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들어간 지 한 달 아흐레만에 만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고 종례시간이 되었다. 이제 닷새만 더 학교에 나오면 다시 봄방학에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나는 5분 동안만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한 뒤에 이렇게 입을 열었다.
“오늘 오랜만에 여러분을 만나는데 어떤 설렘도 없이 학교에 나왔습니다. 하긴 여러분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알다시피 선생님은 좀 별종인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선생님이 좀 지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마음이 없는데 선생님만 여러분을 짝사랑 해온 것 같아서 사실은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상처입지 않으려고 아예 제 마음이 설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켕기는 일들이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래도 못난 사랑으로 키운 아이들이어서 그랬을까? 담임으로부터 ‘사랑’이니 ‘상처’니 하는 식의 말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비교적 진지했다.
종례가 끝나면 총알처럼 튀어나갈 준비태세를 갖추고 뒷문과 가까운 최단거리에서 엉거주춤 앉아 눈을 번뜩이고 있던 아이들도 게걸음으로 슬그머니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쉴새없이 입을 열고 있는 한 아이를 옆 아이가 어깨로 툭 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잠시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오늘 막상 여러분을 만나고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학기말이라 너무 바빠서 교실에 한 번 올라 가보지도 못했지만 여러분들이 교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린 나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선생님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삐치기나 하고 말이죠. 내일은 여러분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습니다. 이만 종례 끝.”
나는 왜 마음을 바꾼 것일까? 그날 9시 25분에야 학교에 온 아이가 있었다. 물론 지각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짠-” 하고 제 입으로 음향효과까지 내며 당당하다 못해 무슨 큰 전공이라도 세운 개선장군처럼 교실에 들어섰다. 아이들도 그 소리에 경이에 가까운 놀란 표정으로 화답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수개월 동안 그 아이는 10시가 되기 전에 학교에 나온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불면증과 무기력.
한 해 내내, 나는 그 아이 내부에 자리한 두 실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막강한 위력에 비하면 내가 지닌 유일한 무기인 ‘사랑’은 너무도 나약하고 못난 것이었다. 게다가 본능적인 육체적 이기심에 빠져 있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주려는 교사의 사랑이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훼방꾼일 수도 있었다. 당연히 반격이 거세어지고, 그 과정에서 나는 몇 차례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던 것이다.
점심 시간, 식당에서 그 아이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로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마치 연인끼리 몰래 눈빛을 나누듯 그런 장난 끼 어린 표정으로 잠깐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이 그지없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그 순하고 부드러운 눈빛은 언제부턴가 그 아이에게서 생겨난 것이었다. 조금만 섭섭한 말을 해도 얼굴빛이 달라져 매섭게 나를 공격하던 아이였는데 언젠가는 내가 무섭도록 화를 냈는데도 순한 눈빛 그대로였다. 여전히 지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한 변화였고, 못난 사랑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 아이는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이렇게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오늘 9시 25분에 왔어요. 지각은 했지만 저 나름대로는 노력했어요. 3학년에 진급하면 더 잘할 거예요. 선생님, 사랑해요.”
그 아이에게 긴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이 심해지면서 지각하거나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미안했던지, 아니면 좀더 편해지고 싶은 본능의 유혹이었든지 끝내는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굳힌 뒤의 일이었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며칠 전 나는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이제 너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접을 때가 되었다는, 이제 네 길을 네가 가도록 내버려두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선생님도 할만큼 했고, 지금 너의 상태는 선생님의 사랑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좀 심각한 상태인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더구나.
내가 널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말하마. 너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반성 때문이다. 난 정말 널 사랑했을까? 오늘 아침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 속 깊이 네 이름을 불러 보았다. 네가 학교에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청을 드렸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간절하게 너에 대한 기도를 드린 것은. 그래 처음이었다. 난 널 정말 간절하게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널 사랑해주고 싶다. 지금보다도 더 많이, 더 깊이. 그래서 널 포기할 수 없다. 우리에겐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널 충분히 안아주고 또 널 충분히 혼내줄 그런 시간이. 나는 널 안다. 그리고 너도 선생님을 안다. 네가 많이 부족한 아이지만 그래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선생님도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랑을 힘으로 널 다시 학교에 나오게 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의 욕심일까?..."
올해 나는 학급 담임을 성공적으로 한 것 같지는 않다. 교직 경력 17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흔히들 말하듯 아이들을 장악하는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앞으로도 그런 능력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은 교사가 짝사랑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만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을 배워간다는 것. 이런 오래된 믿음 하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못난 교사인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향신문> 교단일기에 올린 글을 고치고 덧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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