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가 쥐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이 '너 죽고 나 살자' 서로 물어뜯고...

등록 2004.02.24 17:21수정 2004.02.2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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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쥐새끼들이 어지간히 많았습니다. 지난번에 쥐새끼들 극성 때문에 못살겠다고 기사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부엌은 물론이고 백주 대낮에 시도 때도 없이 앞마당을 가로질러 내달리는 간뎅이 부은 쥐새끼까지 있었습니다.


쥐약을 놓게되면 아무데나 죽어 나자빠질 것이 뻔했습니다. 집안 곳곳이 썩는 냄새로 진동할 것이어서 그 짓도 못했습니다. 약삭빠른 쥐새끼들한테는 ‘찍찍이’조차 소용없었습니다. 이래저래 그동안 쥐 잡는 방법 때문에 고민 많이 했습니다. 쥐 출몰이 잦은 지역에 멸치 대가리와 먹다만 소시지 쪼가리 얹은 찍찍이를 놓아보기도 하고 또 쥐구멍에 밤송이를 쑤셔 넣기도 했습니다.

송성영
쥐 다니는 길목에 밤송이를 놓으면 아주 효과가 좋습니다. 쥐구멍에 돌이나 나무토막을 박아 놓아 보았지만 그 옆댕이에 구멍을 파고 나와 소용이 없었는데 밤송이를 쑤셔 넣었더니 적어도 그 쥐구멍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더군요. 헐린 시골집 천장에서 밤송이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답니다. 놈들이 밤송이를 갉아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주둥이로 물거나 발로 끄집어내서 딴 데로 옮겨놓을 수 있겠습니까?

쥐 퇴치에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밤송이라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고양이였습니다. 쥐 사냥에 나설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고양이 만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난 늦가을, 이웃집에서 아기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녀석의 첫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만화영화 ‘마징가 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처럼 얼굴 면이 서로 다르게 생겼습니다. 한쪽 얼굴면 눈가에 검은 반점이 있어 성깔깨나 있어 보였습니다. 지금은 정이 들어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야밤에 보면 ‘에드가 알렌 포우’의 공포 소설 <검은 고양이>를 연상케 합니다.

녀석은 새벽 산행 길에도 곧잘 따라오곤 합니다. 본래 고양이라는 놈은 사람을 잘 따라 다니지 않는 습성이 있다는데 ‘야옹이’는 사푼사푼 잘도 따라옵니다. 강아지처럼 말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같이 새벽 산행을 나서는데, 갈 시간이 되면 신발 신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그 ‘야옹이’가 쥐새끼를 잡기 시작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동안 쥐새끼들처럼 부뚜막 오르는 일은 다반사고 잠깐 한눈이라도 팔면 반찬에 입을 대곤 했습니다. 쥐를 잡지 못하면 쫓아내려고 했는데 보란듯이 쥐를 잡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쥐 못 잡고 밥만 축내고 부뚜막에 올라서 말썽이나 피우는 애완 고양이는 사절입니다. 사람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 했는데 고양이가 놀고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쥐를 잡는 날이면 ‘야옹이’ 녀석은 우리 식구들 앞에서 한바탕 ‘쥐잡이 쇼’를 벌입니다. 이리저리 굴려보고 앞발로 축구공 드리블하듯 툭툭 치며 몰고 다녀보기도 하고 물어서 휙 던져보고,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주인 얼굴도 한번 슬쩍 쳐다 봅니다.

잔혹한 놀이지만 나름대로 주인에게 잘 보이겠다고 하는 짓이 아닙니까. 보기에 좀 ‘거시기’ 하지만 사람들 역시 설령 채식주의자라 할지라도 그 어떤 것을 죽여서 배 채우고 살아가듯이 녀석도 먹고 살겠다고 쥐 잡아 배 채우겠다는 것이니 그리 징그러워 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잠시잠깐 사랑방 문이라도 열어 놓으면 아랫목 식지 말라고 덮어놓은 이불에 도장 찍듯 흙 발자국 찍어놓고, 잡겠다는 쥐새끼는 안 잡고 부엌 살강 위를 오락가락하며 온갖 그릇에 발자국이며 털 흔적을 남겨 놓기 일쑤이고, 구운 생선에 입댄 거 등등 수없이 자행했던 못된 짓거리들이 용서가 되더군요.

송성영
그동안 쥐새끼들처럼 이것저것 훔쳐먹는 일 폐업하고 직접 쥐새끼들 잡아 신장개업을 하겠다는데 되레 신통한 일이지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사실 쥐새끼 잡는데 믿을 만한 놈이 고양이밖에 더 있겠습니까? 내가 직접 몽둥이 들고 쫓아다니며 잡겠습니까? 개를 풀어 놔서 쥐를 잡겠습니까?

고양이가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서자 놈들끼리 천장에서 “쮜~엑 쮜!엑” 멱 따는 소리를 내며 죽어라 싸워대더군요. 지들끼리 왜 싸우겠습니까? 아마 밥그릇 싸움질을 했을 것입니다.

고양이가 밤낮으로 목줄 따겠다고 쥐구멍을 노려보고 있으니 더 이상 도둑질은 못하겠고, 쌓아두었던 먹이는 줄어들고, 그마저 다른 쥐새끼들에게 제 몫을 빼앗길 판이니 지깐 놈들이 별 수 있겠습니까? 어제의 동지가 하루아침에 적이 된 것이지요.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러리라고 봅니다.

고양이가 송곳보다도 더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 때까지는 그래도 어떤 쥐새끼는 훔쳐오고 또 어떤 쥐새끼는 망 봐주고 그렇게 사이좋게 차곡차곡 쌓아두고 의리 찾아가며 야금야금 나눠 먹던 동지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동안은 밥그릇 싸움질하는 쥐새끼가 아닌 듯 폼잡고 있었지만 이제는 본색을 드러내고 서로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물어뜯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쥐새끼들 습성이 그렇듯이 밥그릇 앞에서 ‘동지고 나발이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밥그릇 싸움에서 이기는 놈은 천장 속에 숨겨둔 먹이를 차지하여 얼마간의 생명을 연장하겠지만 진 놈은 천장에서 쫓겨나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되겠지요.

요즘은 쥐새끼들 나름대로 힘센 놈, 힘 별로 안 센 놈 식으로 정리가 되었나 봅니다. 천장에서 쮜~엑 쮜~엑 소란스럽던 싸움질도 잠잠해졌습니다. 아마 야옹이에게 잡힌 놈들은 천장에서 쫓겨 난 바로 그 ‘힘 별로 안 센 놈들’일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잠자리가 어수선하지 않아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어 싸우고 있는 국회의원들 밥그릇 싸움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쥐새끼들의 씨를 말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조만간 ‘야옹이’가 평정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놈들도 먹고살겠다고 세상에 태어난 생명인데 어떻게 씨까지 말릴 수야 있겠습니까? 최소한 야옹이는 쥐새끼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백주 대낮에 훔친 음식을 입에 턱하니 물고 앞마당을 질주하거나 야밤에 부엌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는 짓거리를 못하게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피 땀 흘려 쌓아 놓은 양식들 훔쳐먹고, 훔쳐먹는데 옆댕이서 망보고, 훔쳐 온 것을 차곡차곡 쌓아 두고, 또 아주 치졸하게 훔쳐 온 것을 훔쳐먹었던 국회의원들은 이번 선거 때 평정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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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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