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본다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밤

등록 2004.03.14 07:45수정 2004.03.1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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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때때로 꿈을 본다. 세상이 어수선 할 때, 밤이 아주 깊어질 때,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때에. 그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에 펄럭이는 푸른 꿈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을 바라본다. 그리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기에, 힘들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어떤 새로운 곳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갈 수가 있다.


꿈이 없는 삶. 희망이 없는 삶. 무엇인가를 애절하게 바라는 것이 없는 삶. 나는 그런 삶에 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항상 내 주변의 삶들에는 아픔이 가득히 저며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또 다른 꿈을 찾아내곤 했었다.

꿈. 세상을 위하여. 혹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하여 무엇인가 노력한다는 것. 그것이 나를 숨쉬게 하였고, 그것이 힘든 삶을 이겨내게 만들어 주었다. 혹,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꿈이 내가 닿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있다 할지라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꿈은 저 멀리 보이는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향해 달리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달리고자 하였다. 결코 그다지 빨리 달리지도, 그다지 많은 것을 이루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나는 행복했었다.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세상에 풍요가 넘치고 어쩌면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였었다. 나는 마침내 또 다른 꿈을 찾아 머나먼 이국인 이곳 과테말라로 떠나왔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반대편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을 느끼면서 행복하다.

내 꿈은 결코 어떤 구체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어내고자 애타게 바라는 염원. 그 과정에서 피곤함과 함께 느끼는 보람과 희열. 그것이 내가 끊임없이 꾸는 꿈의 실상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저 하늘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저 푸른 하늘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푸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먼 곳으로 떠나올 용기를 가졌는지 모른다. 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그들 가까운 곳에서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때로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나의 곁에 동지들이, 혹은 친구들이 함께 있어주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마주하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서로의 손에 손을 잡고, 어께에 어께를 기대로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것이었다. 나는 행복이란 것의 의미를 그렇게 해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떠나온 한국에는 다시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분노한 군중들이 광화문 길거리를 다시 가득히 메우고 있다. 수없이 벌어지던 민원성 시위나 집회와는 다른 차원의 힘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도, 남보다 내가 더 잘 살도록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아무런 사심도 없이 오로지 정의만을 위해서, 오로지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일을 놓아두고, 거리로 달려 나오는 풍경이 다시 펼쳐진 것이다.

신랑을 맞이하러 가는 신부처럼 다급하고 기쁜 마음으로, 혹은 망자를 떠나보내는 이의 한없는 슬픔을 않고서 사람들은 광화문 거리에 선다. 손과 손에 저마다의 염원을 담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서... 나는 불행히도 그곳에 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다.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옆에 선 사람의 염원이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기에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한없이 반가운 친구가 되고, 둘도 없는 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가슴 아프다. 너무나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거룩한 분노로 하나가 되는 그 아름다운 고통의 순간이 다시 찾아와 버린 것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던 고국에 다시 그 아름다운 고통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절절했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광화문에 모였던 것일까.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그들은 그토록 감격하고 눈물 흘렸던 것일까. 그리고 또 그토록 슬퍼했던 것일까.

멀리 떨어진 나는 이곳에서 염원한다. 이 아름다운 밤이여. 이 아름다운 거리여. 아름다운 염원이여. 아름다운 우정들이여. 영원히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말라. 그 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여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말라. 그리고 그런 밤이여. 다시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지 말라. 두 번 다시 우리들이 이런 행복한 아픔을 격지 않기를, 우리의 가슴에 다시는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분노와 아픔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기를, 나는 이곳 먼 곳에서 진심으로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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