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를 품고 있는 산을 향해 세워진 짐대.최연종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인 1700년대 말 동복 가수리 상가마을에 원인 모를 불이 자주 났다. 마을 사람들은 ‘등잔솔’이라고 불리는 앞산이 화기(火氣)를 품고 있다고 믿고 이때부터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만 되면 마을 어귀에 짐대를 세웠다.
장대 위에는 나무로 물새인 오리를 깎아 얹었다. 이때 오리의 머리는 앞산을 향하고 꼬리는 마을 쪽을 향하게 했다. 오리가 마을의 화기를 물고 날아갈 뿐 아니라 오리의 배설물은 마을의 화기를 덮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는 물과 하늘, 그리고 물 속까지 자유롭게 드나든 새로서 마을 사람들은 짐대가 마을의 화재를 막아주고 가물 때는 비를 몰고 오는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6.25 직전에 짐대 세우는 것을 멈추기도 했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사업을 펼치면서 짐대를 없앤 적도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당산나무와 짐대가 불에 탄 뒤로 마을에 궂은 일이 잦고 짐대를 없앤 70년대에도 불이 자주 발생하자 다시 짐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짐대는 태풍에 부러져 없어지기도 해서 현재 마을 입구에 올해 세운 것을 포함, 5기가 있다.
상가마을 터줏대감인 이진수(79)씨는 “우리 조상들이 이월 초하룻날에 짐대 세우는 일을 200여년간 해왔다”며 “날씨가 궂어도 날짜를 바꾸지 않고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200년이 넘게 해마다 같은 날 전통방식으로 짐대를 세우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장대라는 명칭도 지방마다 다르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장대’라고 해서 ‘솟대’라고 부르지만 상가마을을 비롯해 솟대가 가장 많이 세워진 전남 지방에서 대부분 ‘짐대’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 ‘긴 대’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