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7

땡추들

등록 2004.03.03 17:38수정 2004.03.03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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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파라!"

사마귀 사내는 삽을 장포교 앞에 내 던져 주었고, 장포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장포교는 삽을 잡자마자 재빨리 일어서 먼저 가까이에 있던 허여멀쑥한 사내를 쳤다. 그러나 허여멀쑥한 사내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재빨리 뒤로 물러나 피해 버렸고 날아드는 건 사방에서 날아드는 죽장이었다. 거적 대기 하나 걸치지 못한 장포교의 맨몸은 죽장에 의해 피멍이 들었고 비명소리가 골짜기를 갈랐다.

"어디 죽기 전에 용이나 써보자 이거야?"

허여멀쑥한 사내는 전에 보였던 정중한 태도와는 다르게 장포교를 깔보듯이 대하고 있었다. 장포교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말했다.

"네 놈들은 누구냐? 왜 이런 짓을 하며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냐?"


키다리 땡추가 말 대신 다시 죽장을 휘둘러 화답하려 했지만 옴 땡추가 손을 들어 그만두라는 신호를 보낸 후 대답해 주었다.

"우리가 누군지 알리자고 널 여기까지 유인한 줄 아느냐?"


"네 이놈! 조정의 녹을 먹는 이를 함부로 해치면 네 놈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장포교는 이제 갈 데까지 갔다는 듯 악을 쓰며 서슬 퍼렇게 대들었지만 땡추들과 사내들은 가소롭다는 듯 한바탕 껄껄 웃어젖힐 따름이었다. 옴 땡추가 장포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윽박질렀다.

"네 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네 놈이 지은 죄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더냐?"

"난 죄인을 잡아오는 몸이지 죄를 짓지는 않는다! 이 썩을 잡것들!"

혹 땡추가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앞으로 썩 나섰다.

"형님들, 이 놈의 잡소리를 더 들을 것이오? 내가 아주 입을 짓뭉개 버리겠소."

혹 땡추가 바지춤을 뒤적이더니 쇠도리깨를 꺼내어 들고선 장포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잠시 정적만이 감돌았다.

"야 이놈아! 그렇게 냅다 질러 죽여 버리면 어쩌라는 것이냐! 저 망할 놈은 앞 뒤 생각도 안 하니… 어이구 나무아미타불."

잠시 후, 콧수염 땡추가 시체를 파묻기 위해 땅을 파며 혹 땡추를 꾸짖었지만 그야말로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아, 형님! 삽질이 그렇게 서툴러서 어떻게 하오? 해떨어지기 전에 일 마치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지."

나머지 땡추들과 사내들은 장죽을 꺼내 담배 한 모금을 피워 물고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고얀 것들을 봤나. 아무리 땡추들이라지만 이렇게 흉악하게 사람을 해쳐 무슨 업보를 받으려 이러는가?"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우렁찬 소리에 땡추들과 사내들은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그곳에는 우람한 체격의 노승과 함께 건장해 보이는 젊은 스님과 동자승이 서 있었다.

"오래 살고 싶으면 못 본척하고 가던 길이나 곱게 갈 것이지…."

키다리 땡추가 죽장을 한번 툭 치자 안에서 칼이 '스르릉' 소리를 내며 뽑혀 나왔다. 잠시 멍하게 있던 옴 땡추가 급히 앞으로 나서 노승에게 아는 척을 했다.

"혜천스님 아니시오. 여기까지 웬일로 오시었소?"

키다리 땡추는 '혜천스님'이란 말에 멈칫하며 뽑던 칼을 거두고 한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내 이놈! 인사도 없이 떠나는 법이 어디 있느냐? 내 인사나 받을까 해서 네 놈 뒤를 밟았다! 내 조금만 더 일찍 당도했더라도 업보를 막았을 터인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천스님이고 나발이고 빨리 해치우고 떠납시다."

사마귀 사내가 으르렁거리듯이 중얼거린 후 품에서 짤막한 칼을 뽑아들고 나서려 했지만 옴 땡추는 긴장을 풀지 않고 이를 만류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렀다.

"신중하지 않으면 우리가 당하게 된다.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에 경거망동을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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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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