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6

영혼들이 사는 바다마을1

등록 2004.03.29 06:33수정 2004.03.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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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앞바다는 언제부턴가 유난히 파도가 많이 일었습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며칠 사이 항상 파도가 높게 일었습니다. 그래서 육지로 가던 배들이 벌써 며칠째 발이 묶여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고기잡이배들도, 여객선도 꼼짝앉고 항구에만 묶여 있었습니다. 파도가 왜 이리 높게 치는지, 그리고 언제쯤 멈출지 많은 사람들이 알아내고자 했지만,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습니다.

그 거센 파도가 시작하는 곳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저 먼바다였습니다. 섬 하나 발견할 수 없는 망망대해 어딘가에 바다에 잠긴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나, 섬에 살다가 육지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진 사람들, 그리고 해전 중에 전사한 군인들과 장군 등 바다에서 살다가 바다에서 숨진 이들의 영혼이 모여살고 있는 그곳에 들어가려면 10년에 한번 바다에 이는 소용돌이 물결을 타고 아래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소용돌이가 치는 때에는 이유 없이 바다에 파도가 높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소용돌이가 친 것은 불과 2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바다에 사는 영혼들을 만날 수 있으려면 적어도 8년은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 바다에 지금 소용돌이가 거세게 치고 있엇습니다. 누군가 바다 밑으로 길을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부러 바다에 길을 낼 수 있는 경우는 딱 두가지였습니다. 용왕님이 하늘나라에 잠시 다니러 가시거나, 아니면 용왕님이 육지로 누군가 사신을 보낼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용왕님이 사신을 보내러 바다에 소용돌이를 낸 것은, 용왕님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생포하는 명을 받는 별주부가 육지로 나가던 그 때와, 심청이처럼 바다로 떨어지는 착한 영혼들을 바다 밑으로 이끌어가는 용녀들을 보낼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 두가지 모두 아니었습니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용돌이를 따라서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호랑이들은 지붕이 없이 기둥만 네 개 나있는 커다란 가마에 앉아있었고, 그 가마의 네 기둥을 날개 달린 산오뚝이들이 팔과 다리로 붙들고 조심스럽게 소용돌이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밑바닥에 거의 다 내려오자 바다 밑으로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이 보였습니다. 호랑이 두 마리를 실은 가마는 그 빛이 비치는 쪽을 향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잠시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자 환한 빛으로 가득한 영혼들의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산오뚝이들은 물의 압력이 난데없이 사라지자 잠시 뒤뚱거리기는 했지만, 바로 중심을 잡고 마른 땅 위로 사뿐이 내려앉았습니다. 호랑이는 가마에서 내렸습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이곳은 너희들 같은 요괴들이 들어갈 곳이 아니다."


산오뚝이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영혼들이 만들어 내는 강력한 불빛에 몸이 금세 타버릴 것이 뻔했습니다. 저 멀리 영혼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 보였고, 거기에는 정말 영혼들이 만들어 내는 불빛들이 이글거리듯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물속이 아니었습니다. 물고기도 헤엄치지 않았고, 물 한방울 흘러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태양빛은 바다 밑까지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는 영혼들은 전부 아름다운 빛을 뿜고 있었으며, 그 불꽃 때문에 그 곳은 언제나 환했습니다. 그 불꽃 때문에 그곳은 악마나 요괴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곳은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들은 궁전이나 으리으리한 성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자그마한 오두막 같은 집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림 속에 나오는 것 같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 같았습니다.

호랑이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그곳의 영혼들이 호랑이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끔식 용왕님의 어명을 가지고 들어오는 용궁의 인어들이 그 마을에 들어오긴 했지만, 코에서 숨을 내쉬는 살아있는 짐승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그들을 보자,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 한 장수가 말했습니다.

“이건. 호랑이 아닌가? 호랑이를 본게 언제였는지 모르겠군, 한 500년쯤 전인가?”

장수 옆에서 하얀옷을 입고 서있는 아저씨가 미심쩍은듯이 물었습니다.

“ 자네, 호랑이가 여기서 할일이 뭐가 있나?”

“ 이곳의 불꽃에도 말짱한 것을 보니 요괴는 아닌 모양이군.”

“ 동물원에 붙잡혀 가다가 태풍을 만나서 물에 빠져 죽은 호랑이들인가?"

이러면서 코가 큰 사람이 호랑이 얼굴에 코를 디밀자 호랑이들은 얼굴을 할퀼듯이 손을 내저었습니다. 모두 한걸음 물러섰습니다. 그 중에 누군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 자네들 대체, 무슨일로 이곳에 왔는가.”

호랑이는 이곳에 들어온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 호랑이가 아니었습니다. 영혼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호랑이들이 무슨 일들을 꾸미고 있는지, 이 호랑이들이 어떤 호랑이들인지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혼들을 바라보는 호랑이의 눈동자는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 중 한마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호종단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딘가?”

붉은 갑옷을 입고 있는 또 다른 장수가 나왔습니다.

“호종단? 그 송나라에서 온 사람 말인가?”

“그렇다. 호종단. 그 분을 급히 모시고 갈 일이 생겼다.”

“그래? 저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또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호종단을 데리고 가든 말든 우리가 알바는 없다만 그 호종단을 지상으로 다시 불러 올리려는 자가 그 호랑이 대왕이란 놈이냐?”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면, 호종단이 있는 곳만 이야기하라.”

그 장수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말했습니다. 지상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에서 호랑이들은 아무런 해꼬지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들이 지상에서 펼치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들어 알고 있는 그 장수는, 잠시 호흡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호종단의 문제라면 사정이 좀 다르지. 우리는 지상의 문제에 관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곳의 영혼들은 인간계가 언제나 평화롭기만을 바라고 있어. 호랑이대왕이 그놈을 부르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지상에 다시 나갈 수만 있다면, 그 대왕이란 놈 머리를 단칼에 베어버리고 말테다.”

장수의 오른팔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리고는 오른팔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습니다. 마치 지평선 멀리 숲이 보이는 것처럼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나무들처럼 멀리 뻗어있었습니다.

“ 저 그늘이 우거진 곳 모래밭에 가봐라. 저곳에 너희들이 찾는 호종단이 있을거다.”

호랑이 두 마리는 그 장수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어슬렁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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