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은 내 존재이유...정치로 풀어낼 것"

[인터뷰]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장향숙 중앙위원

등록 2004.03.08 02:02수정 2004.03.0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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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숙소에서 만난 열린우리당 장향숙 중앙의원
여의도 숙소에서 만난 열린우리당 장향숙 중앙의원김진석

경상북도 영주군 작은 산골마을에서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로 태어났다. 생후 7개월에 걸음마를 할 정도로 건강했고 성장속도도 빨랐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열이 오르더니 하룻밤 사이 두 다리가 힘을 잃고 늘어졌다. 생후 1년6개월만에 소아마비 진단을 받았고 혼자서는 몸도 일으킬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장향숙(47·지체장애) 중앙위원은 난생 처음 바깥으로 나와 햇살을 쬐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둘이었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은?

▶1958년 경북 영주군 출생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제 1대·2대 회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제 1대·2대 공동대표
▶부산장애인총연합회 부회장
▶여성부 정책자문위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장애인권리찾기 부산연대 공동대표
▶2002년 장애인의 날 여성장애인인권과 장애인 사회참여를 확대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
"이십년 넘게 방 안에만 있었다고 하면 다들 못 믿어. 햇살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해서 천당의 위로를 받으라'고 말렸지만 그는 스물두 해만에 발견한 바깥 세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들이는 장애인동호회와 장학회,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조직으로 이어졌다.

20여년간 장애여성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수없이 편견의 벽을 맞닥뜨렸고 그때마다 특유의 의지와 자신감으로 벽을 넘어섰다. 올해 장 위원은 국회라는 벽을 넘으려고 한다.

"국회를 또 하나의 현장으로 20년 운동을 이어가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장향숙 위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열린우리당은 만들어지고 있는 당, 아직 가능성은 많다


- 20년간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하다 정치에 입문했다. 말하자면 장판(장애인계)에서 정치판으로 판을 옮긴 것인데 정치를 시작한 계기와 이유가 무엇인가?
장향숙 중앙의원은 이번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다
장향숙 중앙의원은 이번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다김진석
"사실 정치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일이 없다. 그만큼 현장에 있는 것이 행복하고 보람 있었다. 지난해부터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논의되면서 이른바 소외계층 여성의 정치세력화도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들이 계속적으로 나왔다. 그 과정에서 정치 입문을 생각하게 되었고 3개월 정도 고민한 끝에 입당을 결정했다.

운동가로서 나는 끊임없이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 정치 역시 개척해야할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국회라는 현장에서 장애여성과 빈곤계층 여성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 왜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나?
"한나라당의 표밭인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시민들에게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또한 열린우리당은 이미 만들어진 당이 아니라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당이다. 이미 만들어진 당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다. 힘들고 어렵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더라도 내가 참여해서 같이 만들 수 있는 곳을 택한 것이다. 배고픈 것보다 더 서러운 게 참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개혁적 진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읽어온 1만권의 책이 그렇다."

- 개혁적 진보와 열린우리당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우선 당원들이 열성적으로 개혁을 원한다. 선출된 중앙위원의 절대 다수가 40대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이제 겨우 시작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개혁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부유하는 장애여성의 제 자리를 찾아주는 인권운동

- 장애여성 인권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웃 성당의 수녀님이 지역장애인모임을 만든다고 해서 참여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부산장애인가톨릭선교회의 전신인 '사랑의 샘'이었다. 모임을 해보니 생각보다 글을 모르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장애여성의 문맹률이 더 높았다. 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장애여성들의 열악한 처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직업재활학교에서 만난 한 장애여성은 소위 일류대학에 합격했지만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재활학교에 왔다. 돈도 많은 집이었는데 아버지고 오빠들이고 '니가 배워서 뭐하냐'고 결사반대했다. 결국 그 친구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런 일이 허다했다. 그 여성들을 보면서 그들이 아들이었더라면 가족들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진석
그 뒤로 부산여성장애인연대를 조직하고 공동대표와 회장을 지냈으며 사단법인 부산지체장애인단체협의회 부회장, 사단법인 부산장애인총연합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 장애여성은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굴레로 더 많은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모와 생산력을 기준으로 여성을 평가하는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장애여성들은 이중적 차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현대의 미적 기준에 따르면 장애인들은 찌그러진 몸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또한 장애인이라고 해서 기형아를 출산하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도 임신이나 양육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있다.

