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는 낙서가 아닙니다, 예술입니다

[인터뷰]3월 31일까지 개인전 여는 스프레이 아트의 이광택 유병국씨

등록 2004.03.10 01:42수정 2004.03.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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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린 그림, 그래피티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린 그림, 그래피티 ⓒ 스프레이아트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벽면을 가득 채운 글자와 그림들을 보면서 '저게 뭐야'하고 의아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낙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멋진, 그림이라고 하기엔 약간은 기괴한, 그래서 낙서도 그림도 아닌 혹은 낙서이면서 그림이기도 한 그것.

바로 그래피티(graffiti)이다.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graffito'와 그리스어 'sgraffito'에 어원을 두고 있는 그래피티는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린 그림으로 스프레이캔아트라고도 한다.


이 즉흥적이고 장난스러우며 기발한 그림들은 1960년대 말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소수민족과 젊은이들이 억눌린 열정을 표출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기 위해 혹은 재미삼아 벽에 문자와 그림을 그린 것이 오늘날의 그래피티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광택, 그래피티를 만나다

a 스프레이 아트의 이광택 프로듀서

스프레이 아트의 이광택 프로듀서 ⓒ 송민성

우리나라에 그래피티가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 그래피티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스프레이아트(spray-art.com)의 프로듀서 이광택씨가 그래피티를 처음 접한 것이 95년 겨울이었다.

"외국에 사는 친척들이 보내준 잡지에서 처음 봤어요. 외국영화에서 몇 번 보긴했는데, 그림으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애니메이터였던 그는 그래피티를 접한 지 한해 만에 그래피티 작가로 나섰다. 96년 그래피티 전문회사 스프레이아트를 설립하고, 아는 후배들과 함께 그래피티 작업을 하긴 했지만 초보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피티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했던 탓에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조언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연습에 연습만 거듭할 뿐이었다. 커다란 벽면에서 밑그림을 어떻게 잡아가야 하는지, 락카를 어떻게 뿌려야 하는지 하다못해 연습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씨는 혼자서 깨우쳐야했다.

함께 작업을 하던 후배들은 곧 군대로,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래피티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돈이 될 수 없는 장르였다. 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곧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씨 역시 애니메이션과 그래피티를 병행하고 있었다.


유병국, 자신감과 용기를 되찾다

a 펜으로 스케치를 하는 유병국 일러스트레이터

펜으로 스케치를 하는 유병국 일러스트레이터 ⓒ 송민성

당시 같은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던 유병국씨와 의기투합하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림체가 특이하고 환상적이었어요.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유씨는 처음 그래피티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러지 않아도 '체계적인 애니메이션'에 질리던 참이었다. 그래피티의 강렬함은 색다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부추겼고, 결국 그도 그래피티 작가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속이 시원해지죠. 그래피티는 용기가 필요한 예술이거든요. 벽을 마주하면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이 생기죠. 그걸 넘어서야 락카를 들 수 있어요. 그 단계를 못 넘겨 번번이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청각장애인인 그는 그래피티를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 4년간은 자신만의 그림체를 찾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 그 시기를 지나고나니 서서히 '감'이 왔다. 그는 '물론 지금의 그림도 100%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덧붙인다.

그래피티, HOT와 함께 뜨다

a 이광택씨의 캔버스 작품 (60cm*16cm)

이광택씨의 캔버스 작품 (60cm*16cm) ⓒ 스프레이아트

이광택씨와 유병국씨가 함께 활동을 시작한 98년에는 그래피티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지고 있었다. 97년 당시 최고의 인기그룹이었던 HOT가 앨범 재킷과 뮤직비디오에 그래피티를 넣어 그래피티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래피티의 새로운 형식과 과감한 색채에 주목했고, 그 즈음 늘어난 PC방과 콜라텍은 마치 공식처럼 그래피티로 내부를 채워넣었다. 그래피티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그래피티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겨났고, 스프레이 아트 정기모임을 하면 80명 이상이 모여들었다. 모두 그래피티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었다.

"한 6개월을 그렇게 사람들이 몰렸어요. 나중에는 그 절반이, 더 나중에는 다시 절반이 줄어들더군요. 지금이야 아예 일대일 강의를 할 수준이죠. 그래도 열성을 다하는 친구들을 보면 뿌듯하고 기뻐요."(유병국)

정통파와는 거리가 먼,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은

a 유병국씨의 펜일러스트레이터(37cm*26cm) '귀(鬼)'

유병국씨의 펜일러스트레이터(37cm*26cm) '귀(鬼)' ⓒ 스프레이아트

그래피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지만 안타까운 부분도 적지 않다. 작가들의 수적인 증가에 비해 형식과 내용의 폭은 깊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통파'라고들 하죠. 외국 그래피티 스타일을 많이 모방하면서 화살표나 뾰족뾰족한 글자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에요. 사진을 보고 그대로 베껴그린다거나 하는 실사 그래피티도 있고. 3D라고 입체적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건 아직 따라 그리는 수준밖에 안되구요."(이광택)

그들은 자신들이 '정통파와는 한참 거리가 멀고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은 작가들'이라고 설명한다.

