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만 털어내듯 빼고 볶기 시작하면 됩니다. 먼저 솥을 달구고 나서 콩을 넣은 다음에는 중불로 휘저으며 볶아주세요.김규환
콩 볶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마실 나갈 때나 일 갈 때 먹던 심심풀이
우리 집에선 두 가지 전통이 있었다. 하나는 먹는 것이니 빠트릴 일이 없다. 무지하게 콩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메주콩을 두 되 이상 잘 씻어서 바짝 말린 다음 가마솥에 불을 때서 요리조리 볶는다. 몇 개가 토독토독 튀면 볶기를 멈춘다.
설탕이든 소금이든 아무 것도 첨가하지 않은 상태로 달달 저어 볶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뜨거운 콩을 한 두 개 입 안에 톡 털어 넣는다. 혓바닥이 따끔거린다. 약간 비릿하면서도 몰캉몰캉 또는 몰랑몰랑한 맛이다.
아버지는 "됐구만!", 나는 "됐구만이라우" 하고는 다음 행동을 개시할 준비를 하려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콩이 함지박에 퍼지면 탈 듯 말듯하며 부드러운 연기를 내는 콩을 외투 호주머니에 두세 줌 넣는다.
잘록하게 부른 주머니에서 콩이 흘러나오지 않게 보듬고 조심히 사립문 앞을 나선다. 마실 나갈 때마다 염소나 한우가 되새김질하듯, 심심풀이 땅콩 먹듯 꺼내 궁금한 입을 달랬다. 고소함이 가득 퍼지는 그 맛. 왕복 이십 리 길 나무하러 갈 때나 십리 길 퇴비를 져다 나를 때 오가며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도 방에 배를 깔고 누워 혼자서 두 홉 이상을 먹어 치우는 볶은 콩. 어머니는 이왕 일을 벌이신 김에 서리태와 검은콩을 볶아 남은 조청에 버무려 콩강정을 만들어 주셨다. 아삭아삭 씹히는 그 느낌은 개암이나 호두 씹는 맛에 버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