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떠난 낙서재 빈 터에 소은병 바위만 외롭구나

동백꽃 따라 떠난 남도 섬여행(4)-부용동

등록 2004.03.31 04:33수정 2004.03.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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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재 집터, 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소은병 바위가 보인다.
낙서재 집터, 나무 사이로 언뜻 언뜻 소은병 바위가 보인다.김정은
솔숲 사이 내 집 가서 새벽달을 보자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공산 낙엽(空山落葉)에 길을 어찌 찾아갈꼬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흰 구름 따라오니 입은 옷도 무겁구나
-윤선도 <어부사시사> 춘사(10)


세연정을 지나 고산이 살았다는 낙서재 터로 향했다.


예전과 달리 길은 포장됐지만, 고산이 <어부사시사>에서 자신의 집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던 것처럼, 세연정과 꽤 떨어져 있는 낙서재를 도보로 가기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부용동 유적은 손님을 접대하던 세연정과 고산 본인이 살던 낙서재 그리고 낙서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바위산 중턱에 지은 단칸 정자 동천석실과 고산의 아들 학관이 휴식을 위해 지었다는 곡수당으로 구성돼 있다.

낙서재에서 바라본 바위산, 저 멀리 마치 연봉우리 같은 둥그런 바위산과 푸른 상록수림이 어울어져 있다.
낙서재에서 바라본 바위산, 저 멀리 마치 연봉우리 같은 둥그런 바위산과 푸른 상록수림이 어울어져 있다.김정은
현재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유적이라곤 세연정과 동천석실뿐이고, 낙서재와 곡수당은 집터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처음 보길도에 왔을 때만 해도 윤선도란 인물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벼슬살이가 뜻대로 안풀린 호남의 지주가 이곳 보길도로 낙향해 풍류한답시고 주민들을 동원해 세연정과 같은 커다란 토목 공사나 시키고, 주민들의 피땀어린 세연정에서 한가롭게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하며 허송세월했던 유약한 지식인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번 보길도와 진도 여행에서 과거 윤선도가 했다는 간척사업의 행적들을 목격하면서 평소 낭만적인 시조나 짓는 유약한 학자라는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윤선도가 엄청난 전답을 소유한 호남 제일의 대부호였으며 일평생 남부럽지 않을 만큼 보길도라는 자신만의 왕국에서 여유롭고 넉넉한 삶을 살았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기존 권문세가들과 다른점이라면 최소한 정권 다툼에 패해 낙향한 후 대책없이 풍류나 즐기고 음풍농월이나 할 줄 아는 유약한 지식인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진도 굴포리에 있는 삼별초 배중손 장군의 사당을 찾다가 우연히 그곳 주민으로부터 윤선도가 약 380m의 둑을 막아 약 100정보(町步)의 간척지를 일궈내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무상분배했다는 간척사업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윤선도의 실용적인 간척 기술이 후에 그의 후손인 공재 윤두서로 내려와 공재의 외증손인 정약용의 실학사상으로 이어지게 된 단초가 됐다는 사실이다.


소은병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낙서재는 이름 그대로 고산 윤선도가 이곳에 기거하면서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폐허가 된 집 터에서는 좀처럼 당시 선비들과 학문을 논하며, 공부를 시켰던 곳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유희 공간인 세연정의 규모와 어울리지 않게 비좁다 생각되는 이 집 터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나무와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 그리고 투박하게 생긴 바위 돌뿐이었다. 얼핏 낙서재라는 안내판조차 없었다면 집 터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고나 할까?

산수간 바위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뜻을 모르는 남들은 웃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시골떼기의 생각에는 내 분수에 맞는가 하노라
-윤선도 <산중신곡> 만흥(漫興)중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조성했다는 곡수당, 한창 중건작업중이다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조성했다는 곡수당, 한창 중건작업중이다김정은
저만치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 뒤로 무덤덤한 돌맹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 바윗돌이 혹 소은병이란 바위가 아닐까? 주자가 기거했던 무이산 봉우리 이름인 대은병의 이름을 차용해 소은병이라 지을 정도로 주자의 사상을 흠모했지만 거기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방면의 학문을 접하려 했던 융통성과 호기심이 남달랐던 학자, 윤선도.