"스프레이 아트의 경우 동양적인 느낌이 많이 나요. 그렇다고 산수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고(웃음). 선이랄까 색채랄까 하는 것들에서 동양적인 느낌이 묻어나죠. 우리가 외국인도 아닌데 흑인 얼굴을 왜 그리나 몰라요."(이광택)

"일부러 맞춘 것은 아니지만 우리 스타일이 한국 정서에 맞는 것같아요. 한국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유병국)

그래피티는 낙서가 아닙니다, 예술입니다

a 3월 14일까지 유병국씨의, 31일까지 이광택씨의 개인전이 와인빌 갤러리에서 차례로 열린다. 주제는 포르노그라피티.

3월 14일까지 유병국씨의, 31일까지 이광택씨의 개인전이 와인빌 갤러리에서 차례로 열린다. 주제는 포르노그라피티. ⓒ 송민성

그래피티를 멋진 낙서쯤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그들에겐 불편하다.

"인테리어를 그래피티로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가격을 말하면 대뜸 그래요, '스프레이로 낙서 좀 하는데 뭐가 그렇게 비싸?'라구요. 우리는 이런이런 스타일로 그리고 그래피티는 벽화의 일종이라고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해요. 그냥 스프레이로 슥슥 뿌리면 되는 낙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씨와 유씨는 '그래피티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예술'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3월 1일부터 '포르노그라피티'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편견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래피티가 들어온 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예술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잖아요. 이제 한국에서도 그래피티가 하나의 그림으로, 예술로 자리매김해야죠."

스프레이 아트의 꿈은 소박하지 않다. 그래피티와 다른 그림형식을 접목해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래피티의 폭을 확장시키는 것이 이광택씨와 유병국씨의 공동목표다. 이씨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그래피티를 그리는 것을, 유씨는 현실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그래피티를 제작하는 것을 개인적 목표로 꼽는 정도이다.

올 7월에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기획전도 초대되어 스프레이 아트의 그래피티를 선보일 예정이다.

오랫동안 그래피티를 그려왔으면서도 '여전히 그래피티를 설명하기엔 막막하다'고 말하는 욕심 많은 두 남자가 펼쳐낼 그래피티의 세계를 기대해본다.

그래피티, 그것이 알고싶다!

▲ 장소는 찾기 나름. '주인의 허락하에' 스프레이아트 사무실 옆 담장을 그래피티로 채웠다.
ⓒ2004 송민성
다음은 그래피티에 관한 기초적 질문과 스프레이 아트의 답변들이다.

- 그래피티,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나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피티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고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락카를 쥐고 뿌려보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부담스러운 초보자라면 스케치연습을 권한다.

스케치는 꼭 완성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고 락카로 그려본다. 이때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 연습은 어디서 하나요?
"후미진 하수도나 터널을 찾으면 된다. 합판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연습할 정도밖에 안된다. 그래도 굳이 합판을 구입하겠다면 동네 가까운 목재소로 가면 된다.

크기는 가로가 1.2미터, 세로가 0.95미터로 규격화되어있으며 한 장은 배달해주지 않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합판의 두께가 3mm~12mm까지 있으니 자신이 연습하기 편한 합판을 구입하도록 한다."

- 벽에 스케치는 무엇으로 잡나요?
"락카로 형태를 잡아서 그림을 그려나간다. 처음에는 물론 어렵지만 서서히 익숙해질 것이다. 평면감각을 익히기 위해 분필로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일 뿐이다."

이외 자세한 내용은 스프레이 아트의 홈페이지 spray-art.com 이나 까페 cafe.daum.net/sprayart 에 나와있다.

덧붙이는 글 | 스프레이 아트의 개인전은 유병국(오는 14일까지) 이광택(15일~31일까지) 순서로 방배동 와인빌 갤러리에서 열린다. 와인빌 갤러리는 2호선 방배역 1번출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으며,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02-583-1791

덧붙이는 글 스프레이 아트의 개인전은 유병국(오는 14일까지) 이광택(15일~31일까지) 순서로 방배동 와인빌 갤러리에서 열린다. 와인빌 갤러리는 2호선 방배역 1번출구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으며,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02-583-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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