.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에 알았는데 묵은 닭을 삶을 때는 소다를 한줌 집어놓고 끓이면 고기가 금방 물러진다는 얘길 어느 분에게 들었습니다. 그 비결은 그때 진즉 알았으면 그런 낭패감은 느끼지 않았을 텐데…. 묵은 닭을 삶을 때는 소다를 넣으면 되겠지만, 묵은 닭처럼 질겨 남을 피곤하게 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을 조치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요. 듣고도 잊어버렸는데,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덧붙이는 글 | 조류독감(bird flu : H5N1형 바이러스)으로 떠들썩합니다.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삶거나 충분히 익혀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닭이나 오리는 100%트 안전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조류독감에 걸리면 24시간 이내에 죽기 때문에 죽은 닭이나 오리를 잡아서 파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조류독감(bird flu : H5N1형 바이러스)으로 떠들썩합니다. 백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삶거나 충분히 익혀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중에 유통되는 닭이나 오리는 100%트 안전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조류독감에 걸리면 24시간 이내에 죽기 때문에 죽은 닭이나 오리를 잡아서 파는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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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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