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산골마을입니다.
산꼭대기에 호랑이 두 마리가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뽀금 뽀금…
호랑이들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노을 하늘에 하얗게 퍼지고 있습니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던 호랑이 중 한 마리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우리도 동아줄을 타고 일월궁전으로 올라가 수 있는 거야?”
“그래. 저 아래 동네 초가집에 사는 남매 어머니가 지금 저 산을 넘어오는 중이야. 그 엄마만 잡아먹으면 그 남매들은 바로 고아가 되고, 그 녀석들이 우리를 피해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만 하면 돼. 그러면 일월궁전에서는 그 애들을 구해주려고 동아줄을 내려준다고 하더군. 우리도 그걸 잡고 일월궁전에 올라가기만 하면 되네.”
다른 한 마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오늘 확실히 보름달이 뜨는 것 맞나? 동아줄은 보름달이 뜨는 날만 내려온다고 하던데….”
“보름달이 뜨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나도 어찌 할 수는 없지. 오늘이 보름날인 것은 확실하니 단지 운에 맡겨 보는 수밖에.”
두 호랑이는 담뱃불이 꺼지자 두 남매의 어머니가 돌아오고 있는 산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노을이 붉은 하늘엔 구름 몇 쪽이 바람에 뒹굴고 있을 뿐, 그날 밤에는 보름달이 뜰 것 같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남매의 어머니가 머리 위에 바구니를 얹고 바쁜 걸음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지고 있는 햇빛이 만드는 어머니의 그림자는 꼭 다리가 긴 거인 같았습니다.
호랑이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여기서 내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내가 저 여자를 처치하면 얼른 저 남매의 집으로 가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는 호랑이는 얼른 길가에 나와서 어머니 앞을 가로막아 섰습니다.
“어흥…”
호랑이는 겁을 주려는 듯 힘찬 목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에그머니나!”
어머니는 호랑이를 보자 다리에 힘이 풀러 쓰러질 뻔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힘을 주고 일어섰습니다. 호랑이는 어머니 주위를 느릿느릿 걸으면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호랑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호랑아… 호랑아… 저, 여기 떡이 있는데, 내가 한 덩이 줄테니 나 좀 가게 해다오… 지, 지금 집에 애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거든.”
어머니는 얼른 바구니에서 검은콩이 박힌 떡 한 덩이를 꺼내서 호랑이 눈 앞에 들이밀고 말했습니다.
호랑이가 말을 알아듣든지 말든지, 그 떡을 먹고 제발 멀리 가기만 바라는 어머니는 벌벌 떨면서 고개를 돌리고는 손만 내밀어 호랑이 입 쪽으로 떡을 들이밀고 서있었습니다. 호랑이는 한동안 말없이 그 떡이 든 손을 바라보더니 떡만 널름 받아먹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바쁜 걸음으로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랑이가 돌아오자 다른 호랑이가 말했습니다.
“이봐, 뭐하는 거야? 저 여자 잡아먹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거야?”
“사람들이 먹는 떡맛이 뭔지 궁금해서 그랬어. 저 언덕 위에 올라가서 떡을 하나 더 얻어먹을 양이야, 나도 먹어보고 싶냐?”
호랑이 두 마리는 빠른 걸음으로 산을 넘어 다른 언덕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역시 바쁜 걸음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려면 아직 고개를 몇 개 더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고개에 오르자 호랑이가 또 나타났습니다.
“에이구 에이구….”
품팔이 갔던 집 마님이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라고 할 때 들었어야할 것을…. 지금 후회해 봤자 늦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바구니에서 손을 넣고 말합니다.
“배가… 고픈 모양이로구나, 자, 여기 떡 많이 있다. 떡 하나 더 먹으련?”
어머니는 강아지에게 고기를 던져주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호랑이는 이번에도 떡만 널름 받아먹고는 나무 사이로 사라졌습니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호랑이 뒤꽁무니를 보자마나 어머니는 바구니를 다시 머리에 이고는 바쁜 걸음으로 고개를 내려갔습니다.
그 호랑이는 번갈아 가면 차례로 어머니 앞에 나타났습니다. 떡맛을 본 호랑이들은 어머니가 미처 고개를 다 넘기도 전에 다시 나타났고, 그때마나 번번이 바구니를 뒤져서 떡을 먹여주었습니다.
집에 거의 다 이르러 이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어머니는 익숙하게 바구니를 뒤졌습니다.
“어머….”
바구니 속엔 이미 떡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머, 이를 어째….”
바구니를 열어 뒤집어 보았지만, 떡가루만 풀풀 날릴 뿐 저 덩치 큰 호랑이를 먹일 떡은 한 개도 남아있기 않았습니다.
당황해 하는 어머니를 보고 그 호랑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떡 한 개만 주면 안 잡아먹을거요. 저 산만 넘으면 이제 집인데…. 내게 떡 하나만 더 주시요. 요즘 겨울철이라 들짐승들도 다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고 먹을게 없어서 통 먹지를 못했오.”
호랑이가 인간의 말로 이야기를 하자, 어머니는 짐짓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떠, 떡이 없구나. 너 다 주느라, 우리 애기들 줄 떡도 지금 하나도 없네…. 나중에 우리집에 오렴, 그럼, 내가 맛있는 떡이랑 고기랑 많이 만들어서 주마. 알았지?”
호랑이는 들은 체도 안했습니다. 잠시 쳐다보기만 하더니 무겁게 말을 꺼냈습니다.
“난 사흘동안 굶어서 지금 먹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을 것 같소이다.”
“어머, 이를 어째… 내가 매일 매일 이 산길 어귀에 먹을 것을 내어놓을게, 그러면 겨울은 무사히 견딜 수 있을 거야.”
어머니가 그 말을 마치자 무섭게 호랑이는 달려들어 얼른 목을 물어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순식간에 내뱉는 비명소리로 산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곧 어머니는 숨이 끊어져 호랑이 입에 힘없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른 호랑이는 얼른 남매의 집으로 가지 않고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나한테 그 여자 옷을 좀 벗겨주게. 그 옷이 필요할 것 같구려.”
어머니의 옷을 받아든 호랑이는 허겁지겁 그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하얀 옷은 호랑이에 물린 어머니가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호랑이의 거친 발톱으로 찢기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옷을 입은 호랑이는 성큼성큼 걸어서 남매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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