저 멀리 마치 연봉우리 같은 둥그런 바위산과 진록의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바위산 중턱에 조그만 점처럼 정자 한 채가 보인다. 바로 다음에 찾아갈 동천석실의 모습이다. 문득 상상에 빠져본다. 독서하던 고산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낙서재 창가에서 동천석실이 보이는 먼 산을 바라보다가 동산에 달이 뜨면 그 흥치를 못이겨 주섬주섬 행장을 꾸려 밖으로 나갔으리라고 말이다.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그리 길까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사립문을 찾아보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의 평생이란 이러구러 지낼러라
-윤선도 <어부사시사> 춘사(10)


굴삭기로 파헤쳐진 동천석실 가는 길

동천석실 가는 진입로는 자금 한창 공사중이다.
동천석실 가는 진입로는 자금 한창 공사중이다.김정은
내려가는 길에 윤선도의 아들 학관이 조성했다는 꽤 넓은 녹수당 터를 지나 동천석실로 향했다. 부용동 유적지 복원 사업에 동천석실로 가는 도로 조성까지 포함돼 있던 까닭인지 동천석실 진입로는 굴삭기가 이곳 저곳을 파헤쳐 놓아 난장판이었다. 이 도로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보다 편하게 동천석실을 올라갈 수 있으리라 위안해보지만 불편한 마음은 어찌 할 수 없다.

겨우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의 비좁은 동천석실, 이곳에서 윤선도는 무엇을 했을까? 일설에는 이곳이 기거용이라기보다 관상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바위를 쪼아 만든 석간수가 고이는 석담과 차바위의 존재를 보면 단순한 관상용이 아닌, 이곳에서 자주 차모임을 가졌으리라 추측된다.

일설에는 이곳에 도르레를 달아 음식물을 운반하는데 사용했다고 하니 다분히 윤선도다운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럭 저럭 윤선도의 왕국 부용동 유적지와 작별하고 동쪽으로 달려갔다.

사연이 많아 보이는 정자리 고택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큼  비좁은 한 칸정자 동천석실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만큼 비좁은 한 칸정자 동천석실김정은
바다를 굽어보는 일출 경관이 좋다는 망끝 전망대로 가는 도중 정자리 쪽에 자리한 유독 정갈하고 단정하게 생긴 고택 한 채가 여행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호기심을 느낀 여행객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열려진 대문에는 문패와 함께 "이곳은 개인 주택이므로 출입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일출 모습이 좋다는 망끝전망대에서 바라본 탁 틘 바다
일출 모습이 좋다는 망끝전망대에서 바라본 탁 틘 바다김정은
그래도 궁금한 마음을 누를 길 없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기웃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겉에서 보기에는 꽤 오래된 건물처럼 보였지만, 내부에 들어서니 아담하고 예쁘게 단장된 정원 양식이 조선시대 전통 정원 양식과는 매우 달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정자리 고택은 이미 작고한 이 집 주인의 선친때 지어진 것으로 고작 100여 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아 근대식 분위기가 나는 집이었다.

사연 많아보이는 정자리 고택의 정문
사연 많아보이는 정자리 고택의 정문김정은
정원 속에는 갖가지 색깔들의 꽃들이 만개해 피어 있었다. 흰 매화, 홍 매화, 빨간 동백과 노란색 개나리 등 이름모를 색색의 꽃나무와 가지런하게 다듬어져 있는 정원수가 빈틈없이 어우러진 정원.

정자리고택 내부 정원모습
정자리고택 내부 정원모습김정은
처음의 단순한 호기심은 더욱 불어나, 집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려니 방문객의 불손한 행동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무시무시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 이상 잡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일 터이다. 때문에 많은 사연을 품은 정자리 고택과 나와의 만남은 아쉽게도 이것으로 끝났다.

다시 보길도의 시작인 청별항으로 돌아와 육지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내내 내 마음은 떨치기 힘든 미련의 흔적이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해남으로 가는 배는 자동차를 싣고 천천히 이 섬을 떠났다. 아쉬움을 애써 뿌리치며 다음 목적지인 진도를 향해 갈 길을 재촉했다.

동풍이 잠깐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東湖(동호)를 돌아보며 西湖(서호)로 가자꾸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윤선도 /어부사시사 춘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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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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