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헌혈보다 쉽다!

인터넷 접수... 주사바늘 무서워할 필요 없어

등록 2004.03.08 12:13수정 2004.03.09 13:0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치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추억을 주고자 그리고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으나 용기가 없어서 떠나지 못하는 조카를 위하여 짧은 여행을 떠났다.


이름하여 '거제도'라고. 그 거제도의 한 여관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엄마(고두심 분)가 '시앗'에게 신장을 떼어주려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갔다는 소식을 들은 재수(김흥수 분)와 미옥(배종옥 분)이 통곡을 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진짜로 자기 엄마가 신장이라도 떼 준 듯이 울고 부는 배우들이 놀라웠다.

신장을 떼주는 역의 고두심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그들의 연기에 감읍되어 우리들은 TV 속으로 기어들어 갈 듯이 집중했고, 내 일처럼 가슴이 짠하였다. 짠한 가운데 조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신장을 떼 주긴 왜 떼 줘."
"불쌍하잖아, 재건이가…."
"말도 안 된다. 나는 재수와 미옥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저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간다. 어차피 죽을 목숨, 그 웬수같은 영감탱이가 부탁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부탁을 들은 이상, 안 해주었다가 나중에 재건엄마(방민서)가 죽고 나면, 착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죄책감은 누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이고, 어휴 저 영감은 낯짝도 두껍지."
"그렇긴 한데 고두심도 재건이란 아이가 불쌍해서 그리고 평생을 사랑을 못 받고 살았기에 마지막으로 남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자식들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배를 가르고 신장을 떼 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다. 차라리, '재건이는 내가 키워주마' 할 수는 있어도 신장이라? 생각만 해도 무섭고 떨리는 것이 진심이다."


한편을 드라마를 두고 흥분하느라 우린 시켜놓은 통닭이 식는 줄도 몰랐다.

미옥의 엄마처럼 죽어서라면 몰라도 살았을 때 내 몸을 일부를 떼주는 일은 생각만 해도 무섭고 마음이 힘들다. 그러나 죽어서라면, 그건 전혀 두려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다.

다만 그 시기를 언제로 하는가 만이 숙제로 남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바로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는 알리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신의를 지키는 것 같아 슬쩍 흘려보았다.

"나 장기기증 서약한다. 어떻게 생각하노?"
"무슨 난데없이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노."
"옛날부터 생각했다. 어쨌든 알고나 있으슈."

마음은 굳혔지만 조금 떨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내 살점을 떼어내는 일이 아니라 돌아가신 아버지의 주검처럼 더 이상 이승에서의 생각과 방식들이 소용없는 그 시점에서라면 두려울 것도 아플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고 느끼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일뿐이고, 생각일 뿐이었다.

장기기증운동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장기기증을 누르니 여느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 할 때만큼 내 정보를 입력하고 서약한다는 확인키를 누르면 그만이었다. 여느 홈페이지 회원 가입보다 특별히 추가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 무엇을 기증할 것인지 정도랄까.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제주지역본부 홈페이지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제주지역본부 홈페이지
나는 각막, 뇌사시 장기, 시신, 조직 등 모든 것을 기증하기로 하였다. 약간의 흥분 속에서 자판을 두드려 성공적으로 등록을 하고, 한 이틀을 기증본부로부터 이메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당신은 성공적으로 장기기증 서약을 하였습니다' 뭐 이런 메일 말이다.

내가 책을 사는 인터넷서점에서는 주문 몇 시간 만에 그런 메일을 띄우기에 그런 기대를 하였다. 혹시 내가 잘못 적어서 접수가 잘되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고. 한 일주일 기다려보고 어떤 식으로든 연락이 없으면 내가 잘못 접수했는지 전화로 확인해보고 만약 그렇다면 다시 접수하자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 접수하지 않았고, 제대로 접수하였나 보다. 딱 일주일째 되던 날 우편으로 장기기증 등록증이 왔다. 편지 봉투를 뜯고 장기기증 카드를 손에 넣었을 때의 그 '손맛'이란 낚시꾼들의 월척 못지않았다.

이제, 장기기증 카드는 현금카드와 기타 여러 카드들과 함께 내 지갑 속에 들어 있다. 왠지 든든하다. 사실 해보고 나서 느낀 거지만 장기기증이 헌혈보다 쉽다. 헌혈은 주사바늘을 무서워하는 사람의 경우 하고 싶어도 주사바늘에 찔리는 것이 두려워 못할 수도 있지만 장기기증은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

요샌 인터넷이 발달하여 자판만 두드릴 줄 알면 누구나 가능하고 또 내 사후의 일이기 때문에 주사 바늘 따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물론 헌혈도 중요하고 쉽다. 둘째 아이 수유가 끝나면 한 계절에 한번쯤은 헌혈을 할 생각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AD

AD

AD

인기기사

  1. 1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2. 2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3. 3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4. 4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