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고 학교 복도를 서성이는 아이들.김남희
교정에 들어서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학교 안 정자에 올라가 비를 피하며 바로 눈앞의 나무 건물을 바라본다. 지상으로부터 1미터쯤의 공간을 띄운 채 세워진 단층 짜리 목조건물은 속절없이 비에 젖고 있다.
일본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이 60년 전 그대로의 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자리가 한 개인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에 있어 그토록 지독한 비극이 일어났던 현장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건물의 나무틀 곳곳은 이끼로 덮여 지난 세월을 말해준다.
아이들은 비가 내리는 중에도 운동장 곳곳을 뛰어다니거나 두서넛씩 둘러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빗줄기가 그치면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리라. 그곳에서 부디 이 역사의 현장에 대해 뭔가를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기를….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들어간 학교는 적막하다. 일자형의 목조건물 옆으로 콘크리트 건물이 ㄱ자형으로 붙어 있다. 아쉽게도 교실은 전부 문이 잠겼다. 정적이 감도는 텅 빈 복도에 서서 나는 괜히 코끝이 매워져 소설 속 하타와 ‘끝에’의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려 본다.
비 그친 후 초목은 더 푸르러지고, 남아있던 아이들마저 떠난 교정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고 쓸쓸히 서 있을 뿐이다. 학교를 나와 거리에서 만난 몇 몇 사람들에게 이 건물이 언제 세워진 것인지,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부대를 아는지 물어보지만 그들의 대답은 신통치 않다. 그저 건물이 50년이 넘은 걸로 알고 있는 정도다.
누군가를 통해 이곳에 머물던 일본군 부대와 한국인 여성들에 관해 더 들을 수 있기를 바랬는데…. 2차 대전의 끝 무렵,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세대는 이제 더 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
나팔꽃, 분꽃과 구절초가 피어 있는 길을 걸어 내려온다.
어느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밝은 빛을 드리운다. 우리 역사에 드리운 검은 구름은 언제쯤 가실지 문득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