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상요격체제 실험 장면FAS
북한과 MD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전, MD는 국제평화의 최대 이슈였다. 그러나 테러가 발생하고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따라 침공하면서 MD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이 틈을 타 부시 행정부는 ABM조약을 파기하고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시의 MD 계획은 21세기 새로운 군비경쟁의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나 MD와 이에 따른 핵군비경쟁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 사이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미국이 한반도의 '북쪽'을 MD의 최대 명분이자 1차 목표물로 삼고 있고, 남쪽은 MD 시스템의 최우선 배치 지역이자 포섭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MD의 최대 피해자는 한반도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즉, MD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나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은 말 그대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꺼리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MD 구축에 차질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북한위협론'이 미국 강경파에게는 '꽃놀이패'라는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시간끌기'로 일관할 것이라는 전망의 중요한 기초가 되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북한을 단순히 MD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의 대상으로도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선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부시독트린에 북한을 포함시킨 것과도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미국의 계획대로 MD가 진행되면 미국은 올해 말, 북한에 대한 1단계 MD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작년 8월에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남한에 배치한 바 있는 미국은 올 9월에도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탐지·추적할 수 있는 이지스함을 동해에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10월 1일부터는 ICBM을 요격할 수 있는 지상요격체제를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배치하게 된다. PAC-3을 일본에도 배치하는 것을 미·일이 논의 중에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2005년에는 한층 강력한 미사일방어망을 갖추게 될 것이다. 현재 시험 중인 스탠다드미사일-3(SM-3) 10기를 이지스함에 장착할 예정이고,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지상요격체제 역시 20기로 늘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남한에 배치된 PAC-3는 북한의 스커드미사일을 주로 겨냥한 것이라면, 이지스함과 일본에 배치될 예정인 PAC-3는 주로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미국 본토 방어용 지상요격체제는 혹시라도 북한이 갖고 있을 수도 있는 대포동2호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MD 배치 계획이 상당 부분 완료되면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적지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군사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선제 공격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전력을 상당 부분 파괴시키려는 것으로 미국의 MD 전략의 요체는 방어보다 선제공격에 있기 때문이다.
부시의 MD, 뜻대로 될까?
그러나 MD를 바탕에 둔 절대안보를 향한 부시 행정부의 열망이 순조롭게 관철될 지는 미지수이다. 1월 말에 공개된 국방부의 '무기 프로젝트 연례 보고서'에서는 지상요격체제가 아직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9월 30일 배치 이전까지 더 많은 실험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국방부에서조차 MD의 효용성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집권 이후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대폭적인 국방비 증액으로 적자 예산을 자초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적자폭이 무려 5200억 달러에 달할 것이 확실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 예산을 또 증액시키려고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마련한 회계년도 2005년 국방 예산안은 전년도보다 7%가 증액된 4017억 달러로, 여기에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재건 및 작전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특히 MD 예산을 전년도보다 20%나 늘린 102억2000만 달러로 책정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케리는 신뢰할 수 없는 무기산업에 엄청난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참고로 존 케리는 MD에 대해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미국 국가안보의 일환으로 MD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파기한 ABM 조약 유지, 투명한 절차와 실험을 통한 유효성 입증, 동맹국 및 주요 강대국들과의 사전 협의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일방적이고 초법적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부시의 MD 구상과는 적지 않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시의 MD 구상의 최대 복병은 '북한'이다. 부시 행정부가 최대 명분으로 내세운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가 평화적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면, 기술과 예산상의 문제에 더해 '명분'까지 위태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안보 문제를 대선의 최대 이슈로 삼겠다"는 부시의 대선 전략과 맞물려 MD는 '절대안보'의 환상에 사로잡힌 미국 국민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핵 문제가 미국 매파들의 21세기 세계전략의 핵심인 MD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심의 초점은 2000년과 흡사한 상황이 재연될 지의 여부이다. 6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클린턴으로 하여금 MD 구축을 차기 정권으로 넘기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현 6자회담 구도로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의 핵카드를 비롯한 군사주의 노선도, 남한의 군사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한미동맹 재조정도 MD를 비롯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와 동아시아 군비경쟁에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남북한의 상호배제적인 국가전략은 거꾸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강화시키면서 한반도를 동아시아 군비경쟁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남북한 모두 '국가'를 넘어선 '민족' 차원의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행정부는 세계전략 차원에서 남북한을 분리해서 대응하고 있다. 또한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근거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을 구한말 때와 흡사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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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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