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 노인의 죽음

부모님들의 어이없는 퇴장은 농경문화와 전통의 소멸

등록 2004.02.18 12:39수정 2004.02.1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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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쌈에 논, 밭 농사에 끊이지 않았던 집안 일에도 묵묵히 살았던 부모님
김쌈에 논, 밭 농사에 끊이지 않았던 집안 일에도 묵묵히 살았던 부모님김규환

비보를 접하고…


이른 아침 산책을 하고 집 앞에 다다랐다. 아침나절 전화가 울렸다.

"영만이다. 요즘 방송 잘 듣고 있다."
"그래, 어찌 지내는가?"
"지난 설 때도 얼굴 잠깐 스치고 못 봤네."
"응, 아내가 설 다음날 바로 출근이어서 조문 갔다가 다음날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다 보니…"
"그건 그렇고 말이다. 니네 마을 병문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뭐야? 많이 아프셨던가?"

"인기척이 없어 승호 어머니가 집으로 가보니까 글쎄 우물 앞에 돌아가신 채 발견됐나봐."
"그럼 언제 돌아가신 지도 모르겠네…."
"자식들 다 나가 살고 홀로 계셨으니까 그렇지 뭐. 마을에서는 일단 어제 사망한 걸로 본다네."
"병문이는 알고 있는가? 방금 전화 받고 지금 부산에서 오고 있는 중인가보더라."
"그럼 넌 언제 갈 건데?"
"이따 저녁 쯤에나 도착할 것 같아."
"그럼 이따가 보자."

대롱대롱 매달려 육신과 혼을 다 먹고 자란 자식들. 왜 그리 줄줄이 낳아서 이 고생시키느냐는 말만 안 꺼내도 효자지.
대롱대롱 매달려 육신과 혼을 다 먹고 자란 자식들. 왜 그리 줄줄이 낳아서 이 고생시키느냐는 말만 안 꺼내도 효자지.김규환

어머니를 대신했던 옆집 아짐

예전 본가가 있던 전남 화순 북면 방리에서 병문이와 나는 바로 옆집에 살았다. 대문 하나가 마주 보고 있던 지척이었으니 급할 땐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종용하기도 했다.


둘은 단짝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9년 동안 한 시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을 정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립문을 열고 헛기침 한번하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도 되는 이물 없는 사이였다.

"아짐, 저 왔어라우."
"그려 언넝 와. 밥 묵었냐?"
"예."
"안 묵었으면 한 술 떠라."
"배부른디요."
"글면 이거라도 맛 좀 봐라."
"됐다글도 그요."
"여기가 니 집이나 한가진께 사양하지 말고 묵어라 이놈아."
"고맙습니다."


어릴 적엔 밥 먹고 돌아서면 소화가 다 되곤 했다. 주시는 대로 또 받아먹어도 아무 탈이 없었다. 그 탓인가. 나는 밥을 한 끼라도 놓치면 온 몸에서 열이 나다가 조금 더 지나면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오기 시작한다. 지금껏 살면서 많이 먹어 탈 난 적이 한번도 없는 '속 좋은 놈'이 된 건 그런 배경과 오랜 경험에 단련된 까닭일 지도 모르겠다.

병문이 어머니를 나는 '아짐'이라 불렀다. 아주머니는 연세도 어머니와 비슷했다. 어머니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뒤로도 홀로 되신 아버지와 아직 학교 다니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하루에도 두세 번 드나들며 돌봐 주셨다. 그런 이웃 아주머니 덕택에 한동안 어머니 잃었던 슬픔을 까먹고 지내도록 건사하셨다.

친구가 가정 형편으로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멀리 부산으로 떠난 뒤로도 2주에 한번씩 시골 집에 가면 언제나 우리 집인 듯 가서 인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짐 계시오?"
"응 학교 갔다왔냐?"
"너는 공부를 잘 헝께 고등학교도 가고 낸중에 서울로 대학도 간담시롱…."
"제가 잘해서 그렇간디요. 병문이도 다시 학교 다니면 되지라우."

우리집 마룻바닥은 걸레질을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했지만 아짐댁은 무엇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깔끔했다. 마루에 걸터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모양이 영락없이 어머니와 아들간의 대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아짐은 평소 드시지 않고 아껴두셨던 한과(韓菓)나 식혜 등 군것질도 되고 배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꺼내와 먹으라고 하셨다.

