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과 어우러지면 더 아름다운 구상나무-온난화 현상으로 주목을 비롯한 한대 식물들이 지리산에서 죽어가고 있다.이재은
지리산!
"지리산을 열 번 올라본 사람은 이 산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백 번을 가 본 사람은 지리산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합니다.
나는 과연 이 산을 몇 번 올라봤을까?
1972년이 시작되던 그해는 엄청 많은 눈이 지리산에 내렸고 바로 그 겨울에 시작한 지리산 등산, 즉 까까머리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시작된 지리산 오르내림의 정확한 횟수를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출발지인 진주에서는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2월 봄방학의 어느 날 오후에 중산리에는 이미 많은 눈이 내렸고 어둠이 시작되는데도 우리들에게는 교모를 쓴 채로 평상복 그대로 운동화 그대로 손에는 면장갑 한 짝도 없었답니다.
앞서 가던 대학생 형님의 배낭 위에서는 그 당시 유행했던 어느 여가수의 "지나간 여고시절"이 칼바위 골짜기를 메아리 쳤고 그 노래는 함께 가던 일행들의 행진가였습니다.
토요일 오후, 진주에서 막차를 타고 오면 언제나 야간 산행을 해야합니다. 칼바위에서 망바위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은 손전등의 행렬로 장관을 이루곤 했지요. 어떤 때는 매주에 한 번씩, 또 어떤 때는 몇 년만에 한 번씩, 이렇다 보니 확실한 횟수는 헤아릴 길이 없지만 햇수로는 30년이 넘었고 어림잡아 한 해에 두세 번씩은 이곳에 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지리산을 오르면서 '이런 좋은 날씨는 처음이다'라는 옆 사람들의 감탄사에 별다른 흥감도 없고 오로지 한 발 한 발 힘겨운 걸음을 계속하면서 스스로를 부정해 봅니다. 이건 간밤의 숙취 때문이거니 하고 말입니다.
소싯적의 산행실력을(?) 옆 동료에게 뇌까림은 차라리 핑계인 것 같습니다. 법계사의 옆 마당에 쳤던 무거운 군용 텐트를 새벽 4시경에 걷고 라면 한 그릇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한 시간도 채 안되어 지리산 상봉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는 건 지금의 내겐 거짓말 같습니다.
장터목을 지나 세석평전으로 대성동계곡으로 또 신흥으로 해서 쌍계사 주차장까지 거의 뛰다시피 했던 그 시절, 버스에 내려 집에 도착하면 아직도 해가 하늘에 떠 있었던 기억은 지금의 내겐 차라리 고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