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신념은 행동으로, 감동은 가슴마다

15일 부산 촛불집회 4일째

등록 2004.03.16 01:27수정 2004.03.1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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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에도 부산 서면 중심가에서는 어김없이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회는 어두움 속에서 진행되었고 2차선 도로 위의 촛불들은 시민들의 눈빛을 대신해 주었다.

즉흥적으로 연사가 된 시민들은 함께 나누고 싶은 뚝배기 같은 생각들을 사투리로 질펀하게 쏟아 내었고, 함께 한 시민들은 이에 공감하며 즐거워했다.

앞쪽에 나란히 앉아 어린아이처럼 단상 위 젊은이들의 춤에 흥겨워하던 중년 부인들은 "이 곳에 왜 왔느냐"는 뜬금 없는 질문에 "4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답했다.

a 엄마와 함께 촛불을 든 아이들

엄마와 함께 촛불을 든 아이들 ⓒ 황재문

언니뻘 되는 박정희(장전동)씨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TV에서 보고 나는 완전히 돌아버렸어요"라고 내뱉는다. 그녀는 그날 곧바로 여의도로 가서 집회에 참석하고 다시 부산에 내려와 줄곧 이 곳에서 집회를 지켜봤다며, "이제는 죽 써서 개 주지 않고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옆자리의 '아우' 유명자(문현1동)씨도 "이 언니와 함께 나도 4일간 계속 여기에 왔다"고 거들었다.

시민의 변화와 야당의 역할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심리적 변화 ’과정’ 속에 있는 야당의 역할이었다.

정치에 대해 지극히 냉담했던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결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들에게 잠재되어 있었떤 주권자로서의 책임의식은 신념으로 이어졌고, 신념이 곧 행동으로 표현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로 야당의 무리한 탄핵이었다.

시민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실제로 야당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의 아이러니가 현재 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황재문
단상에는 70대 노부부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마이크를 손에 움켜쥔 노인은 거대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섭섭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친일세력이 많은 한나라당이 나라를 망쳤다"며 "물러나라"고 외쳤다.


그는 "수구세력과 친일파도 물러나야 한다"며 관중들에게 구호를 제안했다. "한나라당 물러가라! 수구세력 물러가라! 친일파 물러가라!"는 네댓 번의 구호가 끝나자 이번에는 노부인이 마이크를 잡고 "*** 후보의 아버지가 친일파임을 알았을 때 분해서 내가 얼매나 울었는지 모릅니더. 우리 거~하도록 하입시다"라고 호소했다. 노부부는 대한독립만세를 마지막으로 외치고 단상을 내려왔다.

이어 소개된 연사는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도 역시 일제시대 직후 청산되지 않았던 친일파가 법조, 교육, 행정 각 분야에서 기득권자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야당 대표자들을 향해 "병렬아 고맙다, 순형아 니도 고맙다. 이제 너거 할거 다했거든! 이젠 물러가라"고 외쳐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미 있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단상 옆에 서서 집회를 지켜보던 50대 남성들은 껄껄 웃으며 "그게 맞기는 맞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a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 ⓒ 황재문

마지막으로 만난 52세의 남성은 "우리가 왜 이곳에 서 있는 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적어도 국민의 진의가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또 다시 이용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첫날 우리가 거리로 뛰어나온 이유는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3일째 되는 날 젊은 학생을 중심으로 특정 정당이 매도되는 것을 보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정당에 대한 판단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집회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볼 수 있는 시대적 착오와 오류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를 공유하는 것이고, 시민사회 속에서 가치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시민들은 집회를 주도하는 사람들로 인해 국가와 사회가 불안해 질까봐 걱정을 한다. 그러나 직접 참석해 보면 집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노래와 춤이고, 남녀노소 너나없이 땅바닥에 함께 앉아 촛불을 흔드는 모습이 영락없는 축제마당임을 알게 될 것이다.

집회 끝 순서에서 '행진'을 함께 부르며 어우러져 추는 춤은 국민주권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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