눈밭 항아리에서 김장김치 꺼내시는 장모님
눈밭 항아리에서 김장김치 꺼내시는 장모님김규환

이젠 반길 이 없는 고향 마을

큰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어머니 다음으로 엄마 냄새를 기억하게끔 해주셨던 아주머니. 그 분이 일흔 네 살로 세상을 뜨셨다. 편한 방에서도 아니고 바깥 우물가에서.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자식들의 슬픔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마는 자식들 못지 않게 따랐던 나도 청천벽력 같은 이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 고향에 가도 이제 포근히 나를 반겨줄 사람은 없다. 작년 여름에 고향에 갔을 때도 정정하시더니 왜 그리 초라하게 가셨는가.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던 아짐의 죽음 앞에 억장이 무너진다. 10여 년 전 아제(아저씨)가 세상을 뜨자 홀로 남아 자식들에게 식량과 온갖 푸성귀 마련해 부쳐주셨던 한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셨다.

나는 친구와 자식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어느 시골이고 가보면 다 그렇잖은가. 내 부모가 그렇고 누구누구 부모가 그렇다. 이 마을이 그렇다면 옆 마을이 그렇다. 전국 방방곡곡이 이미 이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다. 말이 고향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 마지못해 궁벽한 시골에 방치되어 있고 옴짝달싹 못하고 몇 년 더 흘러 의미 없이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의 말로는 처량하다. 어찌 이런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몇 년 전 어떤 보일러 회사의 "부모님 댁에 보일러 깔아드려야겠네요." 며느리의 그 한마디는 내 심금을 울렸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그래 효라는 게 별 건가. 같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진지 챙겨드리고 이부자리 봐 드리는 것이 최고다. 그마저 밥 빌어먹고 살다보면 손을 놓아야 하는 시절의 수상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앙상한 뼈와 주름살 가득한 7, 80 넘은 노인들 차지가 된 고향마을엔 아기 소리 뚝 그친 지 오래다. 양친이 남아 있어도 적막강산이다. 나아가 할아버지는 몇 년 전 다들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고 할머니만 외로이 남아 대궐 같은 집을 지킨다. 어느 날 흰 가루 찾아 전을 붙여 먹고는 거품 물고 쓰러져 한 많은 세월을 마감하는 우리의 어머니들.

촌로-어머니의 마음.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저 세상으로 가시는 분들이라 죽는 날까지 일손을 놓지 않는 거야.
촌로-어머니의 마음.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저 세상으로 가시는 분들이라 죽는 날까지 일손을 놓지 않는 거야.김규환

참담하게 폐허로 변하는 고향, 농촌 그리고 노인들

참담하다. 암울하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자신을 버리는 삶을 그리 살다 가시는가. 배 곯아가면서 까지 자식들 키워봤자 도시로 떠나면 제 처자식에 발목 잡혀 명절 때나 찾아오는 못된 자식들을 위해 부성, 모성 발휘한 대가가 고작 이거란 말이더냐.

이곳 저곳 가봐도 농촌, 시골, 고향은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단언하건대 10년 아니 5년 내에 50가구 마을은 쓰러져 가는 흉가에 귀신이 우글거리는 폐허로 변할 게 빤하다. 그러다가 두세 가구 남아 사람 구경하는 날이면 운수 좋은 날이라고 잔치를 열 판이다.

농업과 농촌이 경쟁력 없기로서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부모님들의 어이없는 퇴장은 불과 2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당신들의 초라한 죽음은 농경문화와 전통과 두레정신, 품앗이의 소멸이다.

냉장고, 세탁기, TV에 보일러, 전화 다 있던 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얼른 챙겨 내려가 봐야겠다.

보기 좋은 폐가 곧 무너지고 말리라. 대책없는 대책이 상대책인가.
보기 좋은 폐가 곧 무너지고 말리라. 대책없는 대책이 상대책인가.김규환

덧붙이는 글 | "어버이 살아신제 섬긴일랑 다 하여라."라는 말이 자꾸 다가옵니다. 올라 오는 길에 처가에 들렀다 와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어버이 살아신제 섬긴일랑 다 하여라."라는 말이 자꾸 다가옵니다. 올라 오는 길에 처가에 들렀다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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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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