장애여성들이 사회에서도 가족 속에서도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편견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유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현장에서 보니까 장애여성이 인정받는 길은 딱 두 가지더라. 결혼을 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웃음)."

장애인 정책 강제성 필요, 시혜적인 관점은 지양해야

- 현재 장애인 관련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장애인 관련 정책이면 무조건 복지를 떠올린다. 시설 많이 지어놓고 거기 들어가 살라고 하면 끝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격리다. 일제시대때 한센병 환자들 소록도에 몰아넣은 것과 똑같은 경우다.

장애인 임대아파트 또한 장애인의 삶을 게토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나도 두 번인가 갈 기회가 있었지만 안 가고 단칸방에 산다. 불편하고 또 임대아파트에 못 들어가서 억울해 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들이 마을과 거리에 보일 때 풀린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만나는 장애인들이 열린 사회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만나고 부대끼는 것이 진짜 더불어 사는 삶 아닌가?

장애인 문제를 전적으로 장애인 개인과 그 가족의 몫으로만 돌리는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도 문제다. 장애인 문제를 가족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되었나? 그렇지 않다면 국가가 당연히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장애인 복지, 장애인 복지 말은 많았지만 예산이 어느 정도나 늘었는지 봐라. 국민기초생활보호법이 최옥란 열사를 죽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2, 제3의 최옥란이 안 나올 거라고 누가 확신하나? 완전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거다."

- 차별금지법, 연금법, 이동에 관한 법률 등 주로 장애인 인권과 복지향상에 관한 공약들을 제시했는데 현재의 복지정책과 어떤 점들이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장애인 당사자의 결정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강제성도 있어야 한다. 장애인 고용을 아무리 법으로 만들어도 안 지킨다. 벌금 조금 내고 만다. 또한 국가나 기업이 장애인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베푼다는 시혜적인 관점도 없애야 한다.

장애인연금의 경우 필요하지 않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장애인연금을 실시하려면 예산이 많이 늘어나니까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장애인이 사회의 짐으로 여겨질까봐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분명히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걸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제까지 국회가 낭비한 세금을 이 쪽으로 돌리면 충분하다."

김진석
- 장애여성의 국회진출은 분명히 장애여성을 비롯한 여성인권 향상에 의미 있는 디딤돌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여성 한명이 국회에 진출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국회라는 조직에서 국회의원 한 명의 힘은 너무 미약하지 않나? 자신이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그 공약들을 모두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그러나 17대 국회는 16대 국회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또 달라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4-5가지를 확실하게 정해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요하게 매달릴 것이다. 국회의원 한 명 한 명 만나서 설득하고 연구하겠다."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인이 되겠다"

-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변화의 차원은 우리 자신 속에 있다'는 말을 했다. 내가 평생 의지해온 말이다."

- 정치를 통해 어떤 세상을 그려내고 싶은가?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보지 않는 사회, '너는 왜 옷을 그렇게 입니'라든가 '너는 왜 결혼을 안해' 따위의 물음들이 사라지는 사회, 그래서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그러한 세상을 만들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언제나 엎드린 채 세상을 바라봐온 사람이다. 두 발로 서서 보는 세상과 엎드려 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두 발로 선 사람들의 기준으로 모든 것이 짜여져 있지 않나.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엎드린 사람은 지구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인이 되겠다."

- 만약 비례대표로 선출받지 못한다면?
"꼭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위원으로서 인권운동을 정치를 통해 해나갈 것이다. 인권운동은 내 존재이유다. 20년간의 경험과 고민들을 책으로 쉽게 풀어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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