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모두 털리는 '벗고장', 진해 벚꽃장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46> 진해 벚꽃장

등록 2004.03.29 13:23수정 2004.03.3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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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벚꽃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벚꽃 ⓒ 이종찬

지금 남녘에는 개나리, 벚꽃, 진달래 등이 진종일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곳마다 꽃이요, 눈을 감아도 노랑, 하양, 연분홍 꽃이 환하게 다가온다. 그중 거리마다 하얀 꽃망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벚나무 가지에는 밤새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성에 같은 눈꽃을 매달고 있는 것만 같다.


지난 27일, 진해시 일원에서 전야제가 열린 진해군항제에는 전국에서 무려 20만 인파가 몰려 지독한 교통대란을 겪었다고 한다. 그리고 평일인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해를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다. 대체 벚꽃장이 뭐기에 그리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해로 진해로 몰려드는 것일까.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봄은 앞산 가새 곳곳에 아기 진달래가 앞을 다투어 피어나는 그 맘때 불모산 너머 진해에서 열리는 벚꽃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한번도 벚꽃장에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벚꽃이 피어나는 그때가 되면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웃자란 보리밭 사이에 쑥쑥 돋아나는 잡초를 매야 했다.

"저 산만 넘으모 벚꽃장에 갈 수 있는데, 그쟈?"
"벚꽃장에 갈라캐도 입을 옷이 있어야 갈 꺼 아이가. 돈도 없고."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보리밭이나 제대로 매라, 고마. 나중에 아부지하고 옴마한테 혼쭐 나고 싶지 않으모."
"차암! 울긋불긋한 옷을 차려입고 벚꽃장에 놀러가는 저 사람들은 정말 좋겄다. 우리는 운제(언제) 한번 저리 잘 차려입고 놀러 한번 가 보것노."


a 벚꽃은 지금 창원대로변에도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벚꽃은 지금 창원대로변에도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다 ⓒ 이종찬

그랬다. 우리는 해마다 열리는 진해군항제를 '진해벚꽃장'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진해에서 대규모의 벚꽃 장터가 열린다는 그런 뜻이었다. 하지만 한번도 벚꽃장에 가보지 못한 우리 마을 아이들은 누구나 벚꽃장을 '벗고장'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가진 것 모두를 다 털리고 온다는 그런 뜻에서였다.

아니, 어찌 보면 벚꽃장에 아무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데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위안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진해 벚꽃장이 열리게 되면 긴 꼬리를 문 열차가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사람들을 빼곡히 싣고 상남 들판을 가로질러 진해로 진해로 숨가쁘게 내달렸다. 기운 옷을 입고 보리밭을 메고 있는 우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히야~ 저 사람들은 머슨 팔자고?"
"그라이 너거들도 저 사람들맨치로 놀로 댕기고(놀러 다니고) 싶으모 공부로 열심히 해야 된다카이. 너거 아부지하고 옴마야 배운 기 없다 보이(없다 보니까) 꽃 피는 봄이 와도 맨날 요 모양 요 꼴로 농사나 지음시로(지으며) 살고 안 있나."
"공부 할 시간이 오데 있습니꺼. 맨날 핵교 갔다 오고 나모 보리밭도 매야 되고 소풀도 비야(베야) 되는데."
"주경야독이라 안 카더나. 공부도 제대로 못하는 기 꼭 연필 타령한다꼬. 옴마 말 머슨 말인지 알겄제?"


하지만 그때는 어머니께서 하신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올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허리에 쥐가 나도록 보리밭을 매면서 어머니의 그 말씀을 다시 한번쯤 되새기려고 하면 이내 상남역에서 푯대가 철커덕 하고 내려졌다. 그리고 "뙜뙈~" 소리와 동시에 열차가 사람들을 빼곡히 매달고 진해로 미끄러지듯이 내달렸기 때문이었다.


a 내 어릴 때에는 진해 '벚꽃장'에 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내 어릴 때에는 진해 '벚꽃장'에 가고 싶어 안달을 했다 ⓒ 이종찬


그래. 그땐 정말 진해 벚꽃장에 가고 싶었다. 비록 아이스케키나 번데기를 사 먹을 돈은 없었지만 꼭 한번 진해 벚꽃장에 가서 나도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그 사람들처럼 벚꽃 속에 푹 파묻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대체 무얼 하는 사람들이며 어떻게 하면 나도 그들처럼 해마다 벚꽃장에 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라지 말고 우리도 벚꽃장에 한번 갔다 오까?"
"돈도 없이 우짤라꼬?"
"우리들 입은 옷도 그렇고 한께네 진해에 가서 각설이 타령을 한번 해뿌지 뭐. 그라모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도 쪼매(조금) 안 있것나."
"니 지금 제 정신이가. 퍼뜩 도랑가에 가서 찬물 묵고(먹고) 정신 차리거라이."


그랬다. 그 뒤 나는 스무살이 조금 넘어서야 제법 깔끔한 옷을 입고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진해군항제, 아니 진해벚꽃장에 가 보았다. 하지만 나의 오랜 기대는 진해로 향하는 길목에서부터 차량 정체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진해에 도착한 뒤에는 아예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가는 곳마다 바가지 요금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나마도 앉을 자리조차도 제대로 없었다. 또한 거리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벚꽃이 사람인지 사람이 벚꽃인지조차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집다가 그날 새로 산 멋진 모자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지금의 진해 벚꽃장은 질서 정연하게 잘 치러지고 있는지도 몰라도 그때 내가 가 본 진해 벚꽃장은 말 그대로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날 나는 나름대로 멋을 한껏 낸 모자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제법 두툼하게 가져갔던 지갑 속의 돈까지 몽땅 털리고 말았다. 되돌아오는 차비만 겨우 남긴 채로 말이다.

a 우리의 국회도 저 벚꽃처럼 환해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국회도 저 벚꽃처럼 환해졌으면 좋겠다 ⓒ 이종찬


그때 나는 분명 막걸리 한되와 도토리묵 한접시를 시켰는데, 그 포장마차집 주인은 다른 음식을 더 시켜먹었다고 마구 우겨대기 시작했다. 또한 그 주인의 말마따나 다른 음식을 더 시켜먹었다손 치더라도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말 그대로 스무살 시절에 가 본 진해 벚꽃장은 '벗고장'이었다.

그래. 지금에야 어디 그러하겠는가. 그때처럼 주인의 입맛대로 부르는 것이 곧 가격표가 되는 그런 일은 없지 않겠는가. 이제 '벗고장'이라는 말은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우스갯소리 정도로 머물러 있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아무쪼록 올해 진해군항제는 활짝 피어난 저 벚꽃처럼 환한 웃음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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