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껌 하나 살래?"

인간에 대한 예의 모르는 아이들에 대한 단상

등록 2004.02.15 04:08수정 2004.02.1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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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입학철을 맞아 중학교 주변에서는 어른들은 놀랄만한 풍경들이 재현되고 있다. 졸업 뒤풀이 자금 모금을 빙자한 물건 강매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

과거 대학생들 사이에서 동기나 선후배의 미팅자리에서 미팅남녀들에게 껌 등을 고가에 강매하는 짖궂은 장면들이 간혹 연출되었다. 문제는 그런 과거의 영상들이 새천년에 들어서도 우리 어린 청소년들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학생인 A양은 졸업식 날 등교했다가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다. 처음 보는 선배들에게서 껌 한 통을 사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A양은 껌 값으로 만원을 그들에게 주고서야 그 황당한 자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특기할 것은 A양은 이번 일에 대해 그저 자신이 운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것이 친구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한편 초등생 B양의 경험은 다르다. 하교 후 학원에 가는 길에 같은 학원에 다니는 중학생 언니들을 만났다. 중학생들은 B양에게 **학원에 다니지 않느냐며 돈 500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B양은 중학생들에게 선뜻 돈을 내주었지만 억울한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 그들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이 가해 중학생들을 불러 이 일을 추궁하자 그들의 대답은 '빌린 돈이며 곧 갚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 큰 중학생 3명이 안면밖에 없는 초등학생에게 겨우 500원을 빌리려 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B양은 다른 친구들도 언니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그냥 주기 때문에 당연히 줘야 되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참으로 놀라운 모습들이 있다. 조금 논다하는 중학생들은 학교 밖에서도 선배들에게 깍듯이 절에 가까운 인사를 한다. 꼬박꼬박 말을 높이는 것도 예삿일이다. 골목길에서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을 모질게 야단치는 모습도 목격된다.

한때 청소년 사이에서 일본문화의 일환인 일진문화가 유행하여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일진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우리 청소년 사이에 뿌리박힌 선배들의 완력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돈의 액수문제가 아니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이유없는 폭언과 폭행, 갈취를 당한다는 것은 어린 청소년의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일이 너무 쉽게 답습되고 인정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또 가해자들이 이를 일종의 놀이로 여기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어찌보면 이러한 악질적인 모습도 그들만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후배일 때 선배들이 그랬기 때문에 선배가 되어서 똑같은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마치 모진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그 며느리를 더 모질게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학이나 군대에서조차 선배들의 이유없는 폭언과 폭행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어린 청소년들은 선배라는 위치를 철저히 오용하고 있다. 선배인 나의 인권과 자존감이 소중하듯 후배들의 자존감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선생님들과 학부모들조차 청소년들 사이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더이상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리고 평범한 청소년들이 이러한 범죄적 놀이문화에 더 길들여지기 전에 시급히 예방교육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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